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남녀가 결혼 후 자식이 없을 때 삼신을 받는 기자신앙 의례에서 사용되는 삼신을 받는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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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이정재 |
정의 | 남녀가 결혼 후 자식이 없을 때 삼신을 받는 기자신앙 의례에서 사용되는 삼신을 받는 대. | 정의 | 남녀가 결혼 후 자식이 없을 때 삼신을 받는 기자신앙 의례에서 사용되는 삼신을 받는 대. | 내용 | 집안에 후사가 없거나 결혼 후 3~4년이 지나도 임신이 안 되면 삼신을 받아 모신다. 이를 ‘[삼신받기](/topic/삼신받기)’라고 한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삼신대이다. 이것은 [성줏대](/topic/성줏대)나 신대와 유사한, 비교적 단순한 형태이다. 삼신대는 이런 유형 외에 [삼신바[가지](/topic/가지)](/topic/삼신바가지), 삼신시루, 삼신청수받이 같은 삼신받이 또는 삼신신체와 혼용되기도 한다. 삼신받이의 양상이 다른 만큼 삼신대가 사용되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삼신대는 다양한 방법의 기자치성과 연관된다. 삼신을 받을 때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앉은 삼신굿’의 경우에는 삼신을 바가지에 받아서 앉힌다. ‘삼신바가지’ 외에 ‘삼신청수받이’, ‘삼신시루내림’ 등이 있다. ‘삼신바가지’의 경우 바가지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으로 사용하고, 그 안에는 그해 거둔 햅쌀을 담아 둔다. 삼신바가지는 진설된 상에 놓아두었다가 부부합숙거리 때 당주가 방 안 삼신자리에 옮겨 [봉안](/topic/봉안)한다. 이때 삼신을 받는 과정에서 삼신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삼신대는 소나무 가지 등을 꺾어 손잡이를 [한지](/topic/한지)로 싸 옷을 입힌 뒤 바가지 쌀에 꽂아 놓는다. 삼신대 없이 삼신바가지만 진설할 경우 그 자체가 삼신대 역할을 한다. 법사나 무당이 경을 외면 이 삼신대가 흔들린다. 이 의미는 삼신을 받았다는 표시이다. 삼신대를 잡고 경을 욀 때 법사나 무당의 손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삼신을 받는 방법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삼신대가 가리키는 물건을 아무것이나 주워 삼신으로 위하기도 하고 삼신경문으로만 받기도 한다. 삼신대 대신 오방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아예 없이 삼신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삼신대는 나무의 맨 윗가지를 잘라 사용한다. 크지 않게 하며, 한지를 잎에 매달기도 한다. 보통굿에서 사용하는 신대보다 크기가 작고 형태가 단순하다. 옥외의 산천에서 굿을 할 때 삼신을 받아 부부의 몸에 앉히는 굿을 ‘뜬 삼신굿’이라 한다. 이 경우 소나무나 들쭉나무로 만든 삼신대를 잡고 경을 외면 삼신대가 이끄는 곳으로 가서 삼신을 받는다. 그 주변에 있는 소나무나 대나무의 나뭇가지를 꺾어 삼신 앞에 놓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는 삼신, 삼신받이, 삼신대의 경계가 모호하다. 무당이나 법사가 주관하는 옥외 삼신받이 치성을 드릴 때 무당은 칠성, 용궁, 산 또는 산의 용궁에 가서 삼신을 받는다. 산신이나 산신용왕에서 삼신을 받을 때는 미리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삼신을 받는다. 용왕에서 삼신을 받을 때는 미리 장소를 정갈하게 한다. 쌀, 바가지, 과일, 삼신 시루, 산신 시루, 초, [무명](/topic/무명)실, 향, 물, 마른 미역 등을 마련하고 쌀을 바가지에 담아 삼신대를 꽂아 둔다. 용왕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올린다. 법사는 부정경을 외고, 육개주를 열고, 역대축원을 하고, 용왕경을 외고 나서 삼신경을 왼다. 삼신경을 외면 삼신대가 흔들린다. 