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귀

한국무속신앙사전
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제사를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전염병과 같은 해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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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제사를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전염병과 같은 해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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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제사를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전염병과 같은 해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귀신.
정의불행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제사를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전염병과 같은 해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귀신.
참조여제여제등록
참고문헌진도의 여제고 (나경수, 호남문화연구 17,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1987)
함경도의 민속 (전경욱,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17세기 여제의 대상에 관한 연구 (이욱, 역사민속학9, 한국역사민속학회, 2000)
조선시대 국가 [사전](/topic/사전)과 여제 (이욱, 宗敎硏究19, 韓國宗敎學會, 2000)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topic/마을)신앙 (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참조여제여제등록
참고문헌진도의 여제고 (나경수, 호남문화연구 17,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1987)
함경도의 민속 (전경욱,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17세기 여제의 대상에 관한 연구 (이욱, 역사민속학9, 한국역사민속학회, 2000)
조선시대 국가 [사전](/topic/사전)과 여제 (이욱, 宗敎硏究19, 韓國宗敎學會, 2000)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topic/마을)신앙 (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내용여귀는 억울하거나 불행한 죽음을 당하였고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어서 그들의 원통함과 억울함, 외로움으로 원기(怨氣)가 쌓여 병을 일으키고 화기(和氣)를 상하게 해서 변괴(變怪)를 초래한다고 여겨졌다. 여귀가 초래하는 대표적인 위험은 바로 즉 역병(疫病)과 전염병이다. 이 때문에 여귀를 여역신(癘疫神), 역병신(疫病神)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여귀에 의한 질병으로 여겨진 것에는 여역(癘疫), 반진(斑疹), 시기(時氣), 괴질(怪疾), 홍역(紅疫) 등이 있다. 이러한 질병은 한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질 수 있는 전염병이다. 물론 여귀는 전염병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뭄도 초래한다고 여겨졌다. 가뭄이 발생한 때에도 여제를 실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국가는 여귀로 인한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서울과 각 지방에 여단(癘壇)을 세우고 청명(淸明)과 7월 15일, 10월 1일 등 일 년에 세 차례 제사를 지냈다. 이처럼 여단은 이미 조선 전기에 사직단(社稷壇)ㆍ성황단(城隍壇)과 함께 군현(郡縣) 제사의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이러한 정기적인 여제 외에도 갑자기 한 지역에 전염병이 돌면 비정기적인 여제인 별려제(別癘祭)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여제의 대상은 여귀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여제의 중요한 대상의 하나는 성황신(城隍神)이다. 이에 따라 여제는 두 개의 제사로 구성된다. 먼저 여제 사흘전에 성황신에게 여제를 알리는 성황발고제(城隍發告祭)를 행한다. 성황발고제는 성황신으로 하여금 여제를 위해 여귀의 [무리](/topic/무리)를 모아 달라고 부탁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여제를 지낸다. 제단 구성에서도 성황신과 여귀가 구분된다. 즉 성황의 신좌(神座)는 단 위에 남향으로 하고, 여귀는 15위를 둘로 나눠 단 아래 좌우로 마주 향하게 배치한다.

이러한 여귀와 여제는 넓은 의미의 원혼(冤魂) 개념을 전제로 한다. 한국사회에서 원혼 관념은 이미 고대부터 확인된다. 이런 점에서 여귀라는 용어와 여제라는 제의는 중국에서 유입되었지만 여귀와 여제가 [기초](/topic/기초)한 원혼 관념 자체는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즉 여귀와 여제는 조선시대에 유교 [사전](/topic/사전)(祀典) 체계의 확립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수용되었지만 그 관념적 기반은 한국사회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귀는 한국 민간에 수용될 여지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내용여귀는 억울하거나 불행한 죽음을 당하였고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어서 그들의 원통함과 억울함, 외로움으로 원기(怨氣)가 쌓여 병을 일으키고 화기(和氣)를 상하게 해서 변괴(變怪)를 초래한다고 여겨졌다. 여귀가 초래하는 대표적인 위험은 바로 즉 역병(疫病)과 전염병이다. 이 때문에 여귀를 여역신(癘疫神), 역병신(疫病神)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여귀에 의한 질병으로 여겨진 것에는 여역(癘疫), 반진(斑疹), 시기(時氣), 괴질(怪疾), 홍역(紅疫) 등이 있다. 이러한 질병은 한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질 수 있는 전염병이다. 물론 여귀는 전염병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뭄도 초래한다고 여겨졌다. 가뭄이 발생한 때에도 여제를 실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국가는 여귀로 인한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서울과 각 지방에 여단(癘壇)을 세우고 청명(淸明)과 7월 15일, 10월 1일 등 일 년에 세 차례 제사를 지냈다. 이처럼 여단은 이미 조선 전기에 사직단(社稷壇)ㆍ성황단(城隍壇)과 함께 군현(郡縣) 제사의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이러한 정기적인 여제 외에도 갑자기 한 지역에 전염병이 돌면 비정기적인 여제인 별려제(別癘祭)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행해진 여제의 대상은 여귀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여제의 중요한 대상의 하나는 성황신(城隍神)이다. 이에 따라 여제는 두 개의 제사로 구성된다. 먼저 여제 사흘전에 성황신에게 여제를 알리는 성황발고제(城隍發告祭)를 행한다. 성황발고제는 성황신으로 하여금 여제를 위해 여귀의 [무리](/topic/무리)를 모아 달라고 부탁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여제를 지낸다. 제단 구성에서도 성황신과 여귀가 구분된다. 즉 성황의 신좌(神座)는 단 위에 남향으로 하고, 여귀는 15위를 둘로 나눠 단 아래 좌우로 마주 향하게 배치한다.

