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청

한국무속신앙사전
조선 전기 나라무당인 [국무](/topic/국무)(國巫)를 두고 국가와 왕실을 위해 복을 빌고(祈福), 재앙을 물리치는(禳災) 굿을 전담한 국가 공식 무속 전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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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나라무당인 [국무](/topic/국무)(國巫)를 두고 국가와 왕실을 위해 복을 빌고(祈福), 재앙을 물리치는(禳災) 굿을 전담한 국가 공식 무속 전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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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우
정의조선 전기 나라무당인 [국무](/topic/국무)(國巫)를 두고 국가와 왕실을 위해 복을 빌고(祈福), 재앙을 물리치는(禳災) 굿을 전담한 국가 공식 무속 전담기구.
내용성수청(星宿廳)은 성신청(星辰廳)이라고도 한다. 성수 또는 성신은 별자리라는 뜻으로, 도교(道敎)에서 이름을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성수청의 무당을 [국무](/topic/국무) 또는 국무당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무속기구를 이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별기은](/topic/별기은)(別祈恩)이라는 불교와 도교적 성격의 국행의례가 있었고 이것은 무속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무속적 별기은은 조선 전기로 이어졌는데 국무(國巫)를 두어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굿을 거행하였다. 성수청과 관련된 기록은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에 걸쳐 모두 10회 정도 나온다.

성종 8년(1477) 9월 성수청의 수리를 반대하는 논의에 대해 임금이 “내가 처음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조종조 때 시작한 것이다.”라고 답한 것이 성수청에 관한 첫 기록이다. 이로 보아 성수청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국무의 제장은 감악, 덕적, 목멱 등 여러 곳에 있었다. 대표적인 제장인 국무당(國巫堂)은 송악, 즉 개성에 있었다.

그러나 성리학이 체제 정립의 근간인 조선에서 이심원(李深源), 남효온(南孝溫) 성현(成俔) 등 사대부들은 성수청의 존속을 강하게 비난하고 혁파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 왕조에서 무당을 모두 성 밖으로 축출했으나 성내에는 성수청을 두어 국무가 공식적으로 나라와 왕실을 위한 굿을 거행한 것은 사대부의 유교적 논리에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성종 9년(1478) 11월 홍문관 부제학 성현의 상소문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성수청을 성내에 두고 있으면서 백성만 무속행위를 못하게 한다면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중종 1년(1506) 10월 소격서(昭格署)와 성수청을 혁파하라는 상소를 마지막으로 성수청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중종반정 이후 결국 성수청은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식적인 국행의례 기관으로서의 성수청은 사라졌지만 왕실 내행(內行)의 별기은은 유생들의 반대 속에서도 조선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졌다.
참고문헌成宗實錄
中宗實錄
燕山君日記
조선조 무속 국행의례 연구 (최종성, 일지사, 2002)
[조선무속고](/topic/조선무속고)-역사로 본 한국무속 (이능화 지음, 서영대 역주, 창비, 2008)
朝鲜前期的国家巫俗专门机构,有专属国巫负责举行为国家和王室祈福禳灾的[巫祭](/topic/巫祭)。

“星宿厅”又称“星辰厅”,“星宿”和“星辰”指星座,名称借于道教。在高丽时代,曾有佛教和道教性质的国家仪礼,叫做“别祈恩”,而这又与巫俗有关。这一具有巫俗性质的“别祈恩”延续至朝鲜前期,专设星宿厅,设置国巫职位,举行国家层次的正式巫祭。

在朝鲜时代,性理学是建立体制的基础,当时的士大夫强烈指责星宿厅的存在,并要求废除之。因为在朝鲜王朝,所有巫师均被逐出城外,因而在城内设置星宿厅,由国巫公开为国家和王室举行巫祭有悖于士大夫的儒家伦理。中宗在位第一年(1506 年),曾有过关于废除昭格署和星宿厅的上书,之后再无有关星宿厅的记载,从此可推测星宿厅随即被废除。
Seongsucheong es el término que hace referencia a una agencia estatal que se creó al comienzo de la dinastía Joseon (1392-1910) que se encargaba de rituales oficiados por un chamán estatal con el fin de rezar por la buena fortuna y evitar calamidades para la dinastía y la corte real.

La agencia se denominó también Seongsincheong. Los términos seongsu y seongsin, ambos significan “constelación”, los que venían evidentemente del taoísmo. En el reino Goryeo (918-1392), los rituales organizados por el Estado, llamados como byeolgieun.

Estos rituales tenían los elementos mezclados del budismo, el taoísmo mientras estaban también relacionados con el chamanismo. Esta tradición continuaba en la dinastía Joseon con el establecimiento de la Seongsucheong y el nombramiento de un chamán estatal para que oficiara los ritos chamánicos nacionales.

Sin embargo, Joseon era una dinastía asentada en la creencia neo-confuciana de seongnihak, y los nobles que tenían el poder se opusieron firmemente a la existencia de Seongsucheong, especialmente después de que la corte había expulsado a todos los chamanes de la fortaleza ubicada en la capital, ya que los rituales chamánicos realizados de forma oficial en Seongsucheong eran contrarios al confucianismo. El último registro que está conservado respecto a esta agencia es la hoja de apelación enviada al rey Jungjong en el primer año de su reinado (1506) para la eliminación de Seongsucheong y la agencia taoísta llamada Sogyeokseo, por lo tanto se supone que dicha agencia fue cerrada poco después.
Seongsucheong was a state agency in early Joseon (1392-1910) that oversaw shamanic rituals to pray for good fortune and prevent calamities for the state and the royal court, officiated by gungmu, the state shaman.

The agency was also called Seongsincheong, the terms seongsu and seongsin, both meaning, “constellation, ” which were evidently borrowed from Taoism.

In Goryeo (918-1392), state-run rituals called byeolgieun were held, which mixed elements of Buddhsim and Taoism, while also connected to shamanism. This tradition continued in Joseon with the establishment of Seongsucheong and the appointment of the state shaman to officiate national shamanic rites.

Joseon, however, was a state founded on the Neo-Confucian belief of Seongnihak, and the kingdom’s ruling literati strongly opposed the existence of Seongsucheong, especially since the court had expelled all shamans from the capital’s fortress, which directly contradicted with the appointment of a state shaman and the staging of state-run shamanic rituals. The last record that remains of this agency is that of an appeal made to King Jungjong in his first year of reign (1506) for the abolishment of Seongsucheong and the Taoist agency Sogyeokseo, and it is assumed that the agency was closed soon after.
國朝五禮儀
高麗圖經
增補文獻備考
世宗實錄
국립민속박물관큰무당 우옥주 유품1995
국립민속박물관한국의 무속-서울·황해도편1999
도서출판 民俗苑한국의 굿하효길 외2002
한국무속학회황해도 굿에 쓰이는 종이 신화와 신구의 종류, 형식, 상징성 고찰양종승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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