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노리푸념

한국무속신앙사전
평안북도 강계 지방에서 전승되는 서사무가. 강계 지방에서는 대규모 무굿을 할 때 여흥거리로 일월신제(日月神祭)와 성승제(聖僧祭)가 베풀어진다. 이때 일월신제에서 이 구송된다.
definition
평안북도 강계 지방에서 전승되는 서사무가. 강계 지방에서는 대규모 무굿을 할 때 여흥거리로 일월신제(日月神祭)와 성승제(聖僧祭)가 베풀어진다. 이때 일월신제에서 이 구송된다.
mp3Cnt
0
wkorname
김명자
정의평안북도 강계 지방에서 전승되는 서사무가. 강계 지방에서는 대규모 무굿을 할 때 여흥거리로 일월신제(日月神祭)와 성승제(聖僧祭)가 베풀어진다. 이때 일월신제에서 이 구송된다.
참조[궁상이무가](/topic/궁상이무가)
참고문헌한국무속연구 (김태곤, 집문당, 1981)
[조선무격의 신가](/topic/조선무격의신가) (손진태, 손진태선생전집 5, 태학사, 1981)
한국의 [무속신화](/topic/무속신화) (김태곤, 집문당,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18-일월노리푸념 (서대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제주도무속학사전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 2004)
내용궁산선비와 지혜로운 부인 명월각시, 명월각시를 탐내는 배선비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결국 선한 자가 승리한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원리대로 결말이 난다. 내용이 함경도의 와 거의 같지만 최종 결말에서 다소 차이를 드러낸다. 의 궁상이는 부인과 의좋게 살다가 죽어서 지은 죄가 다 사해져 죄를 벗고 하늘 위의 선계(仙界)로 돌아갔지만 의 궁산선비와 부인 명월각시는 사후(死後)에 일월신이 된다. 즉 은 일월신의 유래담 신화이기도 하다.

은 평안북도 강계읍에 사는 전명수의 보[유자](/topic/유자)료를 1933년 손진태가 채록하여 1933년 『청구학총(靑丘學叢)』 28호에 「[조선무격의 신가](/topic/조선무격의신가)(朝鮮巫覡の神歌)」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서사무가는 과 함께 1940년 『문장(文章)』 9월호와 1958년 『사조(思潮)』 6월에도 수록됐다. 특히 손진태는 을 강계 방언, 경성어(京城語), 일어역문 등으로 서술하여 이해의 편의를 돕고 있다. 서사무가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월각시 해당금이 궁산선비와 만난 지 3년 만에 혼례를 치르게 된다. 궁산선비는 초년에 명월각시에게 말을 붙여 2년 되는 해에 편지를 받아 3년 만에 혼사가 성립돼 장가를 들게 된다. 그러나 궁산선비는 예장(禮狀)을 쌀 것조차 없어서 국시당(국[사당](/topic/사당))에 걸린 비단을 모아 예장을 싸고, 예단함이 없어서 [마루](/topic/마루) 밑을 보니 헌꺽둑짝(헌나무신짝)이 있어 그것으로 예단함을 만들고, 예장을 실을 말이 없어 수탉을 말로 삼아 싣고 갔다. 그렇게 하여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궁산선비는 명월각시가 너무나 예뻐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여 밥을 굶게 되었다.

하루는 명월각시가 궁산선비에게 나무를 해오라고 하자 궁산선비는 명월각시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한다. 명월각시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화상을 궁산선비에게 주고 나무를 해오라고 하였다. 궁산선비가 명월각시의 화상을 나뭇[가지](/topic/가지)에 걸어 놓고 쳐다보며 나무를 하는데 광풍이 불어 날려간 화상이 아랫녘에 사는 배선비네 집에 가서 떨어졌다. 배선비가 화상을 보니 윗녘의 명월각시가 소문대로 정말 잘생겨서 명월각시의 미모를 탐하게 되었다. 배선비는 배에다 생금을 싣고 내[기장](/topic/기장)기를 두기 위하여 궁산선비를 찾아간다. 배선비가 궁산선비를 찾아와 내기장기를 두자 하니 궁산선비는 “나는 내놓을 물건이 없어 [장기](/topic/장기)를 둘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배선비는 “내가 지면 생금 한 배를 너에게 주고 네가 지면 명월각시를 나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궁산선비가 그렇게 하자고 하여 배선비와 내기장기를 두게 되었지만 세 판을 모두 져서 할 수 없이 명월각시를 배선비에게 내주어야 했다.

