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정산동화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청양군 정산면 송학리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동화대](/topic/동화대)에 불을 놓아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거대한 화목(火木)을 불사르는 행위로 마을에 깃든 액운과 재앙을 소멸한다는 상징성을 띠는 동화는 ‘동네불’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달집태우기와는 구분된다. 정산동화제는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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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 정산면 송학리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동화대](/topic/동화대)에 불을 놓아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거대한 화목(火木)을 불사르는 행위로 마을에 깃든 액운과 재앙을 소멸한다는 상징성을 띠는 동화는 ‘동네불’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달집태우기와는 구분된다. 정산동화제는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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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정의청양군 정산면 송학리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동화대](/topic/동화대)에 불을 놓아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거대한 화목(火木)을 불사르는 행위로 마을에 깃든 액운과 재앙을 소멸한다는 상징성을 띠는 동화는 ‘동네불’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달집태우기와는 구분된다. 정산동화제는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청양군 정산면 송학리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동화대](/topic/동화대)에 불을 놓아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거대한 화목(火木)을 불사르는 행위로 마을에 깃든 액운과 재앙을 소멸한다는 상징성을 띠는 동화는 ‘동네불’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달집태우기와는 구분된다. 정산동화제는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1989년 12월 29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내용[마을](/topic/마을)에서는 정산동화제 일주일 전쯤 마을회의를 열어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는 정결한 사람으로 [제관](/topic/제관)․축관을 선출하고 비용을 결정한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대문](/topic/대문) 앞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황토](/topic/황토)를 펴서 외부인의 접근을 일절 금하고, 집에서 두문불출한 채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를 하며 정성을 기울인다. 특히 피부정을 엄하게 여겨 달거리를 가리고,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그러나 동화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제관의 금기는 흐지부지되어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단지 행사 당일에 회의를 열어 삼헌관, 축관, 집사 두 명 등 여섯 명을 정한다. 2010년에 거행된 동화제를 중심으로 준비 과정과 주요 연행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주 담그기 : 동화제가 임박하면 닷새 전에 제주를 빚는다. 이를 위해 미리 여름에 밀을 갈아서 술약을 넣고 누룩을 띄워 둔다. 시장에서 구입하는 누룩은 싱겁기 때문에 지금도 송학리에서는 손수 만든 누룩으로 제주를 담근다. 제주를 빚는 절차는 먼저 술밥을 찐다. 시루에 술쌀을 넣고 솔잎으로 덮은 뒤 가마솥에 얹어서 30분 가량 불을 지피면 김이 피어오른다. 잠시 후 밥이 다 되면 돗[자리](/topic/자리)를 펼쳐 놓고 술밥과 솔잎을 골고루 섞는다. 여기에 누룩을 붓고 버무린 다음 술독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는다. 다 익은 술은 동화제를 올리기 [직전](/topic/직전)에 용수(싸리나무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로 거른다.


2. 시장 보기 : 동화제의 비용은 충청남도와 청양군에서 받는 지원금과 대동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수품의 구입은 정산 장에서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제관으로 선정되는 사람이 맡았지만 현재는 부녀회장과 총무가 필요한 물목을 기록해 놓았다가 이틀 전에 시장에서 구입한다. 다만 나물이나 과일 등은 가능한 한 마을의 농가에서 재배한 생산물로 주문한다. 하루 전날에는 이장과 반장이 통돼지를 구입한다.


3. 장승․솟대 제작 : 대동계장과 이장은 정월 열사흗날 오후에 몇몇 주민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장승목과 솟대목을 베어 온다. 재목은 곧게 뻗은 소나무이다. 이와 함께 동구 밖에 금줄을 칠 가느다란 소나무 두 그루도 베어 온다. 그리고 당일 아침부터 상송마을 동구 밖에서 낫, 끌, 톱, [자귀](/topic/자귀) 등을 이용해 장승 한 쌍과 솟대(오릿대)를 만든다. 장승은 속칭 ‘오방신장’으로 불린다. 이에 따라 장승의 명문도 남장승에는 ‘동남방청제축귀대[장군](/topic/장군)(東南方靑帝逐鬼大將軍)’, 여장승에는 ‘서북방백제축귀대장군(西北方白帝逐鬼大將軍)’이라고 각각 묵서한다. 솟대는 기역(ㄱ) 자로 꺾인 옹이가 박인 소나무를 다듬어 오리 형태를 갖추고, 여기에 장대를 연결하여 장승 곁에 세운다.


