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고혼

한국무속신앙사전
책임지는 자 없어 외로운 영혼.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천도재](/topic/천도재)(薦度齋)를 올리거나 제사를 올리거나, 이른바 망자(亡者)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저승에서도 잘 지낸다고한다. 그런데 후손 등 의지할 곳이 없이 망자가 된 이들은 무주고혼이 되어 배고픈 존재로 관념한다. 때로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의 한 유형으로 정의되면서 배불리 먹여 주지 않으면 해코지할 수 있는 존재로 관념되기도 한다. 한국의 [마을](/topic/마을) 제의에서는 후사(後嗣)가 없이 돌아간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준다. 이를 [무후제](/topic/무후제)(無後祭) 등으로 부르며 전국적으로 존재한다.
definition
책임지는 자 없어 외로운 영혼.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천도재](/topic/천도재)(薦度齋)를 올리거나 제사를 올리거나, 이른바 망자(亡者)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저승에서도 잘 지낸다고한다. 그런데 후손 등 의지할 곳이 없이 망자가 된 이들은 무주고혼이 되어 배고픈 존재로 관념한다. 때로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의 한 유형으로 정의되면서 배불리 먹여 주지 않으면 해코지할 수 있는 존재로 관념되기도 한다. 한국의 [마을](/topic/마을) 제의에서는 후사(後嗣)가 없이 돌아간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준다. 이를 [무후제](/topic/무후제)(無後祭) 등으로 부르며 전국적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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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정의책임지는 자 없어 외로운 영혼.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천도재](/topic/천도재)(薦度齋)를 올리거나 제사를 올리거나, 이른바 망자(亡者)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저승에서도 잘 지낸다고한다. 그런데 후손 등 의지할 곳이 없이 망자가 된 이들은 무주고혼이 되어 배고픈 존재로 관념한다. 때로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의 한 유형으로 정의되면서 배불리 먹여 주지 않으면 해코지할 수 있는 존재로 관념되기도 한다. 한국의 [마을](/topic/마을) 제의에서는 후사(後嗣)가 없이 돌아간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준다. 이를 [무후제](/topic/무후제)(無後祭) 등으로 부르며 전국적으로 존재한다.
정의책임지는 자 없어 외로운 영혼.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천도재](/topic/천도재)(薦度齋)를 올리거나 제사를 올리거나, 이른바 망자(亡者)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저승에서도 잘 지낸다고한다. 그런데 후손 등 의지할 곳이 없이 망자가 된 이들은 무주고혼이 되어 배고픈 존재로 관념한다. 때로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의 한 유형으로 정의되면서 배불리 먹여 주지 않으면 해코지할 수 있는 존재로 관념되기도 한다. 한국의 [마을](/topic/마을) 제의에서는 후사(後嗣)가 없이 돌아간 이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 준다. 이를 [무후제](/topic/무후제)(無後祭) 등으로 부르며 전국적으로 존재한다.
참조잡귀
참고문헌진도의 여제고 (나경수, 호남문화연구 17,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1987)
[조선의 귀신](/topic/조선의귀신) (村山智順, 김희경 역, 동문선, 19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1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강원인의 [일생의례](/topic/일생의례) (김의숙 외, 민속원, 2005)
[무자후제사](/topic/무자후제사) (이경엽, 한국세시풍속사전-봄, 국립민속박물관, 2005)
여제연구-조선왕조실록 기사를 중심으로 (안병국, 우리문학연구 19, 우리문학회, 2006)
강원도 [무후제](/topic/무후제) 조사 연구 (이학주,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 2007)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상·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호남 무속의 존재양상 (이경엽, 한국무속학 15, 한국무속학회, 2007)
법성포 단오제의수륙재 수용 가능성 (이영금, 한국무속학 17, 한국무속학회, 2008)
참조잡귀
참고문헌진도의 여제고 (나경수, 호남문화연구 17,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1987)
[조선의 귀신](/topic/조선의귀신) (村山智順, 김희경 역, 동문선, 199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1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강원인의 [일생의례](/topic/일생의례) (김의숙 외, 민속원, 2005)
[무자후제사](/topic/무자후제사) (이경엽, 한국세시풍속사전-봄, 국립민속박물관, 2005)
여제연구-조선왕조실록 기사를 중심으로 (안병국, 우리문학연구 19, 우리문학회, 2006)
강원도 [무후제](/topic/무후제) 조사 연구 (이학주,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 2007)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상·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호남 무속의 존재양상 (이경엽, 한국무속학 15, 한국무속학회, 2007)
법성포 단오제의수륙재 수용 가능성 (이영금, 한국무속학 17, 한국무속학회, 2008)
내용무주고혼은 신앙 관념에서 정식으로 위함을 받는 신격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민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상신](/topic/조상신)(祖上神)이 된다고 하지만 후사가 없는 경우에는 신이 되지 못하고 떠도는 이른바 무주고혼이 된다고 관념한다. 이 때문에 무주고혼이라는 명칭은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雜鬼雜神)과도 연관되어 보통 혼용해 쓰게 된다. 이를 구분하면 다양한 유형의 신을 통틀어 정의하는 잡귀잡신에 무주고혼이 한 유형이 된다. 무주고혼은 불교 제의인 수륙재라든가, 무주고혼과 관련한 [마을](/topic/마을) 제의로는 전국적으로 후사 없는 이들을 위한유교식 공동 제사인 [무후제](/topic/무후제)가 있다.