이러한 여귀와 여제는 넓은 의미의 원혼(冤魂) 개념을 전제로 한다. 한국사회에서 원혼 관념은 이미 고대부터 확인된다. 이런 점에서 여귀라는 용어와 여제라는 제의는 중국에서 유입되었지만 여귀와 여제가 [기초](/topic/기초)한 원혼 관념 자체는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즉 여귀와 여제는 조선시대에 유교 [사전](/topic/사전)(祀典) 체계의 확립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수용되었지만 그 관념적 기반은 한국사회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귀는 한국 민간에 수용될 여지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지역사례강원도나 전남 진도 같은 지역에서 뚜렷하게 여귀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여귀는 [마을](/topic/마을)신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진도에는 여제단이 있어서 정월이 되면 여제단에 ‘무자귀(無子鬼)’를 가뒀다가 10월에 풀어 주는 여제를 지냈다. 강원도 영동 남부 지역에는 제당에 성황신과 함께 여역신을 모시거나 마을 제의의 하위 제차로 이름 없는 귀신들을 위한 거리[고사](/topic/고사)를 지내는 마을이 많다. 거리고사의 대상인 이름 없는 귀신들은 여귀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존재이다. 함경도지방에서도 여제가 중요시되었다. 예컨대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지내는 마을 동제는 여제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산신제를 3~5년에 한 차례 지내는 것에 비해 여제는 일 년에 두세 차례 지냈다.

마을 제의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각종 질병 구축이라는 점에서 여귀와 같은 존재를 대상으로 한 마을 제의는 계속 전승될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민간의 마을 제의에서 모셔지는 여귀는 마을 제의의 주신(主神)이 아닌 하위신으로 모셔지는 것이 보통이다.
지역사례강원도나 전남 진도 같은 지역에서 뚜렷하게 여귀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여귀는 [마을](/topic/마을)신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진도에는 여제단이 있어서 정월이 되면 여제단에 ‘무자귀(無子鬼)’를 가뒀다가 10월에 풀어 주는 여제를 지냈다. 강원도 영동 남부 지역에는 제당에 성황신과 함께 여역신을 모시거나 마을 제의의 하위 제차로 이름 없는 귀신들을 위한 거리[고사](/topic/고사)를 지내는 마을이 많다. 거리고사의 대상인 이름 없는 귀신들은 여귀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존재이다. 함경도지방에서도 여제가 중요시되었다. 예컨대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지내는 마을 동제는 여제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산신제를 3~5년에 한 차례 지내는 것에 비해 여제는 일 년에 두세 차례 지냈다.

마을 제의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각종 질병 구축이라는 점에서 여귀와 같은 존재를 대상으로 한 마을 제의는 계속 전승될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민간의 마을 제의에서 모셔지는 여귀는 마을 제의의 주신(主神)이 아닌 하위신으로 모셔지는 것이 보통이다.
유래여귀란 말은 조선 태종 때 여제(癘祭)의 도입과 함께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여제의 대상으로 여겨진 여귀의 유형을 살펴보면 창ㆍ칼에 죽은 자, 물ㆍ불이나 도적에 죽은 자, 재물을 빼앗기고 핍박당해 죽은 자,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 자, 억울하게 형벌을 받아 죽은 자, 천재(天災)와 전염병으로 죽은 자, 맹수나 독충에 물려 죽은 자, 얼거나 굶주려서 죽은 자, 전투에서 죽은 자, 위급한 상황에서 목매어 자살한 자, [담장](/topic/담장)이나 집에 깔려 죽은자, 난산(難産)으로 죽은 자, 벼락 맞아 죽은 자, 추락해서 죽은 자,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자 등이 있다. 본디 중국에서도 여귀는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무사귀신(無祀鬼神)만을 가리켰지만 후대로 오면서 불행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존재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여제와 함께 유입된 여귀 역시 이러한 포괄적인 여귀 개념이다. 그러나 흔히 여귀를 무사귀신으로 표현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여귀는 제사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죽은 귀신을 가리킨다.
유래여귀란 말은 조선 태종 때 여제(癘祭)의 도입과 함께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여제의 대상으로 여겨진 여귀의 유형을 살펴보면 창ㆍ칼에 죽은 자, 물ㆍ불이나 도적에 죽은 자, 재물을 빼앗기고 핍박당해 죽은 자,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 자, 억울하게 형벌을 받아 죽은 자, 천재(天災)와 전염병으로 죽은 자, 맹수나 독충에 물려 죽은 자, 얼거나 굶주려서 죽은 자, 전투에서 죽은 자, 위급한 상황에서 목매어 자살한 자, [담장](/topic/담장)이나 집에 깔려 죽은자, 난산(難産)으로 죽은 자, 벼락 맞아 죽은 자, 추락해서 죽은 자,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자 등이 있다. 본디 중국에서도 여귀는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무사귀신(無祀鬼神)만을 가리켰지만 후대로 오면서 불행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존재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여제와 함께 유입된 여귀 역시 이러한 포괄적인 여귀 개념이다. 그러나 흔히 여귀를 무사귀신으로 표현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여귀는 제사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죽은 귀신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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