4. [동화대](/topic/동화대) 만들기 : 동화대의 제작에 필요한 땔나무는 집집마다 한 짐을 갹출하여 충당한다. 마을에서는 동화대의 규모가 클수록 액운을 막는 주술적인 힘도 커진다고 믿는다. 또한 땔나무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해 운수가 좋다는 속설에 따라 예전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나무를 가져오려고 애를 썼다. 동화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목은 주로 싸리나무였다. 그러나 싸리나무가 귀해진 뒤로 잡목이나 가시나무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근래에는 동화대에 대나무를 많이 섞는다. 이는 불에 탈 때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정월 열나흗날 오후 땔나무가 준비되면 마을 앞 광장에서 동화대를 묶을 동아줄을 엮는다.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새끼를 꼬고 짚을 먹이며, 또 한 사람은 이를 엮어서 줄을 만든다. 그리고 세 가닥의 새끼줄을 하나로 합쳐 다시 꼬면 굵직한 동아줄이 완성된다.

동화대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줄을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깔고 그 가운데에 10m쯤 되는 길쭉한 지주목을 눕힌다. 이 지주목을 일명 ‘고줏대[高柱臺]’라 한다. 그런 다음 밑에서부터 땔나무를 차곡차곡 쌓고 동아줄로 단단히 묶는다. 이때 동화대를 묶는 줄은 반드시 홀수로 하되 다섯 줄이나 일곱 줄로 엮는 것이 보통이다. 완성된 동화대를 세우는 일은 주민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마을 청장년이 모두 동원되어 한쪽에서 줄로 잡아당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손으로 밀어올렸다. 조금씩 공간이 생기면 지주목으로 동화대를 받치면서 서서히 일으켰다. 그러나 근래에는 인력이 없다 보니 굴착기에 밧줄을 걸고 들어올려 손쉽게 일으켜 세운다. 이윽고 동화대가 하늘을 향해 곧추서면 쓰러지지 않도록 사방을 지주목으로 받치고, 동화대의 꼭대기에 미리 묶어 둔 세 가닥의 줄을 늘어뜨려 [농기](/topic/농기)를 세우듯이 팽팽하게 지면에 고정시킨다. 이때 풍물패는 동화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한바탕 흥겹게 풍장을 친 다음 절을 한다.


5. 정주나무제 : 동화제를 지낼 시간이 임박하면 제관은 닷새 전에 담근 술을 용수로 걸러서 술동이에 담는다. 이를 ‘제주 봉한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 마을회관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한창 신명이 오른 풍물패의 쇳소리는 더욱 호흡이 가빠진다. 동화제의 행렬이 출발하면 몇몇 부녀자들은 제물을 머리에 이고 정주나무로 향한다. 정주나무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도로를 확장하면서 [가지](/topic/가지)가 잘라지고 난 뒤 공교롭게도 멀쩡하던 주민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등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한 할머니의 꿈에 정주나무신이 나타나 계시를 내렸고,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합동으로 제를 지내게 되었다. 정주나무제는 여성들이 주관하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나무 밑에 [시루떡](/topic/시루떡), 두부탕, [불밝이쌀](/topic/불밝이쌀), 청수, 과자 등을 진설한 다음 향을 사르고 나무를 한 바퀴 돌아 부정을 물리친다. 이어서 술을 [헌작](/topic/헌작)한 뒤 정주나무에 사배를 하고, 나머지 세 방향에 각각 사배를 드린다. 소지는 정주나무 할아버지소지-대동소지-산신소지 순으로 석 장을 올린 뒤 참석자의 개인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마치면 불밝이쌀과 술을 정주나무 주변에 뿌리는 것으로 잡귀를 풀어먹인다.


