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선도산장승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흔히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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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흔히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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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경
정의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흔히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제’라고 한다.
정의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기해 올리는 장승제. 흔히 ‘선도산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제’라고 한다.
내용청주선도산장승제의 제일(祭日)은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오전 10시로 고정되어 있다. [제관](/topic/제관)은 열흘 전에 동회(洞會)에서 한 해 부정 및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 여부를 가려 한 명을 선정한다. 제관을 흔히 ‘깨끗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며, 선정은 비교적 엄격하다. 특히 홀아비의 경우 절대적으로 배제한다. 제관은 당일금기(當日禁忌)를 준수한다. 제의 하루 전에 [대문](/topic/대문) 앞에 [금줄](/topic/금줄)을 둘러치고 [황토](/topic/황토)를 펴 외부인의 접근을 금한다. 예전에는 일주일 동안 금기를 준수하였으며, [마을](/topic/마을) 옆 개울에서 매일 목욕재계를 하였다. 선도산 물줄기가 마을 옆 개울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아직도 마을 옆 개울을 일종의 성수(聖水)로 여기고 있다.

[제물](/topic/제물)로는 삼색실과, 흰시루, 포, 탕, 정종, 돼지머리 등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석 되 서 홉의 시루를 제관집에서 직접 쪘다고 한다. 이를 ‘재수떡’이라고 불렀고, [음복](/topic/음복)할 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장승은 격년으로 새로 깎아 제장에 안치한다. 장승 재목은 반드시 선도산에 있는 ‘조선 소나무’로 정한다. 제의 사흘 전에 제관 및 청년회를 중심으로 선도산에 올라가 조선 소나무를 베어 온다. 이때 ‘장승 재목으로 베는 것이니 양해해 주십사’라는 사실을 [고지](/topic/고지)하며 간단하게 [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이후 베어 온 조선 소나무를 제의 하루 전날에 장승으로 깎는다. 장승의 외형은 투박하며, ‘글을 많이 읽은’ 노인회장이 ‘천하대[장군](/topic/장군)(天下大將軍)’ 및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먹으로 직접 쓴다. 장승이 완성되면 제단에 세워 놓고 금줄을 둘러쳐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는 등 제장 주변을 정비한다. 제의에는 남녀노소가 불문하고 동참한다. 제의는 제관을 중심으로 유교식 절차에 준해 이루어진다. [분향](/topic/분향)-[초헌](/topic/초헌)-[아헌](/topic/아헌)-[종헌](/topic/종헌)-고축-소지 등의 순이다. 소지로는 천하대장군소지, 지하여장군소지, 대동소지, 개인소지 등을 올린다. 이후 마을회관에서 음복하고 [윷놀이](/topic/윷놀이)나 [널뛰기](/topic/널뛰기)를 하며 종일토록 잔치를 베푼다.

한편 근간 몇 년 동안(2001년부터 2009년까지)은 선도산장승제의 계승과 발전을 목적으로 청주시에서 지원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지역권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이 참여함으로써 더욱 큰 규모의 장승제로 변모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마을 촌로들이 그러한 제의를 감당할 수 없어 2010년부터 다시 마을 자체적으로 장승제를 올리고 있다. 장승은 격년마다 새로이 깎아 계속 누적되어 제단을 중심으로 왼쪽 팽나무에 10여 기, 오른쪽 느티나무에 10여 기가 있다. 현재 제단 조형물은 2008년에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너비 5.5m, 높이 3.2m이다. 돌장승 한 벌은 둘 다 높이 3m이다.
내용청주선도산장승제의 제일(祭日)은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오전 10시로 고정되어 있다. [제관](/topic/제관)은 열흘 전에 동회(洞會)에서 한 해 부정 및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 여부를 가려 한 명을 선정한다. 제관을 흔히 ‘깨끗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며, 선정은 비교적 엄격하다. 특히 홀아비의 경우 절대적으로 배제한다. 제관은 당일금기(當日禁忌)를 준수한다. 제의 하루 전에 [대문](/topic/대문) 앞에 [금줄](/topic/금줄)을 둘러치고 [황토](/topic/황토)를 펴 외부인의 접근을 금한다. 예전에는 일주일 동안 금기를 준수하였으며, [마을](/topic/마을) 옆 개울에서 매일 목욕재계를 하였다. 선도산 물줄기가 마을 옆 개울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아직도 마을 옆 개울을 일종의 성수(聖水)로 여기고 있다.