삼신을 삼신대에 안정시키고 난 뒤 [퇴송](/topic/퇴송)을 한다. 이때 용왕을 보좌하는 용왕수비를 위해 상을 따로 차리기도 한다. 이렇게 제를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받은 삼신은 당사자가 기거하는 방 [윗목](/topic/윗목)에 모신다. 삼신께 따로 밥을 지어 미역국과 함께 정성스레 올린다. [비손](/topic/비손)을 하고 난 뒤에 부부는 그 밥을 나누어 먹는다. 부부는 이후 사흘 동안 부정한 것을 보거나 행해서는 안 된다. 굿을 하지 않은 상태로 무당이 직접 삼신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무당은 용왕에게 가서 삼신을 받는다. 무당과 함께 예비 산모가 깨끗한 샘이나 깊은 산속의 샘으로 간다. 물이 합수하는 곳을 택하기도 한다. 향을 피우고 소금으로 부정을 친 뒤 보살이 축원을 한다. 조상의 한을 풀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산신소지-용왕소지-식구소지 등 순으로 한다. 샘에 갈 때는 물병을 하나 준비한다. 그리고 그 병에 물을 담고 [솔가지](/topic/솔가지)를 꽂아 거꾸로 들고 온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은 산모가 되어 젖이 잘 나오라는 의미이다. 솔가지를 꽂지 않고 그냥 물만 받아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고 오면 사람들은 삼신을 받아 오는 줄로 알고 말을 걸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 밥, 미역국, 떠 온 물을 삼신에게 바치고 기원한다. 삼신에게 바친 제물은 삼신을 받은 사람만 먹는다. 샘이나 [우물](/topic/우물) 외에 서낭나무에서 삼신을 받기도 한다. 서낭나무 가지를 조금 꺾어서 짚을 깔고 삼신 앞에 놓고 위한다. 이 경우 병, 솔가지, 서낭나무 등은 삼신대의 한 변이형이다. 가정 내에서 행하는 굿의 형태가 아니라 [안택](/topic/안택)으로 삼신을 받는 경우가 있다. 여느 안택과 같이 집안의 신령들에게 치성을 드리고 대를 잡아 집안의 대소사를 묻는다. 이때 마지막으로 ‘삼신이 떠 있는가?’라고 묻는다. 삼신이 떠 있다고 하면 [대잡이](/topic/대잡이)가 삼신이 내린 집 주변의 나무로 나가 삼신을 모셔 온다. 이 경우 사용된 대를 삼신대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사용된 삼신대는 성줏대와 유사하다. 무당의 지시에 따르기도 한다. 즉 무당에게 가서 좋은 날을 정하고 택일한 날 저녁에 떡 한 시루, 메 한 그릇, 나물 세 가지 등을 마련하여 깊은 산중으로 간다. 산에 올라 신령이 내릴 만한 장소를 골라 짚을 깔고 제물 진설을 한 다음 비손을 한다. 대개는 큰 바위 앞에서 한다. 치성을 드린 뒤에는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서 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로 소나무나 대나무 등이다. 오는 도중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여 주로 인적이 끊어진 시간에 이동한다. 꺾어온 나뭇가지는 삼신대로 집에 모신다. 이 경우 삼신대는 삼신 신체(神體) 역할을 한다. 절로 삼신을 받으러 가는 경우는 주로 삼일 기도를 올린다. 쌀, 미역, 삼색실과, [오이](/topic/오이) 등을 준비해 가거나 쌀, 미역, [실타래](/topic/실타래) 등을 준비하기도 한다. 오이는 남자아이를 상징한다. 스님은 불공을 드리고 나서 삼신을 받아 준다. 삼신을 받으면 삼신의 신체로 삼신바가지를 만들어 놓는다. 바가지 안에는 쌀을 넣어 놓고, 명이 길어지라는 의미로 실을 올려놓은 다음 [백지](/topic/백지)로 씌워 보관한다. 돌아오는 길에 쉬지도 말고,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삼신을 받은 뒤 사흘 동안은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다. 이때는 별도로 삼신대가 등장하지 않지만 스님이 지정한 삼신바가지에 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 안과 밖에서 하는 개인굿 또는 개인치성 외에 삼신굿을 [마을](/topic/마을)굿 단위로 하는 지역이 더러 있다. 