6. 동화제 : [영기](/topic/영기), 농기, 오방기 등 각종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회관을 출발한 제의행렬은 경쾌한 길군악을 울리며 동화대가 서 있는 마을 앞으로 간다. 그 뒤를 제물 운반자와 제관, 마을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간다. 제장에 들어서면 동화대를 왼쪽으로 한 바퀴 돌고 [제상](/topic/제상)을 차린다. 제물은 돼지머리, 백설기, 탕, [통북어](/topic/통북어) 다섯 마리, 오색실과, 과자, 청수, [불백기](/topic/불백기)(불밝이쌀), 술 등이다. 제상이 차려지면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동화대에 불을 지핀다. 이때 점화자는 대개 아들을 못 낳은 사람이나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이다. 동화대에 점화를 하게 되면 운수가 대길하여 평소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점화 방식은 [횃대](/topic/횃대)를 들고 동화대로 올라가서 맨 꼭대기에 불을 지른다. 서서히 불길이 타오르면 상노인이 “정월 대보름날 청양 정산동화제 [망월](/topic/망월)이여!”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이를 신호로 유교식 동화제가 진행된다. 제의는 [초헌](/topic/초헌)관이 초헌례로 향을 세 번 올리고 [분향](/topic/분향)(焚香) 재배한 다음 [축문](/topic/축문)낭독-[아헌](/topic/아헌)례(亞獻禮)-[종헌](/topic/종헌)례(終獻禮)-주민 일동 재배-[음복](/topic/음복)례(飮福禮) 순으로 이루어진다.

동화제가 시작되면 보름달을 보러 나온 주민들에게 일일이 소지종이가 지급되고, 각자 동화대 앞에서 소지를 사르며 새해의 소망을 축원한다. 마을에서는 동화가 잘 타야 그해 액운이 없다고 믿으며, 도중에 꺼지거나 불길이 신통치 않으면 불상사가 있을 징조로 여긴다. 바야흐로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던 동화대는 잠시 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이때 그 방향을 보고 길흉을 점친다. 즉 동구 바깥쪽으로 넘어지면 마을의 액운을 몰고 나가는 것이므로 재수가 좋고, 마을 안쪽으로 쓰러지면 재앙이 닥칠 조짐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동화대는 미리 방향을 고려하여 자연스럽게 동구 바깥쪽으로 쓰러지도록 세운다.


7. 장승제 :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새벽에 장승제를 지낸다. 이를 노승제(路丞祭) 또는 장성제라고 한다. 동화제가 송학리 전 주민이 참여하는 대동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장승제는 상송마을 단독으로 치르는 조촐한 의례이다. 이에 따라 동화제와는 별도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는 [화주](/topic/화주)(化主)를 선정하여 제를 주관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마을의 14가구가 매년 삽짝([사립문](/topic/사립문))돌림으로 화주를 맡는다. 제수 비용은 반계(班契)의 기금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백설기, 메, 포, 삼색실과, 불백기, 술 등이다. 장승의 신격이 오방신장이어서 탕 다섯 그릇, 포 다섯 마리, 잔 다섯 개를 진설한다. 시저(匙箸, 수저)도 다섯 벌 놓는다. 화주댁에서 백설기와 메가 다 되면 징을 쳐서 잠시 뒤에 장승제가 시작됨을 알린다. 이윽고 화주는 장승․솟대가 있는 동구 밖에 제상을 차리고 유교식 절차에 따라 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제를 마치면 화주는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대동소지와 장승소지를 올리고 나서 화주, 축관, 이장, 계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소지를 차례로 올려준다.
내용[마을](/topic/마을)에서는 정산동화제 일주일 전쯤 마을회의를 열어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는 정결한 사람으로 [제관](/topic/제관)․축관을 선출하고 비용을 결정한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대문](/topic/대문) 앞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황토](/topic/황토)를 펴서 외부인의 접근을 일절 금하고, 집에서 두문불출한 채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를 하며 정성을 기울인다. 특히 피부정을 엄하게 여겨 달거리를 가리고,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그러나 동화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제관의 금기는 흐지부지되어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단지 행사 당일에 회의를 열어 삼헌관, 축관, 집사 두 명 등 여섯 명을 정한다. 2010년에 거행된 동화제를 중심으로 준비 과정과 주요 연행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주 담그기 : 동화제가 임박하면 닷새 전에 제주를 빚는다. 이를 위해 미리 여름에 밀을 갈아서 술약을 넣고 누룩을 띄워 둔다. 시장에서 구입하는 누룩은 싱겁기 때문에 지금도 송학리에서는 손수 만든 누룩으로 제주를 담근다. 제주를 빚는 절차는 먼저 술밥을 찐다. 시루에 술쌀을 넣고 솔잎으로 덮은 뒤 가마솥에 얹어서 30분 가량 불을 지피면 김이 피어오른다. 잠시 후 밥이 다 되면 돗[자리](/topic/자리)를 펼쳐 놓고 술밥과 솔잎을 골고루 섞는다. 여기에 누룩을 붓고 버무린 다음 술독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는다. 다 익은 술은 동화제를 올리기 [직전](/topic/직전)에 용수(싸리나무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로 거른다.


