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한국무속신앙사전
동제(洞祭)등 각종 제사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으로 소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제사용 희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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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洞祭)등 각종 제사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으로 소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제사용 희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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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영
정의동제(洞祭)등 각종 제사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으로 소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제사용 희생동물.
정의동제(洞祭)등 각종 제사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으로 소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제사용 희생동물.
내용일부 별신제나 어촌의 대규모 당제에서 소를 제외하면 돼지는 최고의 제수(祭需)이다. 고구려 유리왕대의 제천의식(祭天儀式)용 교시(郊豕)를 둘러싼 탁리(託利), 사비(斯卑),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 사건은 돼지의 종교적 위상과 의미를 잘 보여 준다. 동민(洞民)들은 돼지의 제사용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와 관련한 온갖 금기와 원칙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절차와 방식을 겪은 돼지는 완벽한 제수가 된다. [마을](/topic/마을) 신령의 [흠향](/topic/흠향)은 마을의 제액초복(除厄招福)으로 보답된다. 한편 동신(洞神)에게 바쳐진 돼지는 동제를 최고의 음식잔치로도 만들었다.

제수로 쓸 돼지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한다. 마을 신령의 심기를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하고 동민의 지극정성을 최대한 표시해서 동신(洞神)을 흡족하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선정 기준은 지역 또는 마을마다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다. 그러나 시대 변화, 경제적 형편, 마을신앙에 대한 열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마을은 흰털이 박히지 않은 ‘꺼먹(검정)수퇘지’를 고집한다. 흰털이 조금이라도 박히면 부정(不淨)하다고 여긴다. 원래 조선 돼지의 색깔은 검기도 하지만 일체의잡색(雜色)을 거부한다는 원칙이 있다. 여기에는 종교적 의미가 숨어 있다. 전남 해남군의 한 마을은 꺼먹 돼지가 바다의 김을 검게 하는 데 매우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이유로 당제에는 반드시 꺼먹 돼지를 올려야 한다고 한다. 꺼먹 돼지라는 기준에 마을의 주요 생계 수단인 김 생산의 성공을 연계한 것이다.

특히 교미 경험이 없는 수퇘지를 써야만 한다. 암퇘지는 출산 경험이 있고 수태 중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절 쓰지 않는다.

돼지를 구매하거나 얻어 올 때에도 출생 및 성장 과정에서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육한 집안도 평안했어야 마음에 거리낌 없이 제수로 선택한다. 전북 고군산열도의 말도에서는 일 년 전에 새끼 돼지를 미리 사와 ‘깨끗한 집’에서 키웠다. 그리고 돼지가 아니라 높여서 ‘거멩이’라고 불렀다. 거멩이 키우는 집에는 임신부나 상주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 부정 탄 사람을 만나게 되면 거멩이는 며칠씩 밥도 거른 채 누웠다고 한다.

[제관](/topic/제관)이 어떤 돼지를 깨끗하다고 판단하여 제수로 쓰기로 결정하면 돼지 주인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선히 내놓아야 한다. 돼지가 아까워서 내주기를 주저하거나 심지어 거부한다면 당신(堂神)의 노여움을 사 돼지가 급사(急死)하는 것은 물론 주인에게도 해(害)가 된다고 믿었다.

돼지는 소의 경우와 달리 도살(屠殺)하는 과정에서 비명이 클수록 산신이 흠향(歆饗)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돼지를 산에 끌고 올라가 산 채로 목을 따서 잡기도 한다. 산신당 옆에서 돼지 잡는 일이 불경(不敬)하다고 여긴다면 산신당 앞에서만 소리를 내게 하고 다른 곳에 가서 칼로 목을 찔러 잡는다.

마을에 따라서는 도살하는 장소도 일정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제당 주변에는 희생동물을 도살하는 종교적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바로 옆에는 샘이나 도랑이 있어 도살과 해체 과정에서 필요한 물을 충분히 쓸 수 있다. 이곳에서 죽인 돼지는 신령에게 바치기에 더욱 깨끗하다고 여긴다. 제관에게 이끌려 온 돼지도 이곳에 도착하면 순순히 죽을 준비를 하며 도살할 장소에 우뚝 서 있는다고 한다.

도살 전에 제관들이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는 것은 어느 마을에서나 보편적이다. 어떤 마을에서는 도살을 맡은 제관을 따로 뽑는다. 도살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를본 제관에게 다른 제수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돼지 도살에 관한 하나의 사례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 산제의 경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돼지 도살 방식은 다른 지역도 거의 유사하다.