[제물](/topic/제물)로는 삼색실과, 흰시루, 포, 탕, 정종, 돼지머리 등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석 되 서 홉의 시루를 제관집에서 직접 쪘다고 한다. 이를 ‘재수떡’이라고 불렀고, [음복](/topic/음복)할 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장승은 격년으로 새로 깎아 제장에 안치한다. 장승 재목은 반드시 선도산에 있는 ‘조선 소나무’로 정한다. 제의 사흘 전에 제관 및 청년회를 중심으로 선도산에 올라가 조선 소나무를 베어 온다. 이때 ‘장승 재목으로 베는 것이니 양해해 주십사’라는 사실을 [고지](/topic/고지)하며 간단하게 [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이후 베어 온 조선 소나무를 제의 하루 전날에 장승으로 깎는다. 장승의 외형은 투박하며, ‘글을 많이 읽은’ 노인회장이 ‘천하대[장군](/topic/장군)(天下大將軍)’ 및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먹으로 직접 쓴다. 장승이 완성되면 제단에 세워 놓고 금줄을 둘러쳐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는 등 제장 주변을 정비한다. 제의에는 남녀노소가 불문하고 동참한다. 제의는 제관을 중심으로 유교식 절차에 준해 이루어진다. [분향](/topic/분향)-[초헌](/topic/초헌)-[아헌](/topic/아헌)-[종헌](/topic/종헌)-고축-소지 등의 순이다. 소지로는 천하대장군소지, 지하여장군소지, 대동소지, 개인소지 등을 올린다. 이후 마을회관에서 음복하고 [윷놀이](/topic/윷놀이)나 [널뛰기](/topic/널뛰기)를 하며 종일토록 잔치를 베푼다.

한편 근간 몇 년 동안(2001년부터 2009년까지)은 선도산장승제의 계승과 발전을 목적으로 청주시에서 지원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지역권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이 참여함으로써 더욱 큰 규모의 장승제로 변모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마을 촌로들이 그러한 제의를 감당할 수 없어 2010년부터 다시 마을 자체적으로 장승제를 올리고 있다. 장승은 격년마다 새로이 깎아 계속 누적되어 제단을 중심으로 왼쪽 팽나무에 10여 기, 오른쪽 느티나무에 10여 기가 있다. 현재 제단 조형물은 2008년에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너비 5.5m, 높이 3.2m이다. 돌장승 한 벌은 둘 다 높이 3m이다.
역사청주선도산장승제의 연원을 확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18세기 초에 [마을](/topic/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장승제가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촌로들의 제보에 따르면 선도산장승제는 애초 ‘선도산할아버지바위’와 ‘선도산할머니바위’를 대상 신격(神格)으로 삼은 산신제였으며, 그러다가 산세가 험해 그곳 제장까지 오르내리기 어려워 선도산할아버지와 선도산할머니를 장승으로 깎아 장승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관련한 내용을 ‘선도산장승제 유래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발 574m의 선도산 끝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김우현, 신용, 권상, 신집 등 네 분의 [위패](/topic/위패)를 모신 [사당](/topic/사당)과 함께 홍살문이 세워진 신성한 곳으로 봉계서원이 있던 유적지로서 유서 깊은 전형적인 산악형 농경마을입니다. 이곳에 최초로 자리 잡아 7대째 살아오신 고(故) 신철휴 옹(翁)의 구전에 의하면 정조 22년 무오년(1798)에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마을 주민의 기근 상태는 극에 달하였고 괴질까지 번져 민심이 흉흉하게 이르러 선도산 팔부 능선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바위에 비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고사](/topic/고사)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단비가 내리고 괴질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로 매년 정월 보름이면 제사를 지냈는데 해가 거듭되면서 산세가 험한 중턱까지 오르내리기 어렵게 되자 마을 상터에 천하대[장군](/topic/장군) 지하여장군 두 분의 장승을 만들어 고사를 지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러 21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미풍양속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건강․취업․득남․사업․결혼 등 찾는 이가 소원성취를 빌고 가는 등 청주시의 명소로서 사랑받는 선도산의 장승제로 계승 발전되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 선도산장승제 계승발전사업 추진위원회”


‘선도산장승제 유래비’의 내용과 같이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두 기의 장승을 선도산할아버지와 선도산할머니로 인식하고 매우 영험한 마을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다.