2. 시장 보기 : 동화제의 비용은 충청남도와 청양군에서 받는 지원금과 대동계 기금으로 충당한다. 제수품의 구입은 정산 장에서 이루어진다. 예전에는 제관으로 선정되는 사람이 맡았지만 현재는 부녀회장과 총무가 필요한 물목을 기록해 놓았다가 이틀 전에 시장에서 구입한다. 다만 나물이나 과일 등은 가능한 한 마을의 농가에서 재배한 생산물로 주문한다. 하루 전날에는 이장과 반장이 통돼지를 구입한다.


3. 장승․솟대 제작 : 대동계장과 이장은 정월 열사흗날 오후에 몇몇 주민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장승목과 솟대목을 베어 온다. 재목은 곧게 뻗은 소나무이다. 이와 함께 동구 밖에 금줄을 칠 가느다란 소나무 두 그루도 베어 온다. 그리고 당일 아침부터 상송마을 동구 밖에서 낫, 끌, 톱, [자귀](/topic/자귀) 등을 이용해 장승 한 쌍과 솟대(오릿대)를 만든다. 장승은 속칭 ‘오방신장’으로 불린다. 이에 따라 장승의 명문도 남장승에는 ‘동남방청제축귀대[장군](/topic/장군)(東南方靑帝逐鬼大將軍)’, 여장승에는 ‘서북방백제축귀대장군(西北方白帝逐鬼大將軍)’이라고 각각 묵서한다. 솟대는 기역(ㄱ) 자로 꺾인 옹이가 박인 소나무를 다듬어 오리 형태를 갖추고, 여기에 장대를 연결하여 장승 곁에 세운다.


4. [동화대](/topic/동화대) 만들기 : 동화대의 제작에 필요한 땔나무는 집집마다 한 짐을 갹출하여 충당한다. 마을에서는 동화대의 규모가 클수록 액운을 막는 주술적인 힘도 커진다고 믿는다. 또한 땔나무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해 운수가 좋다는 속설에 따라 예전에는 서로 경쟁적으로 나무를 가져오려고 애를 썼다. 동화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화목은 주로 싸리나무였다. 그러나 싸리나무가 귀해진 뒤로 잡목이나 가시나무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근래에는 동화대에 대나무를 많이 섞는다. 이는 불에 탈 때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정월 열나흗날 오후 땔나무가 준비되면 마을 앞 광장에서 동화대를 묶을 동아줄을 엮는다.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새끼를 꼬고 짚을 먹이며, 또 한 사람은 이를 엮어서 줄을 만든다. 그리고 세 가닥의 새끼줄을 하나로 합쳐 다시 꼬면 굵직한 동아줄이 완성된다.

동화대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줄을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깔고 그 가운데에 10m쯤 되는 길쭉한 지주목을 눕힌다. 이 지주목을 일명 ‘고줏대[高柱臺]’라 한다. 그런 다음 밑에서부터 땔나무를 차곡차곡 쌓고 동아줄로 단단히 묶는다. 이때 동화대를 묶는 줄은 반드시 홀수로 하되 다섯 줄이나 일곱 줄로 엮는 것이 보통이다. 완성된 동화대를 세우는 일은 주민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마을 청장년이 모두 동원되어 한쪽에서 줄로 잡아당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벌떼처럼 달려들어 손으로 밀어올렸다. 조금씩 공간이 생기면 지주목으로 동화대를 받치면서 서서히 일으켰다. 그러나 근래에는 인력이 없다 보니 굴착기에 밧줄을 걸고 들어올려 손쉽게 일으켜 세운다. 이윽고 동화대가 하늘을 향해 곧추서면 쓰러지지 않도록 사방을 지주목으로 받치고, 동화대의 꼭대기에 미리 묶어 둔 세 가닥의 줄을 늘어뜨려 [농기](/topic/농기)를 세우듯이 팽팽하게 지면에 고정시킨다. 이때 풍물패는 동화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한바탕 흥겹게 풍장을 친 다음 절을 한다.