조사된 전국의 동제 자료에 따르면 충남 공주시 중동 앵산공원,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2동 운정마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 대전광역시 동구 하소동 복재마을, 보령시 오천면 교성리 김신마을 등 다섯 개 마을이 해당된다. 삼신제와 관련한 자료에서도 삼신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가 공주시 중동에 소략하게 남아 있지만 그 실상을 여실히 알기는 어렵다. 중동의 삼신굿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신제라 일컬어지는 굿은 공주시 중동 앵산공원에서 이루어졌다. [삼신상](/topic/삼신상)을 차리고 무당은 삼신대를 준비한다. 삼신상에는 메 한 그릇, 맑은 물과 미역국 각각 한 그릇, 삼신 시루(백설기)를 차린다. 삼신제는 부정경-태을보신경-축원문-삼신경-삼신받이-내전푸리의 순서로 진행된다. 삼신제에서는 ‘귀딩이 [덕담](/topic/덕담)’이라는 [축문](/topic/축문) 성격의 소리가 있다. 귀딩이는 아이를 일컫는다. “오색채운(五色彩雲) 가득하고/ 서기생기(瑞氣生氣) 충만한 날/ 천지생동(天地生動) 깨우는 탄명성(誕鳴聲)/ 옥동자의 순산이라/ 어허 둥둥 옥동자요 어허 둥둥 금동자요/ 귀한 자식 얻었으니 없던 춤이 절로 나네/ 귀한 자식 얻어 놓고 소지(燒紙) 한 장 없을쏘냐/ 삼신당(三神堂)에 꿇어앉아 두 손 모고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전에 비나이다/ 입은 덕도 많거니와 새론 원을 발원하오니(후략)” 마을 사람들은 삼신제를 통해 받은 삼신을 각 가정에 모신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집은 [대문](/topic/대문)에 [금줄](/topic/금줄)을 친다. 산모는 미역국과 쌀밥을 먹는다. 이때 삼신제에서 받은 삼신에게 먼저 올린 다음에 먹었다. 집 안 윗목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밥상을 놓는 형식이다. 또한 돌잔치에는 풍물패가 찾아가 대문이나 바깥[마당](/topic/마당)에서 고사상을 차려 놓고 ‘귀딩이 덕담’을 불러 축원한다. | 내용 | 집안에 후사가 없거나 결혼 후 3~4년이 지나도 임신이 안 되면 삼신을 받아 모신다. 이를 ‘[삼신받기](/topic/삼신받기)’라고 한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삼신대이다. 이것은 [성줏대](/topic/성줏대)나 신대와 유사한, 비교적 단순한 형태이다. 삼신대는 이런 유형 외에 [삼신바[가지](/topic/가지)](/topic/삼신바가지), 삼신시루, 삼신청수받이 같은 삼신받이 또는 삼신신체와 혼용되기도 한다. 삼신받이의 양상이 다른 만큼 삼신대가 사용되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삼신대는 다양한 방법의 기자치성과 연관된다. 삼신을 받을 때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앉은 삼신굿’의 경우에는 삼신을 바가지에 받아서 앉힌다. ‘삼신바가지’ 외에 ‘삼신청수받이’, ‘삼신시루내림’ 등이 있다. ‘삼신바가지’의 경우 바가지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으로 사용하고, 그 안에는 그해 거둔 햅쌀을 담아 둔다. 삼신바가지는 진설된 상에 놓아두었다가 부부합숙거리 때 당주가 방 안 삼신자리에 옮겨 [봉안](/topic/봉안)한다. 이때 삼신을 받는 과정에서 삼신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삼신대는 소나무 가지 등을 꺾어 손잡이를 [한지](/topic/한지)로 싸 옷을 입힌 뒤 바가지 쌀에 꽂아 놓는다. 삼신대 없이 삼신바가지만 진설할 경우 그 자체가 삼신대 역할을 한다. 법사나 무당이 경을 외면 이 삼신대가 흔들린다. 이 의미는 삼신을 받았다는 표시이다. 삼신대를 잡고 경을 욀 때 법사나 무당의 손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삼신을 받는 방법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삼신대가 가리키는 물건을 아무것이나 주워 삼신으로 위하기도 하고 삼신경문으로만 받기도 한다. 삼신대 대신 오방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아예 없이 삼신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삼신대는 나무의 맨 윗가지를 잘라 사용한다. 