한편 선도산이라는 명칭도 한자로는 ‘仙到山’이라고 쓰지만 ‘선도’는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를 뜻하는 ‘선돌’일 가능성이 높다. 산 정상에 못 미쳐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선도산할아버지바위’와 ‘선도산할머니바위’로 인해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역사청주선도산장승제의 연원을 확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18세기 초에 [마을](/topic/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장승제가 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촌로들의 제보에 따르면 선도산장승제는 애초 ‘선도산할아버지바위’와 ‘선도산할머니바위’를 대상 신격(神格)으로 삼은 산신제였으며, 그러다가 산세가 험해 그곳 제장까지 오르내리기 어려워 선도산할아버지와 선도산할머니를 장승으로 깎아 장승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관련한 내용을 ‘선도산장승제 유래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발 574m의 선도산 끝자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김우현, 신용, 권상, 신집 등 네 분의 [위패](/topic/위패)를 모신 [사당](/topic/사당)과 함께 홍살문이 세워진 신성한 곳으로 봉계서원이 있던 유적지로서 유서 깊은 전형적인 산악형 농경마을입니다. 이곳에 최초로 자리 잡아 7대째 살아오신 고(故) 신철휴 옹(翁)의 구전에 의하면 정조 22년 무오년(1798)에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마을 주민의 기근 상태는 극에 달하였고 괴질까지 번져 민심이 흉흉하게 이르러 선도산 팔부 능선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바위에 비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고사](/topic/고사)를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단비가 내리고 괴질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로 매년 정월 보름이면 제사를 지냈는데 해가 거듭되면서 산세가 험한 중턱까지 오르내리기 어렵게 되자 마을 상터에 천하대[장군](/topic/장군) 지하여장군 두 분의 장승을 만들어 고사를 지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러 21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미풍양속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건강․취업․득남․사업․결혼 등 찾는 이가 소원성취를 빌고 가는 등 청주시의 명소로서 사랑받는 선도산의 장승제로 계승 발전되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 선도산장승제 계승발전사업 추진위원회”


‘선도산장승제 유래비’의 내용과 같이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두 기의 장승을 선도산할아버지와 선도산할머니로 인식하고 매우 영험한 마을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다.