5. 정주나무제 : 동화제를 지낼 시간이 임박하면 제관은 닷새 전에 담근 술을 용수로 걸러서 술동이에 담는다. 이를 ‘제주 봉한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 마을회관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한창 신명이 오른 풍물패의 쇳소리는 더욱 호흡이 가빠진다. 동화제의 행렬이 출발하면 몇몇 부녀자들은 제물을 머리에 이고 정주나무로 향한다. 정주나무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도로를 확장하면서 [가지](/topic/가지)가 잘라지고 난 뒤 공교롭게도 멀쩡하던 주민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등 우환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한 할머니의 꿈에 정주나무신이 나타나 계시를 내렸고,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합동으로 제를 지내게 되었다. 정주나무제는 여성들이 주관하는 것이 특징이다. 먼저 나무 밑에 [시루떡](/topic/시루떡), 두부탕, [불밝이쌀](/topic/불밝이쌀), 청수, 과자 등을 진설한 다음 향을 사르고 나무를 한 바퀴 돌아 부정을 물리친다. 이어서 술을 [헌작](/topic/헌작)한 뒤 정주나무에 사배를 하고, 나머지 세 방향에 각각 사배를 드린다. 소지는 정주나무 할아버지소지-대동소지-산신소지 순으로 석 장을 올린 뒤 참석자의 개인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마치면 불밝이쌀과 술을 정주나무 주변에 뿌리는 것으로 잡귀를 풀어먹인다.


6. 동화제 : [영기](/topic/영기), 농기, 오방기 등 각종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회관을 출발한 제의행렬은 경쾌한 길군악을 울리며 동화대가 서 있는 마을 앞으로 간다. 그 뒤를 제물 운반자와 제관, 마을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간다. 제장에 들어서면 동화대를 왼쪽으로 한 바퀴 돌고 [제상](/topic/제상)을 차린다. 제물은 돼지머리, 백설기, 탕, [통북어](/topic/통북어) 다섯 마리, 오색실과, 과자, 청수, [불백기](/topic/불백기)(불밝이쌀), 술 등이다. 제상이 차려지면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동화대에 불을 지핀다. 이때 점화자는 대개 아들을 못 낳은 사람이나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이다. 동화대에 점화를 하게 되면 운수가 대길하여 평소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점화 방식은 [횃대](/topic/횃대)를 들고 동화대로 올라가서 맨 꼭대기에 불을 지른다. 서서히 불길이 타오르면 상노인이 “정월 대보름날 청양 정산동화제 [망월](/topic/망월)이여!”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이를 신호로 유교식 동화제가 진행된다. 제의는 [초헌](/topic/초헌)관이 초헌례로 향을 세 번 올리고 [분향](/topic/분향)(焚香) 재배한 다음 [축문](/topic/축문)낭독-[아헌](/topic/아헌)례(亞獻禮)-[종헌](/topic/종헌)례(終獻禮)-주민 일동 재배-[음복](/topic/음복)례(飮福禮) 순으로 이루어진다.

동화제가 시작되면 보름달을 보러 나온 주민들에게 일일이 소지종이가 지급되고, 각자 동화대 앞에서 소지를 사르며 새해의 소망을 축원한다. 마을에서는 동화가 잘 타야 그해 액운이 없다고 믿으며, 도중에 꺼지거나 불길이 신통치 않으면 불상사가 있을 징조로 여긴다. 바야흐로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던 동화대는 잠시 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이때 그 방향을 보고 길흉을 점친다. 즉 동구 바깥쪽으로 넘어지면 마을의 액운을 몰고 나가는 것이므로 재수가 좋고, 마을 안쪽으로 쓰러지면 재앙이 닥칠 조짐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동화대는 미리 방향을 고려하여 자연스럽게 동구 바깥쪽으로 쓰러지도록 세운다.