크지 않게 하며, 한지를 잎에 매달기도 한다. 보통굿에서 사용하는 신대보다 크기가 작고 형태가 단순하다. 옥외의 산천에서 굿을 할 때 삼신을 받아 부부의 몸에 앉히는 굿을 ‘뜬 삼신굿’이라 한다. 이 경우 소나무나 들쭉나무로 만든 삼신대를 잡고 경을 외면 삼신대가 이끄는 곳으로 가서 삼신을 받는다. 그 주변에 있는 소나무나 대나무의 나뭇가지를 꺾어 삼신 앞에 놓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는 삼신, 삼신받이, 삼신대의 경계가 모호하다. 무당이나 법사가 주관하는 옥외 삼신받이 치성을 드릴 때 무당은 칠성, 용궁, 산 또는 산의 용궁에 가서 삼신을 받는다. 산신이나 산신용왕에서 삼신을 받을 때는 미리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삼신을 받는다. 용왕에서 삼신을 받을 때는 미리 장소를 정갈하게 한다. 쌀, 바가지, 과일, 삼신 시루, 산신 시루, 초, [무명](/topic/무명)실, 향, 물, 마른 미역 등을 마련하고 쌀을 바가지에 담아 삼신대를 꽂아 둔다. 용왕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올린다. 법사는 부정경을 외고, 육개주를 열고, 역대축원을 하고, 용왕경을 외고 나서 삼신경을 왼다. 삼신경을 외면 삼신대가 흔들린다. 삼신을 삼신대에 안정시키고 난 뒤 [퇴송](/topic/퇴송)을 한다. 이때 용왕을 보좌하는 용왕수비를 위해 상을 따로 차리기도 한다. 이렇게 제를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받은 삼신은 당사자가 기거하는 방 [윗목](/topic/윗목)에 모신다. 삼신께 따로 밥을 지어 미역국과 함께 정성스레 올린다. [비손](/topic/비손)을 하고 난 뒤에 부부는 그 밥을 나누어 먹는다. 부부는 이후 사흘 동안 부정한 것을 보거나 행해서는 안 된다. 굿을 하지 않은 상태로 무당이 직접 삼신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무당은 용왕에게 가서 삼신을 받는다. 무당과 함께 예비 산모가 깨끗한 샘이나 깊은 산속의 샘으로 간다. 물이 합수하는 곳을 택하기도 한다. 향을 피우고 소금으로 부정을 친 뒤 보살이 축원을 한다. 조상의 한을 풀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산신소지-용왕소지-식구소지 등 순으로 한다. 샘에 갈 때는 물병을 하나 준비한다. 그리고 그 병에 물을 담고 [솔가지](/topic/솔가지)를 꽂아 거꾸로 들고 온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은 산모가 되어 젖이 잘 나오라는 의미이다. 솔가지를 꽂지 않고 그냥 물만 받아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고 오면 사람들은 삼신을 받아 오는 줄로 알고 말을 걸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 밥, 미역국, 떠 온 물을 삼신에게 바치고 기원한다. 삼신에게 바친 제물은 삼신을 받은 사람만 먹는다. 샘이나 [우물](/topic/우물) 외에 서낭나무에서 삼신을 받기도 한다. 서낭나무 가지를 조금 꺾어서 짚을 깔고 삼신 앞에 놓고 위한다. 이 경우 병, 솔가지, 서낭나무 등은 삼신대의 한 변이형이다. 가정 내에서 행하는 굿의 형태가 아니라 [안택](/topic/안택)으로 삼신을 받는 경우가 있다. 여느 안택과 같이 집안의 신령들에게 치성을 드리고 대를 잡아 집안의 대소사를 묻는다. 이때 마지막으로 ‘삼신이 떠 있는가?’라고 묻는다. 삼신이 떠 있다고 하면 [대잡이](/topic/대잡이)가 삼신이 내린 집 주변의 나무로 나가 삼신을 모셔 온다. 이 경우 사용된 대를 삼신대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사용된 삼신대는 성줏대와 유사하다. 무당의 지시에 따르기도 한다. 즉 무당에게 가서 좋은 날을 정하고 택일한 날 저녁에 떡 한 시루, 메 한 그릇, 나물 세 가지 등을 마련하여 깊은 산중으로 간다. 산에 올라 신령이 내릴 만한 장소를 골라 짚을 깔고 제물 진설을 한 다음 비손을 한다. 대개는 큰 바위 앞에서 한다. 치성을 드린 뒤에는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서 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로 소나무나 대나무 등이다. 