집에 돌아온 궁산선비가 [자리](/topic/자리)를 펴고 누워서 밥도 먹지 못하자 명월각시가 “어찌 해서 진지를 아니 잡수시오” 하고 물어온다. 궁산선비는 자초지종을 말하며 이제 마누라를 잃게 되어 그런다고 한다. 명월각시는 “얼싸좋다, 정말 좋구나. 없는 사람 궁산선비와 사는 것보다 있는 사람과 살면 아니 좋겠는가”라고 하니 궁산선비는 더 운다. 명월각시는 “낭군님은 내 말대로 하라”며 걱정 말고 밥이나 잡수라고 한다.

명월각시는 큰 종(하녀)을 자기처럼 꾸미는 한편 자신은 남루하게 입고 다리를 절며 종노릇 하는 시늉으로 배선비를 속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거짓으로 꾸민 것을 안 배선비는 능청스럽게 “궁산선비와 백년해로할 마누라를 데리고 가면 적원(積怨)이 될 터이니 저 [마당](/topic/마당)에서 물 긷는 종년을 나를 주소”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배선비에게 가게 된 명월각시는 닷새만 말미를 달라고 한다. 배선비가 그렇게 하라며 허락하고 돌아가자 명월각시는 소를 잡아 포육(脯肉)을 떠서 말린 후 궁산선비의 [바지](/topic/바지)와 [저고리](/topic/저고리)에 솜처럼 두르고 [명주](/topic/명주) 한 꾸리 와 바늘 한 쌈을 옷깃에 넣어두었다.

약속한 때가 되자 배선비가 명월각시를 데리러 왔다. 배선비가 명월각시에게 “우리 둘이 살 테니까 궁산선비를 데리고 가다가 섬에 내려 놓자”라고 하니 명월각시도 그렇게 하자고 한다. 섬에 혼자 내려진 궁산선비는 먹을 것이 없어 옷을 뜯어보니 쇠고기 포육이 있었다. 그것을 다 먹으니 또 먹을 것이 없어 명주 꾸리와 바늘로 낚싯대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때 학이 내려와 새끼를 친다. 그러나 학은 [옥황상제](/topic/옥황상제)에게 죄를 지어서 세상으로 도망쳐 왔기에 잡혀서 하늘로 올라갔다. 새끼학이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되자 궁산선비가 고기를 잡아 새끼학에게 먹여 살 수 있게 했다. 어미학이 죄가 풀려 다시 내려와 궁산선비가 새끼학을 살려 놓은 것을 보고 궁산선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궁산선비를 강 너머로 실어다 섬을 떠나게 해주었다. 마침내 어미학을 타고 섬에서 나와 육지로 돌아온 궁산선비는 당장 먹을 것도 없어서 거지가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한편 명월각시는 배선비 집에 가서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다. 배선비가 “어째 마누라가 말을 하지 않는가”라며 답답해하니 명월각시는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한다. 소원은 걸인잔치를 사흘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배선비는 명월각시의 청을 들어 사흘 동안 거지잔치를 했다. 궁산선비도 거지잔치에 참여하게 되어 첫날은 아래쪽 끝에 앉았다. 그러나 위로부터 상을 놓아 상이 하나 모자라서 궁산선비가 얻어먹지 못했다. 둘쨋날에는 위쪽 끝에 앉았지만 그 날은 아래로부터 상을 놓아 또 상 하나가 모자라 못 얻어먹고, 마지막 날에는 가운데 앉았다가 상을 좌우로 놓아 얻어먹지 못하였다. 궁산선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 놈의 팔자는 어인 팔자인고. 초년에 에미네 잃고 중년에 거랭이 되고 삼년에는 거랑잔치도 못 얻어먹네”라며 나오는데 명월각시가 사흘 잔치를 보니 궁산선비는 계속 얻어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흘 잔치 동안 먹지 못한 거랭이에게 다른 상을 차려 주어 먹이라고 하니 궁산선비는 그 상을 받아 잘 먹고 남은 것을 오쟁이에 넣어 지고 나간다.

