현감 고유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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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현감 고유 선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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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창녕군 향토유적 제35호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조각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칠현리 406 |
위도 latitude | 35.426219 |
경도 longitude | 128.414044 |
지정일자 appnDate | 1997-12-20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사유 |
소유자명 ownerNm | 경상남도 창녕군청 |
규모 scale | 1기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현감 고유 선정비는 영조 30년(1762) 남곡면민이 세운 창녕현감 고유(高裕, 1722~1779)의 선정비이다. 앞면에 ’현감고후유청덕애민선정비(縣監高侯裕 淸德愛民善政碑)’라고 큰 글씨로 적었고, 그의 공적을 4구 16자로 적었으나 제일 첫 번째 글 4자는 파손되어 보이지 않는다. 뒤 2구에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모두 없애었으니 백성들이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고 하였다. 고유의 호는 추담(秋潭), 본관은 개성이다. 영조 19년(1743)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좌랑·창녕현감·경상도사·필선·장령을 지냈으며 정조 원년(1777) 승지에 올랐으며 정조 20년(1796) 청백리에 추천되었다. 고유는 영조 33년(1757) 특지로 창녕현감에 제수되었다. 당시 창녕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생계를 잇기 힘들었으므로 고유가 폐단을 혁파하고 인애와 엄정함으로 고을을 다스리니 수개월만에 고을이 소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경상감사 조엄이 밀양에 조창을 창설하여 조세를 납부하게 하여 폐단이 막심하여 고유가 문서를 보내어 폐단을 없애고자 하였지만 조엄이 듣지 않자 조정에 아뢰어 폐단을 없애었다. 또한 남붕(南鵬)이라는 승려가 권세를 믿고 불법을 행하였지만 누구도 다스리지 못하고 오히려 파직되었지만 고유가 이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초계의 여인 염씨가 고을 사람에게 추악한 무고를 당하여 자살하였더니 감사가 단순한 자살로 처리하고자 하니 고유가 이를 밝혀 올바로 처리하게 하였다고 한다. 고유가 창녕현감으로 있으면서 올바른 정사를 행하고 임기가 차 상주 집으로 돌아갈 때 백성들이 듣고 밀양까지 따라와 울며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는 야밤에 출발하여 돌아갔으니 창녕 백성들이 선정비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고유의 선정비가 바로 이것으로 보인다. 고유의 선정비 옆에는 현감 홍종화의 선정비도 세워져 있다. 홍종화의 선정비는 헌종 15년(1849)의 것이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31-770-3040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경상남도 창녕군청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2-01-09 |
ctprvnNm | 경상남도 |
sigunguNm | 창녕군 |
sido | 38 |
sigungu | 3833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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