한편 선도산이라는 명칭도 한자로는 ‘仙到山’이라고 쓰지만 ‘선도’는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를 뜻하는 ‘선돌’일 가능성이 높다. 산 정상에 못 미쳐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선도산할아버지바위’와 ‘선도산할머니바위’로 인해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역사례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수조사한 ‘한국의 동제’를 [기초](/topic/기초)자료로 통계를 내면 충북에서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신앙의 유형은 산신제(395개 마을), 서낭제(290개 마을), 탑제(56개 마을), 장승제(27개 마을), 수살제(28개 마을), [샘제](/topic/샘제)(16개 마을), 둥구나무제(30개 마을), 선돌제(7개 마을), [거리제](/topic/거리제)(8개 마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마을신앙의 유형 가운데 특히 산신제가 충북 전역에 걸쳐서 우세하게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단양군과 제천시에서는 산신제보다 서낭제가 우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동군은 둥구나무제, 옥천군은 탑제 및 장승제, 청원군은 수구제가 각각 산신제 다음으로 전승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산신제가 두루 분포하면서도 상당제와 하당제가 가장 두드러[지게](/topic/지게) 나타나는 곳은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등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상당제인 산신제에 탑제, 장승제, 수구제, 샘제, 둥구나무제, 선돌제, 거리제 등의 하당제가 두세 [가지](/topic/가지)씩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한편 음성군은 단독 제의로 나타나는 산신제가 두드러진다. 괴산군, 보은군, 영동군 등지에서는 마을신앙을 세분화하지 않고 상당제와 하당제를 모두 합쳐 ‘동제’나 ‘동고사’ 또는 ‘동제사’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하당은 지역에 따라 독자적 형태를 하고 있다. 장승을 하당으로 삼고 있는 것들을 형태 및 지역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승과 선돌의 결합’이다. 옥천군의 군북면 항곡리 항골마을, 군북면 환평리 시범마을, 청성면 화성리 석성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당집과 장승의 결합’이다.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빗재마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오량동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장승과 신목의 결합’이다. 보은군의 외속리면 서원리와 탄부면 하장1리, 청원군의 가덕면 행정리, 문의면 괴곡리 괴실마을, 미원면 중리 족실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장승과 [돌탑](/topic/돌탑)의 결합’이다. 옥천군 군서면 사정리 향정마을, 청원군 문의면 마구리와 문덕리 앞실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돌탑과 샘과 장승의 결합’이다. 청원군 문의면 마동리 마징이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섯째 ‘장승과 솟대와 돌탑의 결합’이다.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 수동마을,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마티마을,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소도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곱째 ‘당집과 신목과 장승의 결합’이다. 보은군 산외면 문암리 복실골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덟째 ‘장승과 선돌과 돌탑과 신목의 결합’이다.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 성암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문화유적 분포지도-청주시 (충북대학교 박물관·청주시, 1998)
지역사례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수조사한 ‘한국의 동제’를 [기초](/topic/기초)자료로 통계를 내면 충북에서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신앙의 유형은 산신제(395개 마을), 서낭제(290개 마을), 탑제(56개 마을), 장승제(27개 마을), 수살제(28개 마을), [샘제](/topic/샘제)(16개 마을), 둥구나무제(30개 마을), 선돌제(7개 마을), [거리제](/topic/거리제)(8개 마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마을신앙의 유형 가운데 특히 산신제가 충북 전역에 걸쳐서 우세하게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단양군과 제천시에서는 산신제보다 서낭제가 우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동군은 둥구나무제, 옥천군은 탑제 및 장승제, 청원군은 수구제가 각각 산신제 다음으로 전승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산신제가 두루 분포하면서도 상당제와 하당제가 가장 두드러[지게](/topic/지게) 나타나는 곳은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등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상당제인 산신제에 탑제, 장승제, 수구제, 샘제, 둥구나무제, 선돌제, 거리제 등의 하당제가 두세 [가지](/topic/가지)씩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한편 음성군은 단독 제의로 나타나는 산신제가 두드러진다. 괴산군, 보은군, 영동군 등지에서는 마을신앙을 세분화하지 않고 상당제와 하당제를 모두 합쳐 ‘동제’나 ‘동고사’ 또는 ‘동제사’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하당은 지역에 따라 독자적 형태를 하고 있다. 장승을 하당으로 삼고 있는 것들을 형태 및 지역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승과 선돌의 결합’이다. 옥천군의 군북면 항곡리 항골마을, 군북면 환평리 시범마을, 청성면 화성리 석성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당집과 장승의 결합’이다.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빗재마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오량동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장승과 신목의 결합’이다. 보은군의 외속리면 서원리와 탄부면 하장1리, 청원군의 가덕면 행정리, 문의면 괴곡리 괴실마을, 미원면 중리 족실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장승과 [돌탑](/topic/돌탑)의 결합’이다. 옥천군 군서면 사정리 향정마을, 청원군 문의면 마구리와 문덕리 앞실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돌탑과 샘과 장승의 결합’이다. 청원군 문의면 마동리 마징이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섯째 ‘장승과 솟대와 돌탑의 결합’이다.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 수동마을,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마티마을,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 소도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곱째 ‘당집과 신목과 장승의 결합’이다. 보은군 산외면 문암리 복실골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덟째 ‘장승과 선돌과 돌탑과 신목의 결합’이다.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 성암마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문화유적 분포지도-청주시 (충북대학교 박물관·청주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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