오는 도중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여 주로 인적이 끊어진 시간에 이동한다. 꺾어온 나뭇가지는 삼신대로 집에 모신다. 이 경우 삼신대는 삼신 신체(神體) 역할을 한다. 절로 삼신을 받으러 가는 경우는 주로 삼일 기도를 올린다. 쌀, 미역, 삼색실과, [오이](/topic/오이) 등을 준비해 가거나 쌀, 미역, [실타래](/topic/실타래) 등을 준비하기도 한다. 오이는 남자아이를 상징한다. 스님은 불공을 드리고 나서 삼신을 받아 준다. 삼신을 받으면 삼신의 신체로 삼신바가지를 만들어 놓는다. 바가지 안에는 쌀을 넣어 놓고, 명이 길어지라는 의미로 실을 올려놓은 다음 [백지](/topic/백지)로 씌워 보관한다. 돌아오는 길에 쉬지도 말고,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삼신을 받은 뒤 사흘 동안은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다. 이때는 별도로 삼신대가 등장하지 않지만 스님이 지정한 삼신바가지에 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 안과 밖에서 하는 개인굿 또는 개인치성 외에 삼신굿을 [마을](/topic/마을)굿 단위로 하는 지역이 더러 있다. 조사된 전국의 동제 자료에 따르면 충남 공주시 중동 앵산공원,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2동 운정마을,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 대전광역시 동구 하소동 복재마을, 보령시 오천면 교성리 김신마을 등 다섯 개 마을이 해당된다. 삼신제와 관련한 자료에서도 삼신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가 공주시 중동에 소략하게 남아 있지만 그 실상을 여실히 알기는 어렵다. 중동의 삼신굿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신제라 일컬어지는 굿은 공주시 중동 앵산공원에서 이루어졌다. [삼신상](/topic/삼신상)을 차리고 무당은 삼신대를 준비한다. 삼신상에는 메 한 그릇, 맑은 물과 미역국 각각 한 그릇, 삼신 시루(백설기)를 차린다. 삼신제는 부정경-태을보신경-축원문-삼신경-삼신받이-내전푸리의 순서로 진행된다. 삼신제에서는 ‘귀딩이 [덕담](/topic/덕담)’이라는 [축문](/topic/축문) 성격의 소리가 있다. 귀딩이는 아이를 일컫는다. “오색채운(五色彩雲) 가득하고/ 서기생기(瑞氣生氣) 충만한 날/ 천지생동(天地生動) 깨우는 탄명성(誕鳴聲)/ 옥동자의 순산이라/ 어허 둥둥 옥동자요 어허 둥둥 금동자요/ 귀한 자식 얻었으니 없던 춤이 절로 나네/ 귀한 자식 얻어 놓고 소지(燒紙) 한 장 없을쏘냐/ 삼신당(三神堂)에 꿇어앉아 두 손 모고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전에 비나이다/ 입은 덕도 많거니와 새론 원을 발원하오니(후략)” 마을 사람들은 삼신제를 통해 받은 삼신을 각 가정에 모신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집은 [대문](/topic/대문)에 [금줄](/topic/금줄)을 친다. 산모는 미역국과 쌀밥을 먹는다. 이때 삼신제에서 받은 삼신에게 먼저 올린 다음에 먹었다. 집 안 윗목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밥상을 놓는 형식이다. 또한 돌잔치에는 풍물패가 찾아가 대문이나 바깥[마당](/topic/마당)에서 고사상을 차려 놓고 ‘귀딩이 덕담’을 불러 축원한다. | 역사 | 기자신앙은 멀리 고대에서 근원한다. 에서 웅녀가 신단수 아래에서 자식을 기원하는 기록을 들 수 있다. 이때부터 삼신대를 사용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신단수를 삼신을 받는 신대로 볼 수 있다. 신단수가 간략화 상징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삼신대로 이어져 존속한다는 해석에는 개연성이 있다. | 역사 | 기자신앙은 멀리 고대에서 근원한다. 에서 웅녀가 신단수 아래에서 자식을 기원하는 기록을 들 수 있다. 이때부터 삼신대를 사용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신단수를 삼신을 받는 신대로 볼 수 있다. 