이렇게 하여 잔치한 지 사흘 만에 궁산선비를 만난 명월각시는 구슬옷을 내던지며 이 옷의 깃을 잡아 고대를 추어 입는 사람이 자기 낭군이라고 한다. 거랭이들이 모두 입어 보려 하지만 입을 수가 없다. 궁산선비가 고대를 추어 깃을 잡아 구슬옷을 입은 다음 백운중천(白雲中天)으로 날아 올랐다가 내려왔다. 배선비도 자기가 입어 보자고 하며 입는 재주를 보였다. 그러나 배선비는 벗는 재주를 못 배워서 입고 백운중천으로 날아 올랐지만 내려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어 솔개가 되었다. 궁산선비와 명월각시는 다시 만나 살다가 죽은 뒤 그들의 혼령이 일월신이 되어 제(祭)를 받게 되었다.
지역사례평북 강계 지방의 무가인 은 함경도 지역에서 망인의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망무기굿의 궁상이 굿거리에서 구송하는 와 내용이 거의 같다. 가 망인천도굿에서 구송되는 반면에 은 평북 강계 지방에서 큰굿을 할 때 여흥거리로 구송된다. 이들 무가의 내용은 같으나 결말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에서는 선한 자가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으로 결말이 나지만 에서는 악한 자가 벌을 받는 결말과 함께 해와 달의 유래가 이야기된다. 에서 궁상이 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등장하며, 궁상이 역시 궁산선비처럼 무능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고 선량한 선비로 나타난다. 또한 궁상이와 궁상이 부인은 모두 선계(仙界)에서 죄를 짓고 내려왔다가 죄를 벗고 승천하는 존재인 반면에 궁산선비와 명월각시는 선계의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 선계에서 죄를 짓고 내려왔으나 죄를 벗어난 존재는 궁산선비의 은혜에 보답하는 학이다. 궁상이나 궁상이 부인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가 선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학과 같은 [동물](/topic/동물)이 선계에서 온 것이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의 미분된 신화성을 엿볼 수 있다.

이나 는 부인을 걸고 내기를 하였다는 점에서 『고려사(高麗史)』 권 71 악지(樂志)에 수록된 ‘예성강’노래의 유래 설화와 같은 궤적을 이룬다. 구슬옷을 [가지](/topic/가지)고 본래 남편을 찾고, 부인을 빼앗아 간 남자를 징치했다는 내용은 [민담](/topic/민담) ‘새신랑’과 유사하다. 이런 점에서 민간에서 전승되던 흥미 있는 설화가 무가로 이입되어 개편된 것으로 본다. 일월신에 대한 이 밖의 신화는 우리나라에 없으며, 민담으로 전승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topic/해와달이된오누이)’는 이와 내용이 전혀 다르다.

제주도 굿거리 가운데 일월맞이굿이 있지만 역시 과는 전혀 다르다. 일월맞이굿은 행운과 가족의 무병장수를 비는 굿이다. 그런데 제주도굿에서 일월은 하늘에서 “빛나는 햇살처럼 달빛처럼 비춰 주는 [조상신](/topic/조상신)”을 뜻한다. 한 집안의 조상 가운데 생전에 높은 벼슬을 했다면 그 조상은 세상을 떠난 후에 일월이 되어 자신의 가문을 비추어 주는 수호신적 영험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 조상을 ‘집안일월’이라고 하며, 그 집안의 굿에서는 이 조상신도 청해 맞이하여 대접하고 즐겁게 해드린다. 따라서 일월조상신에 대한 본풀이(무가)는 집안 또는 일월조상마다 다르다.
高麗史
新增東國輿地勝覽
成宗實錄
일지사한국대왕신앙의 역사와 현장신종원2008
창비조선무속고-역사로 본 한국 무속이능화, 서영대 역주2008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