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흥리방사탑

한국무속신앙사전
제주신흥리방사탑
제주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 자연석을 원통형으로 앃아 올린 탑. 1995년 8월 26일에 ‘제주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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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 자연석을 원통형으로 앃아 올린 탑. 1995년 8월 26일에 ‘제주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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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정의제주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 자연석을 원통형으로 앃아 올린 탑. 1995년 8월 26일에 ‘제주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제주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 자연석을 원통형으로 앃아 올린 탑. 1995년 8월 26일에 ‘제주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내용[마을](/topic/마을) 사람들이 만든 포구(浦口) 내에 넓고 평편하게 형성된 암반(巖盤) 위에 하나를 세웠고, 포구를 형성하는 코지의 높은 곳에 또 하나를 세웠다. 원통형의 탑 위에 ‘[돌하르방](/topic/돌하르방)’처럼 생긴 돌[기둥](/topic/기둥)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신흥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4㎞ 떨어진 조천리와 함덕리 사이의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이다. 북쪽은 바다이고, 나머지 방향은 조천리와 함덕리가 둘러싸고 있다. 땅은 좁게 물가를 따라 좁고 길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은 예부터 ‘왜포’, ‘내포(內浦)’, ‘고포’라 불리던 곳이다. 주변의 다른 마을에서 분리되어 그들 마을보다 늦은 1914년경에 형성되었기에 신흥리라 불리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어촌과 같이 바다를 가꾸면서 농사도 짓고 있다. 해마다 정초에 남성들은 포제(酺祭), 여성들은 당굿, 어촌계원들은 해신제(海神祭)를 각각 지내면서 마을민의 안녕과 계원들의 해상에서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다. 2010년 현재 270가구 73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바다와 밭을 함께 가꾸면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신흥리는 [배산임수](/topic/배산임수)(背山臨水)의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바다와 연결된 평탄한 암반(巖盤)으로 되어 있고 지형이 ‘깅이(게)’ 형국을 하고 있어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쫓기듯 허덕이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을 지나가던 신안(神眼)이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형편을 보고 ‘탑’을 세워 방비(防備)할 것을 일렀다.

마을 사람들은 협력하면서 5개의 탑을 포구 주변에 세웠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2개만이 옛 모습 그대로 전해질 뿐이다. 볼래낭 할망당 부근에 세운 것과 마을을 가로질러 포구로 이어지는 ‘새물깍’ 부근의 갯가 수문(水門) 근처 ‘덕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곳에 세운 것은 성창을 만들 때 훼손되면서 옛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다.

탑을 세우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제나 쫓기듯 살던 팍팍한 삶이 개선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도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흥리 1호탑
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신흥리 포구에 닿으면 포구 중앙에 바다 쪽으로 길게 자연석을 쌓아 만든 방파제가 뻗어 있다. 포구 가운데 가장 넓은 곳이어서 ‘큰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포구로 밀려 들어오는 멸치 떼를 몰아서 잡을 때 이용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신흥리 1호탑은 이 방파제의 끝에서 5m 정도 떨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큰개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큰개탑’, 새들이 움푹 파인 상부에 날아와 새끼를 부화하는 곳으로 이용하면서 ‘생이탑’이라고도 부fms다. 특히 신흥리 2호탑인 ‘오다리탑’과 대비시켜 음탑(陰塔)이라고도 불린다.

신흥리 방사탑이라는 명칭으로 1995년 8월 26일 제주도 민속자료 제8-1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이 탑은 조천읍 신흥리 521[번지](/topic/번지)(큰개)에 위치한다.

높이 245㎝로 사람 키보다 높다. 밑지름은 370㎝, 윗지름은 330㎝이다. 평상시에 물이 들어와 바닥을 볼 수 없지만 물이 빠졌을 때 보면 현무암 자연석 암반 위에 큰 돌로 굽을 놓고 그 위로 갈수록 작은 잡석을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는 편평하게 보이지만 중앙 부분이 50㎝ 정도 움푹 파여 있다.


신흥리 2호탑
마을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현무암의 자연석들로 인해 조금 높은 듯한 곳에 자연석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린 신흥리 2호탑이 있다. 탑 상부에는 사람의 얼굴을 조각한 것처럼 생긴 현무암 자연석이 얹혀 있다.