무후제는 자손을 두지 못하고 죽은 분을 위해 동네 차원에서 드리는 제사이다. 무연고제(無緣故祭), 무후사제(無後嗣祭), 후손 없는 조상제사, 무연고 노인제사, 동네할아버지제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무후제는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제의로, 시기 또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무후제를 지내 주는 경우는 작고한 사람이 생전에 마을에 기여했거나작고하면서 자기 재산을 마을에 희사함으로써 마을 차원에서 예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무주고혼이 하나의 [원귀](/topic/원귀)(寃鬼)로 간주되고, 이 원귀의 해원을 해 주지 않으면 마을의 변고가 일어난다는 관념도 존재한다. 물론 이때 무주고혼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무주고혼을 포함한 잡귀잡신이 문제가 된다. 무주고혼을 포함하여 원귀를 달래 해악을 방지하려는 것은 전국의 마을 제의에서는 보편적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단위에서 여단(癘壇)을 두고 이들 원귀에 대한 제의를 시행하였다. 이것이 ‘여제(癘祭)’이다. 1929년에 간행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귀신](/topic/조선의귀신)(朝鮮の鬼神)』 가운데 여귀(癘鬼)에 대한 기록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봉상시(奉常寺)에 신실을 만들어 놓고 제신을 [봉안](/topic/봉안)하는데 그중에는 무사의 귀신을 2좌 15위에 나누어 모시고 있다. 즉 다음과 같다.

동좌육위(東坐六位)
조병인사자(遭兵刃死者), 우수화도적사자(遇水火盜賊死者), 피인취재물핍사자(被人取財物逼死者), 피인강탈처첩사자(被人强奪妻妾死者), 조병화부굴사자(遭兵禍負屈死者), 인천재질역사자(人天災疾疫死者)

서좌구위(西坐九位)
위맹수독충소해사자(爲猛獸毒蟲所害死者), 전투사자(戰鬪死者), 피장옥압사자(被墻屋壓死者), 동뇌사자(凍餒死者), 인위급자액사자(因危急自縊死者), 산난사자(産難死者), 진사자(震死者), 몰이무후사자(歿而無後死者), 추사자(墜死者)

그리고 이 귀신을 제사 지내는 것은 청명(淸明)과 7월 15일, 10월 15일 세 차례 행하고, 그 제사는 북쪽에 있는 여단(癘壇)에 성황일위(城隍一位)와 무사귀신(無祀鬼神) 15위를경성부윤이 주재자가 되고 [예조](/topic/예조)(禮曹)에서 사관(祀官)을 보내어 거행하였다. 이렇게 정중하게 제사를 지낸 까닭은 [사당](/topic/사당)이 없는 귀신, 즉 여귀는 분한(憤恨)의 기가 응집되어 질병이 생기게 하고,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며 변괴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조위하는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쪽에 여섯, 서쪽에 아홉의 존재들을 봉안하고 제의를 지냈다. 무주고혼은 서쪽에‘몰이무후사자(歿而無後死者)’라 정의되고 있다. 무후사자 외에 서쪽에 있는 영혼들은 보통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은 자들이다. 맹수와 독 있는 벌레에 죽은 자, 전투에서 죽은 자, [담장](/topic/담장)이나 집에 깔려 죽은 자, 얼거나 굶주려 죽은 자, 위기로 인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자, 애를 낳다가 죽은 자, 벼락 맞아 죽은 자, 추락해 죽은 자들이다.