“가마솥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묶여 있는 돼지를 반석(盤石) 위에 올려놓고 잡을 준비를 한다. 먼저 손도끼로 머리를 몇 차례 두들기자 돼지는 아주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목을 칼로 찔러서 세숫대야 에 피를 받은 다음 옆에 둔다. 이 피는 제의에 사용하지 않고 상당, 중당, 하당의 제의를 마친 뒤 제관들이 [음복](/topic/음복)할 때 먹는다. 돼지의 숨이완전히 끊어지면 뜨거운 물을 돼지에 부으면서 하얀 살결이 드러나도록 깨끗이 털을 깎아낸다. 이것을 ‘퇴(退)한다’라고 한다. 퇴한 돼지의 배를 칼로 갈라서 내장을 끄집어낸 뒤에 머리부터 칼과 도끼로 떼어낸다. 내장은 제의에 올리지 않고 제관들이 음복할 때 사용한다. 돼지를 열각으로 나눈 뒤에 고기의 등심 부분, 간, 허파, 염통, 콩팥, 지라를 각각 오등분하여 다섯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아서 흰 종이로 덮어 둔다. 열각으로 떼어낸 고기는 반석 위에 둔 채 내장을 손질한다. 돼지고기의 모든 손질이 끝나면 물이끓는 가마솥에 고기를 넣고 삶는다. 돼지를 장만하는 동안에는 필요한 말 외에는 일절 말하지 않는다.”

어떤 마을은 피 묻은 돼지고기는 당에 올리지 않는다 하여 미지근한 물에 핏기를 가신 다음에 올리거나 또는 내장만 빼고 삶지 않은 통돼지를 올리기도 한다. 돼지머리만 제수로 쓸 때에는 식칼을 돼지의 이마 부위에 꽂아 놓기도 한다.

각종 동제에서 돼지는 마을 신령에게 바쳐지는 최고의 제물이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돼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돼지의 구매 및 확보, 도살 태도와 방식, 육고기의 해체 과정, 진설 절차 등에 수많은 원칙과 금기가 성립되고 인정된다. 평소 고기 맛에 굶주렸고 육류 섭취를 통한 단백질 공급이 어렵던 시기에는 제수로 올린 돼지가 동제를 최고의 음식잔치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기다린 실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돼지고기 한점이라도 [볏짚](/topic/볏짚)이나 종이에 싸서 노인들에게 보낸 봉송(封送)은 동제와 돼지의 상관성을 잘 나타내 준다.
참고문헌고군산열도의 굿 (서홍관,님민, 전북종합문화지, 지양사, 1985)
[마을](/topic/마을)공간부담과 당고사 (이기태, 비교민속학3, 비교민속학회, 1988)
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내용일부 별신제나 어촌의 대규모 당제에서 소를 제외하면 돼지는 최고의 제수(祭需)이다. 고구려 유리왕대의 제천의식(祭天儀式)용 교시(郊豕)를 둘러싼 탁리(託利), 사비(斯卑),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 사건은 돼지의 종교적 위상과 의미를 잘 보여 준다. 동민(洞民)들은 돼지의 제사용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와 관련한 온갖 금기와 원칙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절차와 방식을 겪은 돼지는 완벽한 제수가 된다. [마을](/topic/마을) 신령의 [흠향](/topic/흠향)은 마을의 제액초복(除厄招福)으로 보답된다. 한편 동신(洞神)에게 바쳐진 돼지는 동제를 최고의 음식잔치로도 만들었다.

제수로 쓸 돼지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한다. 마을 신령의 심기를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하고 동민의 지극정성을 최대한 표시해서 동신(洞神)을 흡족하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선정 기준은 지역 또는 마을마다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다. 그러나 시대 변화, 경제적 형편, 마을신앙에 대한 열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마을은 흰털이 박히지 않은 ‘꺼먹(검정)수퇘지’를 고집한다. 흰털이 조금이라도 박히면 부정(不淨)하다고 여긴다. 원래 조선 돼지의 색깔은 검기도 하지만 일체의잡색(雜色)을 거부한다는 원칙이 있다. 여기에는 종교적 의미가 숨어 있다. 전남 해남군의 한 마을은 꺼먹 돼지가 바다의 김을 검게 하는 데 매우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이유로 당제에는 반드시 꺼먹 돼지를 올려야 한다고 한다. 꺼먹 돼지라는 기준에 마을의 주요 생계 수단인 김 생산의 성공을 연계한 것이다.

특히 교미 경험이 없는 수퇘지를 써야만 한다. 암퇘지는 출산 경험이 있고 수태 중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절 쓰지 않는다.