바다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시멘트 포장을 한 도로가 난 긴 ‘코지’가 있다.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오다리 코지’라고 한다. 지금도 탑 옆에서 성게 작업을 하는 나이 드신 해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신흥리 2호탑을 오다리 코지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오다리탑, 상부에 세워 놓은 양근(陽根) 같은 석상 때문에 신흥리 1호탑인 ‘큰개탑’과 대비해 양탑(陽塔)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신흥리 방사탑이라는 명칭으로 1995년 8월 26일 제주도 민속자료 제8-11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이 탑은 조천읍 신흥리 531-1번지(불턱)에 위치한다.

바닥이 불균형을 이루어 높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높은 쪽은 250㎝, 낮은 쪽은180㎝ 정도이이며, 밑지름은 432㎝, 윗지름은 410㎝ 크기이다.

코지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 놓은 것이어서 언제나 전체를 볼 수 있다. 현무암으로 구성된 잡석을 모아 굽을 만들고 그 위로 갈수록 작은 잡석을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는 편평하게 보이지만 중앙 부분에 사람 형상을 한 돌을 세워 놓았다.

2006년에 해안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신흥리 포구 주변에 3개의 탑 세 개를 더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형태와 크기는 선인(先人)들이 쌓은 것과 비슷하다. 두 개는 큰개탑보다 좀 더 북쪽인 바다 쪽으로 나가 양식장이 있는 곳에서 사구(砂丘)가 발달해 물이 빠지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바닥은 현무암을 암반으로하여 역시 굵고 큰 현무암을 굽으로 놓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을 이루고 있다. 상부에는 석상인 듯 느껴지는 돌을 올려놓았다.

또 하나의 탑은 발달한 사구가 끊긴 지점에 형성된 암반 위에 굽을 놓고 현무암의 잡석을 쌓아 올렸다.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에는 사람 모습인 듯한 돌을 얹어 놓았다.

나머지 하나는 포구 오른쪽으로 말굽형의 코지 위 높은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소형 보트가 정박하는 시멘트로 만든 포구를 곁에 두고 자리한 해신당(海神堂)의 제단(祭壇) 옆에 잡석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바다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안전, 풍어, 만선을 담당하는 해신(海神)을 매년 정월 초아흐렛날에 모셔와 위하는 곳이다. 밑지름이 넓고 윗지름이 좁은 원추형이며, 상부에는 키 큰 돌을 세워 놓았다.

마을 사람들의 바쁘고 지친 삶으로 몰아가는 액을 방비하게 위해 신안(神眼)이 일러주고 마을 사람들이 세운 탑은 옛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늘도 이웃 주민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면서 온전하게 자리하고 있다.
내용[마을](/topic/마을) 사람들이 만든 포구(浦口) 내에 넓고 평편하게 형성된 암반(巖盤) 위에 하나를 세웠고, 포구를 형성하는 코지의 높은 곳에 또 하나를 세웠다. 원통형의 탑 위에 ‘[돌하르방](/topic/돌하르방)’처럼 생긴 돌[기둥](/topic/기둥)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신흥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4㎞ 떨어진 조천리와 함덕리 사이의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이다. 북쪽은 바다이고, 나머지 방향은 조천리와 함덕리가 둘러싸고 있다. 땅은 좁게 물가를 따라 좁고 길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은 예부터 ‘왜포’, ‘내포(內浦)’, ‘고포’라 불리던 곳이다. 주변의 다른 마을에서 분리되어 그들 마을보다 늦은 1914년경에 형성되었기에 신흥리라 불리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어촌과 같이 바다를 가꾸면서 농사도 짓고 있다. 해마다 정초에 남성들은 포제(酺祭), 여성들은 당굿, 어촌계원들은 해신제(海神祭)를 각각 지내면서 마을민의 안녕과 계원들의 해상에서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다. 2010년 현재 270가구 73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바다와 밭을 함께 가꾸면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신흥리는 [배산임수](/topic/배산임수)(背山臨水)의 일반적인 형태와 달리 바다와 연결된 평탄한 암반(巖盤)으로 되어 있고 지형이 ‘깅이(게)’ 형국을 하고 있어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쫓기듯 허덕이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을 지나가던 신안(神眼)이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형편을 보고 ‘탑’을 세워 방비(防備)할 것을 일렀다.

마을 사람들은 협력하면서 5개의 탑을 포구 주변에 세웠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2개만이 옛 모습 그대로 전해질 뿐이다. 볼래낭 할망당 부근에 세운 것과 마을을 가로질러 포구로 이어지는 ‘새물깍’ 부근의 갯가 수문(水門) 근처 ‘덕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곳에 세운 것은 성창을 만들 때 훼손되면서 옛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다.