7. 장승제 :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새벽에 장승제를 지낸다. 이를 노승제(路丞祭) 또는 장성제라고 한다. 동화제가 송학리 전 주민이 참여하는 대동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장승제는 상송마을 단독으로 치르는 조촐한 의례이다. 이에 따라 동화제와는 별도로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는 [화주](/topic/화주)(化主)를 선정하여 제를 주관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마을의 14가구가 매년 삽짝([사립문](/topic/사립문))돌림으로 화주를 맡는다. 제수 비용은 반계(班契)의 기금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백설기, 메, 포, 삼색실과, 불백기, 술 등이다. 장승의 신격이 오방신장이어서 탕 다섯 그릇, 포 다섯 마리, 잔 다섯 개를 진설한다. 시저(匙箸, 수저)도 다섯 벌 놓는다. 화주댁에서 백설기와 메가 다 되면 징을 쳐서 잠시 뒤에 장승제가 시작됨을 알린다. 이윽고 화주는 장승․솟대가 있는 동구 밖에 제상을 차리고 유교식 절차에 따라 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제를 마치면 화주는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대동소지와 장승소지를 올리고 나서 화주, 축관, 이장, 계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소지를 차례로 올려준다.
역사1991년에 건립된 유래비에는 동화제가 400여 년 전부터 청양군 칠갑산을 중심으로 몇몇 [마을](/topic/마을)에서 전승되어 왔으나 지금은 유일하게 송학리에서만 전래된다고 기록되었다. 그 시원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대항하기 위하여 [화전](/topic/화전)(火戰)의 일종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구전에서도 임진왜란 때 봉홧불을 놓은 것이 동화제의 유래가 되었다는 속설이 전한다. 즉 당시 이율곡은 천리를 내다볼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부터 전쟁을 예견하고 왜적에 대항할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때 송학리는 의병 소집에 응할 여력이 없어 외송마을 입구에 오방신장(五方神將)인 장승을 건립하여 왜병을 물리쳐 달라고 기원했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마을 사람들이 합심으로 [동화대](/topic/동화대)를 세우고 불을 놓아 왜군이 침범하지 않기를 비는 천제를 지냈으며, 이것이 동화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동화제는 곧 하늘에 소지(燒紙)를 올리는 상징적인 의례로 인식되고 있다.

동화제의 전통은 일제강점기 때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topic/조선의향토오락)』에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부여 지방에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집집마다 땔나무 한 묶음을 내어 나뭇단을 크게 묶고 커다란 횃불을 만들어 동구 밖에 세웠다가 밤에 불을 붙인다. 불이 타오르는 광경을 보며 각자의 복을 기원하면서 논다”라고 했다. 이로써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염원하는 동화제의 전통이 널리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충남지방의 동화제는 칠갑산을 끼고 있는 청양군 정산면과 부여군 외산면․내산면 등의 산간마을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따라서 『조선의 향토오락』에 소개된 동화는 송학리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산동화제는 예부터 송학리에 속한 하송․상송․비봉 세 마을이 결성한 대동계에서 주관하여 왔다. 그리하여 2002년에 개편된 [대동회](/topic/대동회)의 규약에는 ‘문화재 보존’ 조항을 신설하여 “본회에서는 고전문화인 동화제 보존관리를 대동회에서 주관하여 전주민이 참여하는 마을행사로 추진한다”(제11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대동회 예하의 부인회는 역할이 절대적이어서 제수품의 준비와 행사 당일의 음식 준비를 도맡아 한다.
역사1991년에 건립된 유래비에는 동화제가 400여 년 전부터 청양군 칠갑산을 중심으로 몇몇 [마을](/topic/마을)에서 전승되어 왔으나 지금은 유일하게 송학리에서만 전래된다고 기록되었다. 그 시원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대항하기 위하여 [화전](/topic/화전)(火戰)의 일종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구전에서도 임진왜란 때 봉홧불을 놓은 것이 동화제의 유래가 되었다는 속설이 전한다. 즉 당시 이율곡은 천리를 내다볼 정도로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부터 전쟁을 예견하고 왜적에 대항할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때 송학리는 의병 소집에 응할 여력이 없어 외송마을 입구에 오방신장(五方神將)인 장승을 건립하여 왜병을 물리쳐 달라고 기원했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마을 사람들이 합심으로 [동화대](/topic/동화대)를 세우고 불을 놓아 왜군이 침범하지 않기를 비는 천제를 지냈으며, 이것이 동화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동화제는 곧 하늘에 소지(燒紙)를 올리는 상징적인 의례로 인식되고 있다.