무주고혼에 대한 배려는 불교 의례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마을굿에서도 나타난다. 전북의 무속식 마을굿이라 할 수 있는 수륙재는불교제의의 무속적 변용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래는 없던 것이 불교제의를 변용하여 만들어졌다고 보기보다는 무속제의가 불교제의와 만나면서 새로운 양상을 보인 것으로 추측된다. 명칭이 수륙재이지 그 제의의 구성이나 연행 양상은 무속식 굿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며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종교의식’으로 정의된다.

오늘날 불교의 제의 모범으로 삼는『 석문의범(釋門儀範)』에서는 이 제의의 취지를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천도받게 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어떤 대상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과 관계된 영역에서 떠돌며 허기진 영혼들을 ‘종교적 평등’관에 입각하여 천도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혼 가운데 무주고혼이 그 대상에 속하게 된다.마을굿으로서의 전북 수륙재에도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마을 재수굿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신과 함께 무주고혼을 포함한 잡귀잡신에 대한 해원을 하는 것이다.
내용무주고혼은 신앙 관념에서 정식으로 위함을 받는 신격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민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상신](/topic/조상신)(祖上神)이 된다고 하지만 후사가 없는 경우에는 신이 되지 못하고 떠도는 이른바 무주고혼이 된다고 관념한다. 이 때문에 무주고혼이라는 명칭은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雜鬼雜神)과도 연관되어 보통 혼용해 쓰게 된다. 이를 구분하면 다양한 유형의 신을 통틀어 정의하는 잡귀잡신에 무주고혼이 한 유형이 된다. 무주고혼은 불교 제의인 수륙재라든가, 무주고혼과 관련한 [마을](/topic/마을) 제의로는 전국적으로 후사 없는 이들을 위한유교식 공동 제사인 [무후제](/topic/무후제)가 있다.

무후제는 자손을 두지 못하고 죽은 분을 위해 동네 차원에서 드리는 제사이다. 무연고제(無緣故祭), 무후사제(無後嗣祭), 후손 없는 조상제사, 무연고 노인제사, 동네할아버지제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무후제는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제의로, 시기 또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무후제를 지내 주는 경우는 작고한 사람이 생전에 마을에 기여했거나작고하면서 자기 재산을 마을에 희사함으로써 마을 차원에서 예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무주고혼이 하나의 [원귀](/topic/원귀)(寃鬼)로 간주되고, 이 원귀의 해원을 해 주지 않으면 마을의 변고가 일어난다는 관념도 존재한다. 물론 이때 무주고혼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무주고혼을 포함한 잡귀잡신이 문제가 된다. 무주고혼을 포함하여 원귀를 달래 해악을 방지하려는 것은 전국의 마을 제의에서는 보편적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단위에서 여단(癘壇)을 두고 이들 원귀에 대한 제의를 시행하였다. 이것이 ‘여제(癘祭)’이다. 1929년에 간행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귀신](/topic/조선의귀신)(朝鮮の鬼神)』 가운데 여귀(癘鬼)에 대한 기록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봉상시(奉常寺)에 신실을 만들어 놓고 제신을 [봉안](/topic/봉안)하는데 그중에는 무사의 귀신을 2좌 15위에 나누어 모시고 있다. 즉 다음과 같다.

