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한국무속신앙사전
소금단지는 [마을](/topic/마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화재를 막기 위한 [풍수](/topic/풍수)상의 조치로 마을의 산에 묻는 일종의 제구(祭具)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神體)가 되기도 한다.
definition
소금단지는 [마을](/topic/마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화재를 막기 위한 [풍수](/topic/풍수)상의 조치로 마을의 산에 묻는 일종의 제구(祭具)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神體)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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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정의소금단지는 [마을](/topic/마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화재를 막기 위한 [풍수](/topic/풍수)상의 조치로 마을의 산에 묻는 일종의 제구(祭具)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神體)가 되기도 한다.
정의소금단지는 [마을](/topic/마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화재를 막기 위한 [풍수](/topic/풍수)상의 조치로 마을의 산에 묻는 일종의 제구(祭具)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神體)가 되기도 한다.
내용소금단지와 간물단지는 화기(火氣)를 제압하는 [풍수](/topic/풍수)의 조치이다. 즉 [마을](/topic/마을)에 자주 일어나는 화재는 풍수의 관점에서 마을 앞산이나 그 부근의 산에서 내뿜는 화기에 의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한 화산(火山)을 제어하는 주술적 수단으로 화산이 비치는 맞은편 산에 소금단지나 간물단지를 묻는다.

동제 때에 물과 관련하여 술, 곧 조라를 올리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소금과 간물을 제구로 사용하는 것은 독특하다. 마을의 풍수지형에 따라서 적극적인 재액 제거와 풍수상의 엽승을 하는 경우는 종종 나타난다. 마을이 뱀 형국인 경우 뱀이 마을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바깥 동쪽에 있는 한 바위를 두꺼비라고 여기고 이 바위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화재를 막기 위해 소금단지나 간물단지 이외에 화재뱅이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솟대 위에는 흔히 물새의 대표격인 오리를 앉히는데, 이 오리가있는 마을은 호수나 강가 또는 바다로 여겨지기 때문에 화신(火神)이 오다가 멈춘다는 것이다. 소금단지나 간물단지 묻기는 모두 마을이 화[기와](/topic/기와) 관련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기에 여느 마을의 동제와는 달리 마을 형국에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이다.
내용소금단지와 간물단지는 화기(火氣)를 제압하는 [풍수](/topic/풍수)의 조치이다. 즉 [마을](/topic/마을)에 자주 일어나는 화재는 풍수의 관점에서 마을 앞산이나 그 부근의 산에서 내뿜는 화기에 의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한 화산(火山)을 제어하는 주술적 수단으로 화산이 비치는 맞은편 산에 소금단지나 간물단지를 묻는다.

동제 때에 물과 관련하여 술, 곧 조라를 올리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소금과 간물을 제구로 사용하는 것은 독특하다. 마을의 풍수지형에 따라서 적극적인 재액 제거와 풍수상의 엽승을 하는 경우는 종종 나타난다. 마을이 뱀 형국인 경우 뱀이 마을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바깥 동쪽에 있는 한 바위를 두꺼비라고 여기고 이 바위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화재를 막기 위해 소금단지나 간물단지 이외에 화재뱅이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솟대 위에는 흔히 물새의 대표격인 오리를 앉히는데, 이 오리가있는 마을은 호수나 강가 또는 바다로 여겨지기 때문에 화신(火神)이 오다가 멈춘다는 것이다. 소금단지나 간물단지 묻기는 모두 마을이 화[기와](/topic/기와) 관련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기에 여느 마을의 동제와는 달리 마을 형국에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이다.
역사소금단지와 간물단지에 대한 유래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자료는 없다. 다만 [마을](/topic/마을)에서 구전되어 오는 유래담이 있다.