동화제의 전통은 일제강점기 때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topic/조선의향토오락)』에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부여 지방에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집집마다 땔나무 한 묶음을 내어 나뭇단을 크게 묶고 커다란 횃불을 만들어 동구 밖에 세웠다가 밤에 불을 붙인다. 불이 타오르는 광경을 보며 각자의 복을 기원하면서 논다”라고 했다. 이로써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염원하는 동화제의 전통이 널리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충남지방의 동화제는 칠갑산을 끼고 있는 청양군 정산면과 부여군 외산면․내산면 등의 산간마을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따라서 『조선의 향토오락』에 소개된 동화는 송학리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산동화제는 예부터 송학리에 속한 하송․상송․비봉 세 마을이 결성한 대동계에서 주관하여 왔다. 그리하여 2002년에 개편된 [대동회](/topic/대동회)의 규약에는 ‘문화재 보존’ 조항을 신설하여 “본회에서는 고전문화인 동화제 보존관리를 대동회에서 주관하여 전주민이 참여하는 마을행사로 추진한다”(제11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대동회 예하의 부인회는 역할이 절대적이어서 제수품의 준비와 행사 당일의 음식 준비를 도맡아 한다.
지역사례동화제는 충남 칠갑산을 중심으로 하는 청양군 정산면과 부여군 내산면․외산면․은산면에 집중되어 있고, 공주시 사곡면 일부 산간[마을](/topic/마을)에서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들 지역에서 전승되는 동화제는 절차나 [동화대](/topic/동화대)를 만드는 방식, 속신 등이 송학리와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 벌말의 경우 노총각이나 아들이 없는 집에서 점화를 맡도록 하되 동화에 불을 지른 사람은 막걸리 한 말이나 얼마간의 돈이라도 내놓는 것이 관례이다. 또한 부여군 은산면 나령리에서는 여느 마을과 달리 동화제를 지내고 나서 새벽에 불을 지른다. 이때 동화에 처음 불을 놓는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달려갔다. 예전에 동화에 불을 놓고 아들을 얻은 집이 있었는데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동화’로 지었다는 [일화](/topic/일화)가 구전되고 있다.

동화제는 경기도 광주시 무갑산 자락의 산간마을에도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기타 경기도 포천시 및 용인시 등에서도 전승 사례가 보고되었다. 광주 지역의 경우 [해동화](/topic/해동화) 또는 동화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화의 본디 뜻은 ‘동화로 액운을 풀어 없앤다’ 또는 ‘마을의 재액을 풀어주는 불’이란 해동화(解洞火)이다. 이에 따라 동화대를 불사르는 목적은 충남지방의 동화제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단지 한 [가지](/topic/가지)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무갑산 일대에서는 동화대의 꼭대기에 새해의 소망을 담은 축원문을 쓴 종이깃발을 만들어서 꽂는다는 사실이다. 이 깃발은 [농기](/topic/농기)와 흡사한 모습으로 제작된다. 맨 위에 해와 달이 그려져 있으며, 액운을 파는 기란 의미에서 ‘[액매기](/topic/액매기)(厄賣旗)’ 또는 복을 맞이하는 ‘영복기(迎福旗)’ 등으로 불린다. 마을에 따라서는 [화재막이](/topic/화재막이) 성격이 강하게 내포된 ‘화덕진군소멸(火德陳軍消滅)’이라고 묵서한 깃발을 꽂기도 한다.