탑을 세우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제나 쫓기듯 살던 팍팍한 삶이 개선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도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흥리 1호탑
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신흥리 포구에 닿으면 포구 중앙에 바다 쪽으로 길게 자연석을 쌓아 만든 방파제가 뻗어 있다. 포구 가운데 가장 넓은 곳이어서 ‘큰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포구로 밀려 들어오는 멸치 떼를 몰아서 잡을 때 이용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 신흥리 1호탑은 이 방파제의 끝에서 5m 정도 떨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큰개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큰개탑’, 새들이 움푹 파인 상부에 날아와 새끼를 부화하는 곳으로 이용하면서 ‘생이탑’이라고도 부fms다. 특히 신흥리 2호탑인 ‘오다리탑’과 대비시켜 음탑(陰塔)이라고도 불린다.

신흥리 방사탑이라는 명칭으로 1995년 8월 26일 제주도 민속자료 제8-1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이 탑은 조천읍 신흥리 521[번지](/topic/번지)(큰개)에 위치한다.

높이 245㎝로 사람 키보다 높다. 밑지름은 370㎝, 윗지름은 330㎝이다. 평상시에 물이 들어와 바닥을 볼 수 없지만 물이 빠졌을 때 보면 현무암 자연석 암반 위에 큰 돌로 굽을 놓고 그 위로 갈수록 작은 잡석을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는 편평하게 보이지만 중앙 부분이 50㎝ 정도 움푹 파여 있다.


신흥리 2호탑
마을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현무암의 자연석들로 인해 조금 높은 듯한 곳에 자연석을 원추형으로 쌓아 올린 신흥리 2호탑이 있다. 탑 상부에는 사람의 얼굴을 조각한 것처럼 생긴 현무암 자연석이 얹혀 있다.

바다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시멘트 포장을 한 도로가 난 긴 ‘코지’가 있다.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오다리 코지’라고 한다. 지금도 탑 옆에서 성게 작업을 하는 나이 드신 해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신흥리 2호탑을 오다리 코지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오다리탑, 상부에 세워 놓은 양근(陽根) 같은 석상 때문에 신흥리 1호탑인 ‘큰개탑’과 대비해 양탑(陽塔)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신흥리 방사탑이라는 명칭으로 1995년 8월 26일 제주도 민속자료 제8-11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이 탑은 조천읍 신흥리 531-1번지(불턱)에 위치한다.

바닥이 불균형을 이루어 높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높은 쪽은 250㎝, 낮은 쪽은180㎝ 정도이이며, 밑지름은 432㎝, 윗지름은 410㎝ 크기이다.

코지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 놓은 것이어서 언제나 전체를 볼 수 있다. 현무암으로 구성된 잡석을 모아 굽을 만들고 그 위로 갈수록 작은 잡석을 쌓아 올려 전체적으로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는 편평하게 보이지만 중앙 부분에 사람 형상을 한 돌을 세워 놓았다.

2006년에 해안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신흥리 포구 주변에 3개의 탑 세 개를 더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형태와 크기는 선인(先人)들이 쌓은 것과 비슷하다. 두 개는 큰개탑보다 좀 더 북쪽인 바다 쪽으로 나가 양식장이 있는 곳에서 사구(砂丘)가 발달해 물이 빠지면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바닥은 현무암을 암반으로하여 역시 굵고 큰 현무암을 굽으로 놓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을 이루고 있다. 상부에는 석상인 듯 느껴지는 돌을 올려놓았다.

또 하나의 탑은 발달한 사구가 끊긴 지점에 형성된 암반 위에 굽을 놓고 현무암의 잡석을 쌓아 올렸다. 밑이 넓고 위가 좁은 원추형이다. 상부에는 사람 모습인 듯한 돌을 얹어 놓았다.

나머지 하나는 포구 오른쪽으로 말굽형의 코지 위 높은 동산에 위치하고 있다. 소형 보트가 정박하는 시멘트로 만든 포구를 곁에 두고 자리한 해신당(海神堂)의 제단(祭壇) 옆에 잡석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바다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안전, 풍어, 만선을 담당하는 해신(海神)을 매년 정월 초아흐렛날에 모셔와 위하는 곳이다. 밑지름이 넓고 윗지름이 좁은 원추형이며, 상부에는 키 큰 돌을 세워 놓았다.

마을 사람들의 바쁘고 지친 삶으로 몰아가는 액을 방비하게 위해 신안(神眼)이 일러주고 마을 사람들이 세운 탑은 옛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늘도 이웃 주민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면서 온전하게 자리하고 있다.
정음사한국의 무조흥윤1983
서울특별시서울육백년사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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