유래담 가운데에는 그 연원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 시기는 사실상 신빙성이 없다. 소금단지와 같은 맥락의 간물단지를 묻었던 경북 영덕군 남정면 남정리에서는 유래의 배경이 고려 중엽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방증할 만한 자료는 전혀 없다. 소금무지산으로 유명한 충북 단양 두악산의 소금단지는 산의 명칭과 관련해 보면 오랜 역사성을 지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두악산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알려진 명산이었다. 단양은 1319년(고려 충숙왕 6)부터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지금의 단양 군청소재지가 이전되기까지 667년간 두악산 아래에 [자리](/topic/자리)하고 있었다. [공민왕](/topic/공민왕) 때에는‘합단의 난’을 물리친 공로로 단산부가 되고 두악산은 단양의 [진산](/topic/진산)으로 품위를 다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두악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기 전에는 소금무지산이라고 하였는데 언제부터 소금무지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역사소금단지와 간물단지에 대한 유래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헌자료는 없다. 다만 [마을](/topic/마을)에서 구전되어 오는 유래담이 있다.

유래담 가운데에는 그 연원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 시기는 사실상 신빙성이 없다. 소금단지와 같은 맥락의 간물단지를 묻었던 경북 영덕군 남정면 남정리에서는 유래의 배경이 고려 중엽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방증할 만한 자료는 전혀 없다. 소금무지산으로 유명한 충북 단양 두악산의 소금단지는 산의 명칭과 관련해 보면 오랜 역사성을 지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두악산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알려진 명산이었다. 단양은 1319년(고려 충숙왕 6)부터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지금의 단양 군청소재지가 이전되기까지 667년간 두악산 아래에 [자리](/topic/자리)하고 있었다. [공민왕](/topic/공민왕) 때에는‘합단의 난’을 물리친 공로로 단산부가 되고 두악산은 단양의 [진산](/topic/진산)으로 품위를 다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두악산으로 산이름이 바뀌기 전에는 소금무지산이라고 하였는데 언제부터 소금무지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역사례소금단지 신앙과 관련된 지역으로는 단양의 두악산, 경북 영덕의 남정[마을](/topic/마을), 전북 무주의 대차리 서면마을을 들 수 있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남정리에서는 요즘도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과 5월 초닷새 단옷날에 동제를 지낸다. 그런데 남정마을에서는 예부터 원인 모를 큰 불이 나서 피해가 심했다. 게다가 가뭄마저 자주 들어 농사는 늘 흉작이었다. 하루는 용한 [지관](/topic/지관)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화재와 가뭄을 막을 방법을 일러주었다. 마을 앞에 화산(火山)이 비치는데, 화기를 억제하기 위해서 화산이 비치는 앞산에 간물단지를 묻고 항시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지관이 정해준 대로, 화산 봉우리를 중심으로 100m 간격으로 간물단지를 묻었다. 이를 일화(一火), 이화(二火), 삼화(三火)라 한다. 동제의 [제관](/topic/제관)으로 선출된 사람은 음력 정월 열사흗날 세 단지에 물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깨진 단지가 있으면 새 것으로 바꾸고 정월 열나흗날 마을과 인접한 남호(南湖)바다의 간물을 채운다. 혹 물이 줄어 있거나 말라 있으면 남호 바닷물을 보충해 준다. 간물은 바로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을 뜻한다. 평소 간물단지가 묻힌 곳에는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고 정월대보름날 동제 후에 풍물패가 간물단지에 지신(地神)을 밟을 때만허용된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 두악산(斗岳山, 732m)은 일명 소금무지산으로 알려져 있다. 두악산은 영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에서 죽령터널을 가기 전에 남한강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치한 동산 같은 산이다. 이 산은 단양의 [진산](/topic/진산)(鎭山)으로 화재를 막기 위해 소금을 묻고 물을 뿌렸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지금도 산 정상에는 소금이 가득 담겨 있는 항아리가 네 개 묻혀있다. 단성향토문화연구회에서 해마다 지역의 발전과 안녕, 풍년을 기원하는 소금무지제를 지낸다. 또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소금무지에서 기도하면 아기를낳는다는 속설이 옛날부터 전해진다.