동화제는 거대한 동화대를 불사르는 행위를 통해 마을의 모든 재액이 소멸되기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의례이다. 그 화목으로 싸리나무가 선택된 까닭은 화력이 좋아서 잘 꺼지지 않는 데다 불 기운이 맑고 깨끗하여 제액초복에 더욱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화제는 ‘달집태우기’와 일정한 친연성이 있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이면서도 한편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달집태우기에 내재된 이른바 ‘달을 그슬린다’는 관념이 동화제에는 전혀 깃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화목의 재료도 달집태우기는 연기를 피우기 위해 소나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며, ‘달집’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달집과 동화대는 형태, 기능, 제작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충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1)
[조선의 향토오락](/topic/조선의향토오락) (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용인의 [마을](/topic/마을)의례 (한국역사민속학회 외, 용인시사편찬위원회, 2000)
장벌리 탑제와 동화제 (강성복, 부여문화원, 2001)
부여의 민간신앙 (이필영, 부여문화원, 2001)
송학리 [대동회](/topic/대동회) 규약, 괴목정 노신제와 동화 (강성복, 부여문화원, 2003)
조선후기 충청지역의 동제 연구 (강성복, 공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해동화](/topic/해동화)놀이와 장승제의 전승양상과 활용방안 (광주문화원, 2009)
광주시사 3 (광주시사편찬위원회, 2010)
지역사례동화제는 충남 칠갑산을 중심으로 하는 청양군 정산면과 부여군 내산면․외산면․은산면에 집중되어 있고, 공주시 사곡면 일부 산간[마을](/topic/마을)에서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들 지역에서 전승되는 동화제는 절차나 [동화대](/topic/동화대)를 만드는 방식, 속신 등이 송학리와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 벌말의 경우 노총각이나 아들이 없는 집에서 점화를 맡도록 하되 동화에 불을 지른 사람은 막걸리 한 말이나 얼마간의 돈이라도 내놓는 것이 관례이다. 또한 부여군 은산면 나령리에서는 여느 마을과 달리 동화제를 지내고 나서 새벽에 불을 지른다. 이때 동화에 처음 불을 놓는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달려갔다. 예전에 동화에 불을 놓고 아들을 얻은 집이 있었는데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동화’로 지었다는 [일화](/topic/일화)가 구전되고 있다.

동화제는 경기도 광주시 무갑산 자락의 산간마을에도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기타 경기도 포천시 및 용인시 등에서도 전승 사례가 보고되었다. 광주 지역의 경우 [해동화](/topic/해동화) 또는 동화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동화의 본디 뜻은 ‘동화로 액운을 풀어 없앤다’ 또는 ‘마을의 재액을 풀어주는 불’이란 해동화(解洞火)이다. 이에 따라 동화대를 불사르는 목적은 충남지방의 동화제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단지 한 [가지](/topic/가지)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무갑산 일대에서는 동화대의 꼭대기에 새해의 소망을 담은 축원문을 쓴 종이깃발을 만들어서 꽂는다는 사실이다. 이 깃발은 [농기](/topic/농기)와 흡사한 모습으로 제작된다. 맨 위에 해와 달이 그려져 있으며, 액운을 파는 기란 의미에서 ‘[액매기](/topic/액매기)(厄賣旗)’ 또는 복을 맞이하는 ‘영복기(迎福旗)’ 등으로 불린다. 마을에 따라서는 [화재막이](/topic/화재막이) 성격이 강하게 내포된 ‘화덕진군소멸(火德陳軍消滅)’이라고 묵서한 깃발을 꽂기도 한다.

동화제는 거대한 동화대를 불사르는 행위를 통해 마을의 모든 재액이 소멸되기를 기원하는 상징적인 의례이다. 그 화목으로 싸리나무가 선택된 까닭은 화력이 좋아서 잘 꺼지지 않는 데다 불 기운이 맑고 깨끗하여 제액초복에 더욱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화제는 ‘달집태우기’와 일정한 친연성이 있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이면서도 한편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달집태우기에 내재된 이른바 ‘달을 그슬린다’는 관념이 동화제에는 전혀 깃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화목의 재료도 달집태우기는 연기를 피우기 위해 소나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며, ‘달집’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달집과 동화대는 형태, 기능, 제작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충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1)
[조선의 향토오락](/topic/조선의향토오락) (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용인의 [마을](/topic/마을)의례 (한국역사민속학회 외, 용인시사편찬위원회, 2000)
장벌리 탑제와 동화제 (강성복, 부여문화원, 2001)
부여의 민간신앙 (이필영, 부여문화원, 2001)
송학리 [대동회](/topic/대동회) 규약, 괴목정 노신제와 동화 (강성복, 부여문화원, 2003)
조선후기 충청지역의 동제 연구 (강성복, 공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해동화](/topic/해동화)놀이와 장승제의 전승양상과 활용방안 (광주문화원, 2009)
광주시사 3 (광주시사편찬위원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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