돼지를 구매하거나 얻어 올 때에도 출생 및 성장 과정에서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육한 집안도 평안했어야 마음에 거리낌 없이 제수로 선택한다. 전북 고군산열도의 말도에서는 일 년 전에 새끼 돼지를 미리 사와 ‘깨끗한 집’에서 키웠다. 그리고 돼지가 아니라 높여서 ‘거멩이’라고 불렀다. 거멩이 키우는 집에는 임신부나 상주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 부정 탄 사람을 만나게 되면 거멩이는 며칠씩 밥도 거른 채 누웠다고 한다.

[제관](/topic/제관)이 어떤 돼지를 깨끗하다고 판단하여 제수로 쓰기로 결정하면 돼지 주인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선히 내놓아야 한다. 돼지가 아까워서 내주기를 주저하거나 심지어 거부한다면 당신(堂神)의 노여움을 사 돼지가 급사(急死)하는 것은 물론 주인에게도 해(害)가 된다고 믿었다.

돼지는 소의 경우와 달리 도살(屠殺)하는 과정에서 비명이 클수록 산신이 흠향(歆饗)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돼지를 산에 끌고 올라가 산 채로 목을 따서 잡기도 한다. 산신당 옆에서 돼지 잡는 일이 불경(不敬)하다고 여긴다면 산신당 앞에서만 소리를 내게 하고 다른 곳에 가서 칼로 목을 찔러 잡는다.

마을에 따라서는 도살하는 장소도 일정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제당 주변에는 희생동물을 도살하는 종교적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바로 옆에는 샘이나 도랑이 있어 도살과 해체 과정에서 필요한 물을 충분히 쓸 수 있다. 이곳에서 죽인 돼지는 신령에게 바치기에 더욱 깨끗하다고 여긴다. 제관에게 이끌려 온 돼지도 이곳에 도착하면 순순히 죽을 준비를 하며 도살할 장소에 우뚝 서 있는다고 한다.

도살 전에 제관들이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는 것은 어느 마을에서나 보편적이다. 어떤 마을에서는 도살을 맡은 제관을 따로 뽑는다. 도살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를본 제관에게 다른 제수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돼지 도살에 관한 하나의 사례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수평리 산제의 경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돼지 도살 방식은 다른 지역도 거의 유사하다.

“가마솥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묶여 있는 돼지를 반석(盤石) 위에 올려놓고 잡을 준비를 한다. 먼저 손도끼로 머리를 몇 차례 두들기자 돼지는 아주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목을 칼로 찔러서 세숫대야 에 피를 받은 다음 옆에 둔다. 이 피는 제의에 사용하지 않고 상당, 중당, 하당의 제의를 마친 뒤 제관들이 [음복](/topic/음복)할 때 먹는다. 돼지의 숨이완전히 끊어지면 뜨거운 물을 돼지에 부으면서 하얀 살결이 드러나도록 깨끗이 털을 깎아낸다. 이것을 ‘퇴(退)한다’라고 한다. 퇴한 돼지의 배를 칼로 갈라서 내장을 끄집어낸 뒤에 머리부터 칼과 도끼로 떼어낸다. 내장은 제의에 올리지 않고 제관들이 음복할 때 사용한다. 돼지를 열각으로 나눈 뒤에 고기의 등심 부분, 간, 허파, 염통, 콩팥, 지라를 각각 오등분하여 다섯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아서 흰 종이로 덮어 둔다. 열각으로 떼어낸 고기는 반석 위에 둔 채 내장을 손질한다. 돼지고기의 모든 손질이 끝나면 물이끓는 가마솥에 고기를 넣고 삶는다. 돼지를 장만하는 동안에는 필요한 말 외에는 일절 말하지 않는다.”

어떤 마을은 피 묻은 돼지고기는 당에 올리지 않는다 하여 미지근한 물에 핏기를 가신 다음에 올리거나 또는 내장만 빼고 삶지 않은 통돼지를 올리기도 한다. 돼지머리만 제수로 쓸 때에는 식칼을 돼지의 이마 부위에 꽂아 놓기도 한다.

각종 동제에서 돼지는 마을 신령에게 바쳐지는 최고의 제물이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돼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돼지의 구매 및 확보, 도살 태도와 방식, 육고기의 해체 과정, 진설 절차 등에 수많은 원칙과 금기가 성립되고 인정된다. 평소 고기 맛에 굶주렸고 육류 섭취를 통한 단백질 공급이 어렵던 시기에는 제수로 올린 돼지가 동제를 최고의 음식잔치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기다린 실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돼지고기 한점이라도 [볏짚](/topic/볏짚)이나 종이에 싸서 노인들에게 보낸 봉송(封送)은 동제와 돼지의 상관성을 잘 나타내 준다.
참고문헌고군산열도의 굿 (서홍관,님민, 전북종합문화지, 지양사, 1985)
[마을](/topic/마을)공간부담과 당고사 (이기태, 비교민속학3, 비교민속학회, 1988)
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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