오래전부터 단양은 화재가 빈번한 고을로 유명하였다. 언젠가는 한 마을 전체가 잿더미가 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해 단양의 진산인 두악산이 화산(火山)이기에 고을이 번창하지 못할 정도로 화재가 빈번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던 어느날, 한 도인(道人)이 고을 한복판에 연못을 파고 두악산 꼭대기에 소금과 물을 담은 항아리 세 개를 묻어 놓으라고 방책을 일러주었다.

사연인즉 단양 고을의 지명은 모두 양(陽)으로 화기(火氣)이고 진산인 두악산이 불꽃 모양이라, 강바람이 몰아쳐 단(丹)의 붉은 기운을 몰아세우고 양(陽)의 뜨거운 빛을 밀어서 두악산으로 밀어내 [굴뚝](/topic/굴뚝) 형상을 만드니 불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중앙에 가구당 한 명씩 들어갈 만한 크기의 연못을 파고 식구 수대로 물을 부어 놓으면 화기가 진정될 것이며, 불꽃 형상인 두악산에 두 항아리를 묻고 하나는 소금을, 다른 하나는 고을 북쪽을 흐르는 한강물을 담아서 항상 소금과 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면 화재 방비가 된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곧바로 도인이 시킨 대로 행하니 거짓말처럼 불이 나지 않았다. 이후로 두악산을 소금무지산이라 불렀다. 이 소금과 물은 불을 막을 뿐만 아니라 홍수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두악산에는 [맷돌](/topic/맷돌)을 굴려 혼인을 하게 된 젊은 남녀가 단양 장씨(丹陽 張氏)의 선조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어서 기자(祈子) 치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단양천이나 한강물에 목욕재계한 뒤 한강물과 소금을 지고 산에 올라 물단지와 소금단지에 부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특히 음력 정월대보름과 팔월 한가위에는아들을 얻으려는 아낙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금무지산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불려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국토지리설을 만들며 두악산이라 개명하여 그대로 부르다가 1994년부터 단성향토문화연구회에서 우리 역사 바로알기 운동으로 소금무지산이라 병행하여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소금과 한강수를 붓고 소금무지제를 지내고 있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마을은 20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인데, [초가집](/topic/초가집)이 많던 시절에는 화재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뒷산에 화산의 기운을 막을 수 있는 소금단지를 묻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면 해마다 산제를 지내는데, 그날 저녁 산제 지내기 전에 마을의 유사(有司)가 소금을 담은 조그만 항아리를 손으로 받쳐 들고 혼자 뒷산에 올라가 묻고 왔다. 이 일은 해마다 반복되므로 뒷산에는 소금 담은 항아리가 매우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근래에는 도깨비집 축제를 벌이는데 마을 뒷산에 도깨비집, 산신당, 당산나무가 있어서 도깨비집부터 차례로 제를 지낸다. 마을 밖에 화산이 있어서 화재를 막는다고 그 산에[화재막이](/topic/화재막이)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한다.
지역사례소금단지 신앙과 관련된 지역으로는 단양의 두악산, 경북 영덕의 남정[마을](/topic/마을), 전북 무주의 대차리 서면마을을 들 수 있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남정리에서는 요즘도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과 5월 초닷새 단옷날에 동제를 지낸다. 그런데 남정마을에서는 예부터 원인 모를 큰 불이 나서 피해가 심했다. 게다가 가뭄마저 자주 들어 농사는 늘 흉작이었다. 하루는 용한 [지관](/topic/지관)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화재와 가뭄을 막을 방법을 일러주었다. 마을 앞에 화산(火山)이 비치는데, 화기를 억제하기 위해서 화산이 비치는 앞산에 간물단지를 묻고 항시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지관이 정해준 대로, 화산 봉우리를 중심으로 100m 간격으로 간물단지를 묻었다. 이를 일화(一火), 이화(二火), 삼화(三火)라 한다. 동제의 [제관](/topic/제관)으로 선출된 사람은 음력 정월 열사흗날 세 단지에 물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깨진 단지가 있으면 새 것으로 바꾸고 정월 열나흗날 마을과 인접한 남호(南湖)바다의 간물을 채운다. 혹 물이 줄어 있거나 말라 있으면 남호 바닷물을 보충해 준다. 간물은 바로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을 뜻한다. 평소 간물단지가 묻힌 곳에는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고 정월대보름날 동제 후에 풍물패가 간물단지에 지신(地神)을 밟을 때만허용된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 두악산(斗岳山, 732m)은 일명 소금무지산으로 알려져 있다. 두악산은 영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에서 죽령터널을 가기 전에 남한강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치한 동산 같은 산이다. 이 산은 단양의 [진산](/topic/진산)(鎭山)으로 화재를 막기 위해 소금을 묻고 물을 뿌렸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지금도 산 정상에는 소금이 가득 담겨 있는 항아리가 네 개 묻혀있다. 단성향토문화연구회에서 해마다 지역의 발전과 안녕, 풍년을 기원하는 소금무지제를 지낸다. 또한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소금무지에서 기도하면 아기를낳는다는 속설이 옛날부터 전해진다.