신단수가 간략화 상징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삼신대로 이어져 존속한다는 해석에는 개연성이 있다. | 형태 | 삼신대는 충청도와 전라도지역에서 잘 알려진 신대나 [성줏대](/topic/성줏대)와 유사한 형태이다. 규모가 작고, 주로 소나무나 대나무를 꺾어 만든다. 삼신대의 모양과 기능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 형태 | 삼신대는 충청도와 전라도지역에서 잘 알려진 신대나 [성줏대](/topic/성줏대)와 유사한 형태이다. 규모가 작고, 주로 소나무나 대나무를 꺾어 만든다. 삼신대의 모양과 기능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 의의 | 삼신대는 다양한 형식의 기자치성과 관련이 있으며, 각각의 경우에 따라 삼신을 받는 과정에서 사용된 특수한 도구이다. 충청도, 전라도지역에는 비교적 근래까지 삼신대의 전통이 남아 있었다. 삼신대는 삼신을 받을 때 필요한 신대로, 신받음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삼신대의 기능․의미․역할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어 삼신, 삼신받이, [삼신바[가지](/topic/가지)](/topic/삼신바가지), 삼신대가 혼용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은 삼신신앙이 쇠퇴함에 따라 삼신굿과 기자치성이 사라지는 추세이다. 삼신대의 존재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높은 곳이나 나무 또는 바위를 통해 신을 받는다는 사고는 삼신대의 기능과 역할이 다른 형식으로 잔존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 충청도 무가 (김영진, 형설출판사, 1976)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赤松智城ㆍ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전라민속논고 (이규창, 집문당, 1994) 공주지명지 (공주시․공주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1997) 공주의 소리 (이걸재, 공주문화원, 1999)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의의 | 삼신대는 다양한 형식의 기자치성과 관련이 있으며, 각각의 경우에 따라 삼신을 받는 과정에서 사용된 특수한 도구이다. 충청도, 전라도지역에는 비교적 근래까지 삼신대의 전통이 남아 있었다. 삼신대는 삼신을 받을 때 필요한 신대로, 신받음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삼신대의 기능․의미․역할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어 삼신, 삼신받이, [삼신바[가지](/topic/가지)](/topic/삼신바가지), 삼신대가 혼용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은 삼신신앙이 쇠퇴함에 따라 삼신굿과 기자치성이 사라지는 추세이다. 삼신대의 존재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높은 곳이나 나무 또는 바위를 통해 신을 받는다는 사고는 삼신대의 기능과 역할이 다른 형식으로 잔존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 충청도 무가 (김영진, 형설출판사, 1976)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赤松智城ㆍ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전라민속논고 (이규창, 집문당, 1994) 공주지명지 (공주시․공주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1997) 공주의 소리 (이걸재, 공주문화원, 1999)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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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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