동좌육위(東坐六位)
조병인사자(遭兵刃死者), 우수화도적사자(遇水火盜賊死者), 피인취재물핍사자(被人取財物逼死者), 피인강탈처첩사자(被人强奪妻妾死者), 조병화부굴사자(遭兵禍負屈死者), 인천재질역사자(人天災疾疫死者)

서좌구위(西坐九位)
위맹수독충소해사자(爲猛獸毒蟲所害死者), 전투사자(戰鬪死者), 피장옥압사자(被墻屋壓死者), 동뇌사자(凍餒死者), 인위급자액사자(因危急自縊死者), 산난사자(産難死者), 진사자(震死者), 몰이무후사자(歿而無後死者), 추사자(墜死者)

그리고 이 귀신을 제사 지내는 것은 청명(淸明)과 7월 15일, 10월 15일 세 차례 행하고, 그 제사는 북쪽에 있는 여단(癘壇)에 성황일위(城隍一位)와 무사귀신(無祀鬼神) 15위를경성부윤이 주재자가 되고 [예조](/topic/예조)(禮曹)에서 사관(祀官)을 보내어 거행하였다. 이렇게 정중하게 제사를 지낸 까닭은 [사당](/topic/사당)이 없는 귀신, 즉 여귀는 분한(憤恨)의 기가 응집되어 질병이 생기게 하고,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며 변괴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조위하는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쪽에 여섯, 서쪽에 아홉의 존재들을 봉안하고 제의를 지냈다. 무주고혼은 서쪽에‘몰이무후사자(歿而無後死者)’라 정의되고 있다. 무후사자 외에 서쪽에 있는 영혼들은 보통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은 자들이다. 맹수와 독 있는 벌레에 죽은 자, 전투에서 죽은 자, [담장](/topic/담장)이나 집에 깔려 죽은 자, 얼거나 굶주려 죽은 자, 위기로 인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자, 애를 낳다가 죽은 자, 벼락 맞아 죽은 자, 추락해 죽은 자들이다.

무주고혼에 대한 배려는 불교 의례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마을굿에서도 나타난다. 전북의 무속식 마을굿이라 할 수 있는 수륙재는불교제의의 무속적 변용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래는 없던 것이 불교제의를 변용하여 만들어졌다고 보기보다는 무속제의가 불교제의와 만나면서 새로운 양상을 보인 것으로 추측된다. 명칭이 수륙재이지 그 제의의 구성이나 연행 양상은 무속식 굿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며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종교의식’으로 정의된다.

오늘날 불교의 제의 모범으로 삼는『 석문의범(釋門儀範)』에서는 이 제의의 취지를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천도받게 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어떤 대상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과 관계된 영역에서 떠돌며 허기진 영혼들을 ‘종교적 평등’관에 입각하여 천도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혼 가운데 무주고혼이 그 대상에 속하게 된다.마을굿으로서의 전북 수륙재에도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마을 재수굿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신과 함께 무주고혼을 포함한 잡귀잡신에 대한 해원을 하는 것이다.
지역사례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배점[마을](/topic/마을)에서는 이 마을의 실존 인물인 배순(裵純)을 마을의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음력 정월에 배순정려비와 배순정려각에서 마을제인 ‘배충신제사’를 지낸다. 이 제사에 드는 비용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배순 명의의 땅에서 나온 돈이다. 본래의 배순 명의의 땅이 모두 매각된 뒤에는 후손 없이 작고한 단양할머니와 충주할머니가 마을에 기증한 땅의 [소작](/topic/소작)료로 충당하고 있다. 단양할머니의 땅은 미미하지만 충주할머니 땅은 2.640㎡쯤 된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단양할머니의 경우 [벌초](/topic/벌초)를해 주기는 하지만 제사는 드리지 않고 충주할머니의 경우 벌초를 해 주고 가을에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러나 점차 제의가 축약되면서 마을제에 붙여 도가집에서 상을 차려 충주할머니의 제사를 올린다.

전남 보성군 복내면 봉천리 당촌마을은 정월에 지내는 마을 제의 명칭을 ‘별신제’라 칭한다. 별신제는 공간적으로 세 곳에서 순차적으로 치러진다. 명칭은 각각 ‘당산제(堂山祭)’, ‘별신제(別神祭)’, ‘이사제(里社祭)’이다. 당산제는 마을 오른쪽 언덕에 있는 나무에서 지내며, 마을의 주신격인 ‘할아버지’를 모신다. 별신제는 마을 왼쪽 언덕인 ‘별신당’이라는 당집에서 모신다. 마을에서 20~30분 거리의 마을 뒷산에 위치한 것을 옮긴 것이다. 이사제는 마을 중앙의 논에서 모시며, 대나무를 얽어 [제상](/topic/제상)을 임시로만들어 떡시루를 얹는다. 이사제 이후에 ‘[박첨지](/topic/박첨지)’라는 인물에 대한 제사를 지낸다. 이 ‘박첨지’가 바로 자식 없이 죽게 된 인물이었다. 작고 시에 논을 마을에 기증하고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마을 제사에 자신에게 거친 밥이라도 올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그 희사한 논에서 얻은 비용으로 마을제를 치렀다.