오래전부터 단양은 화재가 빈번한 고을로 유명하였다. 언젠가는 한 마을 전체가 잿더미가 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해 단양의 진산인 두악산이 화산(火山)이기에 고을이 번창하지 못할 정도로 화재가 빈번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던 어느날, 한 도인(道人)이 고을 한복판에 연못을 파고 두악산 꼭대기에 소금과 물을 담은 항아리 세 개를 묻어 놓으라고 방책을 일러주었다.

사연인즉 단양 고을의 지명은 모두 양(陽)으로 화기(火氣)이고 진산인 두악산이 불꽃 모양이라, 강바람이 몰아쳐 단(丹)의 붉은 기운을 몰아세우고 양(陽)의 뜨거운 빛을 밀어서 두악산으로 밀어내 [굴뚝](/topic/굴뚝) 형상을 만드니 불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중앙에 가구당 한 명씩 들어갈 만한 크기의 연못을 파고 식구 수대로 물을 부어 놓으면 화기가 진정될 것이며, 불꽃 형상인 두악산에 두 항아리를 묻고 하나는 소금을, 다른 하나는 고을 북쪽을 흐르는 한강물을 담아서 항상 소금과 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면 화재 방비가 된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곧바로 도인이 시킨 대로 행하니 거짓말처럼 불이 나지 않았다. 이후로 두악산을 소금무지산이라 불렀다. 이 소금과 물은 불을 막을 뿐만 아니라 홍수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두악산에는 [맷돌](/topic/맷돌)을 굴려 혼인을 하게 된 젊은 남녀가 단양 장씨(丹陽 張氏)의 선조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어서 기자(祈子) 치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가 단양천이나 한강물에 목욕재계한 뒤 한강물과 소금을 지고 산에 올라 물단지와 소금단지에 부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특히 음력 정월대보름과 팔월 한가위에는아들을 얻으려는 아낙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금무지산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불려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국토지리설을 만들며 두악산이라 개명하여 그대로 부르다가 1994년부터 단성향토문화연구회에서 우리 역사 바로알기 운동으로 소금무지산이라 병행하여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소금과 한강수를 붓고 소금무지제를 지내고 있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마을은 20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인데, [초가집](/topic/초가집)이 많던 시절에는 화재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뒷산에 화산의 기운을 막을 수 있는 소금단지를 묻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면 해마다 산제를 지내는데, 그날 저녁 산제 지내기 전에 마을의 유사(有司)가 소금을 담은 조그만 항아리를 손으로 받쳐 들고 혼자 뒷산에 올라가 묻고 왔다. 이 일은 해마다 반복되므로 뒷산에는 소금 담은 항아리가 매우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근래에는 도깨비집 축제를 벌이는데 마을 뒷산에 도깨비집, 산신당, 당산나무가 있어서 도깨비집부터 차례로 제를 지낸다. 마을 밖에 화산이 있어서 화재를 막는다고 그 산에[화재막이](/topic/화재막이) 소금을 묻는 행사를 한다.
의의영덕 남정[마을](/topic/마을)의 간물은 평범한 바닷물이 아니라 용(龍)의 신비스러운 생명력을 간직한 신격화된 물이다. 이것은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이기도 한 [용알뜨기](/topic/용알뜨기)에서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동해의 용을 뜨는 것이다. 따라서 간물은 살아 있는 용으로서 비를 내려 마을의 풍요를 이루어 주고 화재의 재난도 막는 역할을 한다.

소금단지에 담는 소금은 실생활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 기본 재료일 뿐만 아니라 세척이나 소독 등에도 사용하고 절이는 데에도 쓰인다. 이렇게 세척이나 소독, 절임 등의 기능이 민속신앙에서는 상징적인 기능으로 나타난다. 민속신앙에서 소금은 부정을 가리거나 액을 쫓는 기능을 한다. 굿을 할 때 처음 부정거리에서 무당은 주변에 물과 소금을 뿌려 굿터를 정화한다. 소금의 절이는 기능은 소멸과도 관련되어 액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설화에도 소금 이야기는 종종 등장하는데, 특히 천지개벽과 관련된 설화에서도 소금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천지개벽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 등장함을 뜻한다. 이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세상으로, 소금으로 정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을에서 발생하는 고난의 해결은 대체로 지나가던 도인이나 [지관](/topic/지관) 등이 해 주는데, 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보통 사람이 아닌 별난 사람, 예지력이 있는 사람이다.이를 통해 일상적인 아닌, 영적(靈的)인 힘을 가진 사람이 항시 존재한다는 종교심성이 보편적으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네이버 백과[사전](/topic/사전) (100.naver.com)
간물단지신앙의 용신신앙적 성격 (김명자, 月山任東權博士頌壽紀念論文集 民俗學會 篇, 월산임동권박사송희기념논문편찬위원회, 1986)
[마을](/topic/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 문화 이야기 (이필영, 웅진닷컴, 2000)
의의영덕 남정[마을](/topic/마을)의 간물은 평범한 바닷물이 아니라 용(龍)의 신비스러운 생명력을 간직한 신격화된 물이다. 이것은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이기도 한 [용알뜨기](/topic/용알뜨기)에서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동해의 용을 뜨는 것이다. 따라서 간물은 살아 있는 용으로서 비를 내려 마을의 풍요를 이루어 주고 화재의 재난도 막는 역할을 한다.

소금단지에 담는 소금은 실생활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음식의 간을 맞추는 기본 재료일 뿐만 아니라 세척이나 소독 등에도 사용하고 절이는 데에도 쓰인다. 이렇게 세척이나 소독, 절임 등의 기능이 민속신앙에서는 상징적인 기능으로 나타난다. 민속신앙에서 소금은 부정을 가리거나 액을 쫓는 기능을 한다. 굿을 할 때 처음 부정거리에서 무당은 주변에 물과 소금을 뿌려 굿터를 정화한다. 소금의 절이는 기능은 소멸과도 관련되어 액을 소멸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설화에도 소금 이야기는 종종 등장하는데, 특히 천지개벽과 관련된 설화에서도 소금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천지개벽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 등장함을 뜻한다. 이는 부정이 없는 깨끗한 세상으로, 소금으로 정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을에서 발생하는 고난의 해결은 대체로 지나가던 도인이나 [지관](/topic/지관) 등이 해 주는데, 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보통 사람이 아닌 별난 사람, 예지력이 있는 사람이다.이를 통해 일상적인 아닌, 영적(靈的)인 힘을 가진 사람이 항시 존재한다는 종교심성이 보편적으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네이버 백과[사전](/topic/사전) (100.naver.com)
간물단지신앙의 용신신앙적 성격 (김명자, 月山任東權博士頌壽紀念論文集 民俗學會 篇, 월산임동권박사송희기념논문편찬위원회, 1986)
[마을](/topic/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 문화 이야기 (이필영, 웅진닷컴, 2000)
도서출판 民俗苑한국의 굿하효길 외2002
국립문화재연구소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서울시·경기도·강원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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