전남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1구 중촌 서촌 당산제에서는 마을 제의 끝에 이 마을을 위해 궂은일을 하며 자식 없이 작고한 [머슴](/topic/머슴) 업단이에게 [헌식](/topic/헌식)하는 것으로 당산제를 마친다. 이때 “출산아, 업단아, 이 음식 잘 먹고 올해는 우리 마을에 좋은 일만 있게 도와 주라”라고 세 번 외친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천리 노치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에 지내던 것을 백중으로 옮겨서 지내고 있다. 마을 뒤편 산 중턱에 소나무와 돌이 있어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주신으로 모신다. 이 당산제를 끝내면 자식 없이 자신의 전답을 마을에 헌납하고 죽은 이 두 노인의 합동 제사를 마을회관에서 드린다.
지역사례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배점[마을](/topic/마을)에서는 이 마을의 실존 인물인 배순(裵純)을 마을의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음력 정월에 배순정려비와 배순정려각에서 마을제인 ‘배충신제사’를 지낸다. 이 제사에 드는 비용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배순 명의의 땅에서 나온 돈이다. 본래의 배순 명의의 땅이 모두 매각된 뒤에는 후손 없이 작고한 단양할머니와 충주할머니가 마을에 기증한 땅의 [소작](/topic/소작)료로 충당하고 있다. 단양할머니의 땅은 미미하지만 충주할머니 땅은 2.640㎡쯤 된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단양할머니의 경우 [벌초](/topic/벌초)를해 주기는 하지만 제사는 드리지 않고 충주할머니의 경우 벌초를 해 주고 가을에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러나 점차 제의가 축약되면서 마을제에 붙여 도가집에서 상을 차려 충주할머니의 제사를 올린다.

전남 보성군 복내면 봉천리 당촌마을은 정월에 지내는 마을 제의 명칭을 ‘별신제’라 칭한다. 별신제는 공간적으로 세 곳에서 순차적으로 치러진다. 명칭은 각각 ‘당산제(堂山祭)’, ‘별신제(別神祭)’, ‘이사제(里社祭)’이다. 당산제는 마을 오른쪽 언덕에 있는 나무에서 지내며, 마을의 주신격인 ‘할아버지’를 모신다. 별신제는 마을 왼쪽 언덕인 ‘별신당’이라는 당집에서 모신다. 마을에서 20~30분 거리의 마을 뒷산에 위치한 것을 옮긴 것이다. 이사제는 마을 중앙의 논에서 모시며, 대나무를 얽어 [제상](/topic/제상)을 임시로만들어 떡시루를 얹는다. 이사제 이후에 ‘[박첨지](/topic/박첨지)’라는 인물에 대한 제사를 지낸다. 이 ‘박첨지’가 바로 자식 없이 죽게 된 인물이었다. 작고 시에 논을 마을에 기증하고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마을 제사에 자신에게 거친 밥이라도 올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기에 그 희사한 논에서 얻은 비용으로 마을제를 치렀다.

전남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1구 중촌 서촌 당산제에서는 마을 제의 끝에 이 마을을 위해 궂은일을 하며 자식 없이 작고한 [머슴](/topic/머슴) 업단이에게 [헌식](/topic/헌식)하는 것으로 당산제를 마친다. 이때 “출산아, 업단아, 이 음식 잘 먹고 올해는 우리 마을에 좋은 일만 있게 도와 주라”라고 세 번 외친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천리 노치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에 지내던 것을 백중으로 옮겨서 지내고 있다. 마을 뒤편 산 중턱에 소나무와 돌이 있어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주신으로 모신다. 이 당산제를 끝내면 자식 없이 자신의 전답을 마을에 헌납하고 죽은 이 두 노인의 합동 제사를 마을회관에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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