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벌

한국무속신앙사전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의 불신(不信), 무지(無知), 탐욕, 부주의(不注意), 오만 등으로 인하여 마을 신령을 서운하게 하거나 노엽게 하여 당하는 벌. 특히 마을신앙과 관련한 각종 금기를 어기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지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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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topic/마을) 사람들의 불신(不信), 무지(無知), 탐욕, 부주의(不注意), 오만 등으로 인하여 마을 신령을 서운하게 하거나 노엽게 하여 당하는 벌. 특히 마을신앙과 관련한 각종 금기를 어기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지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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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영
정의[마을](/topic/마을) 사람들의 불신(不信), 무지(無知), 탐욕, 부주의(不注意), 오만 등으로 인하여 마을 신령을 서운하게 하거나 노엽게 하여 당하는 벌. 특히 마을신앙과 관련한 각종 금기를 어기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지벌을 받을 수 있다.
정의[마을](/topic/마을) 사람들의 불신(不信), 무지(無知), 탐욕, 부주의(不注意), 오만 등으로 인하여 마을 신령을 서운하게 하거나 노엽게 하여 당하는 벌. 특히 마을신앙과 관련한 각종 금기를 어기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지벌을 받을 수 있다.
내용[마을](/topic/마을)신앙의 전 과정과 이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는 신령들을 흡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조금도 노여워하거나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신성을 모독하지 않으며, 지극 정성으로 마을 신령을 대접하여 아무쪼록 신의를 거부하거나 위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를 어겼을 때 마을 신령은 그에 상응하는 지벌을 내린다. 위배의 일반적 정도(程度)와 지벌의 강도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위배라 하더라도 곧 죽음에 급박하게 이를 수 있고, 중대한 위배라 하더라도 비교적 경미한 벌을 받을 수 있다. 응징의 강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의(神意)에 달려있다.

지벌의 원인과 그에 따른 책벌의 사례를 부정과 신성모독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성모독에는 무성의한 태도도 포함된다.

‘산부정’, ‘죽은 부정’을 비롯하여 사소한 일체의 부정이라도 지벌을 당하는 원인이 된다. 동제 기간에 출산이나 초상과 같은 큰 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손을 조금 베어 피가 비치거나 동네 개가 죽은 것을 보아도 안 된다. 비린 것이나 누린 것을 먹어서도 안 되고, 심지어 새우젓도 금지된다. 부부 합방도 당연히 엄금(嚴禁)된다. 제사 중에 [제관](/topic/제관)들이 대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어떨 수 없는 경우라면 대소변을 본 뒤에 목욕이나 세수라도 해야 한다. 생리 중의 여인은 되도록 집 바깥출입을 삼간다. 피부정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금기는 마을에 따라 특수성을 띠기도 한다. 예를 들어 뱀 서낭을 모시는 마을에서는 뱀과 상극인 돼지를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금기 대상이다. 이 때문에 평소에 돼지를 키우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용신을 모실 때도 마찬[가지](/topic/가지)이다. 용신은 돼지를 가장 싫어한다.
내용[마을](/topic/마을)신앙의 전 과정과 이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는 신령들을 흡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조금도 노여워하거나 섭섭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신성을 모독하지 않으며, 지극 정성으로 마을 신령을 대접하여 아무쪼록 신의를 거부하거나 위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를 어겼을 때 마을 신령은 그에 상응하는 지벌을 내린다. 위배의 일반적 정도(程度)와 지벌의 강도가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위배라 하더라도 곧 죽음에 급박하게 이를 수 있고, 중대한 위배라 하더라도 비교적 경미한 벌을 받을 수 있다. 응징의 강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의(神意)에 달려있다.

지벌의 원인과 그에 따른 책벌의 사례를 부정과 신성모독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성모독에는 무성의한 태도도 포함된다.

‘산부정’, ‘죽은 부정’을 비롯하여 사소한 일체의 부정이라도 지벌을 당하는 원인이 된다. 동제 기간에 출산이나 초상과 같은 큰 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손을 조금 베어 피가 비치거나 동네 개가 죽은 것을 보아도 안 된다. 비린 것이나 누린 것을 먹어서도 안 되고, 심지어 새우젓도 금지된다. 부부 합방도 당연히 엄금(嚴禁)된다. 제사 중에 [제관](/topic/제관)들이 대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어떨 수 없는 경우라면 대소변을 본 뒤에 목욕이나 세수라도 해야 한다. 생리 중의 여인은 되도록 집 바깥출입을 삼간다. 피부정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금기는 마을에 따라 특수성을 띠기도 한다. 예를 들어 뱀 서낭을 모시는 마을에서는 뱀과 상극인 돼지를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금기 대상이다. 이 때문에 평소에 돼지를 키우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용신을 모실 때도 마찬[가지](/topic/가지)이다. 용신은 돼지를 가장 싫어한다.
지역사례금기들을 소홀히 하거나 지키지 않고 동제를 진행하면 지벌을 맞는다. 다음의 예화가 부정에 의한 지벌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제관](/topic/제관) 댁의 소가 갑자기 죽었다. 제일을 연기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사람도 아닌 소인데 어떠랴 싶었다. 그래서 당제를 예정대로 그대로 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해 여름까지 [마을](/topic/마을)의 소가 일곱 마리나 차례로 죽었다. 문복(問卜)을 하니 제관을 잘못 선정하였다고 하였다. 그해 7월에 큰 굿을 하고 나서야 마을이 평안해졌다.”


“당주네 부인이 월경하는 것을 감추고 제물을 준비하였다. 그 이후 집안에서 키우던 돼지가 아무 까닭 없이 갑자기 죽었다.”


“제주의 아들이 밖에 나가서 피를 흘린 사실을 모르고 그대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갑자기 산제당에 모래가 뿌려지고 메에 수저를 꽂는데 수저가 부러졌다.”


“며느리가 임신을 하였다. 시아버지가 그 사실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고 산제에 참여했다가 곧바로 이유 없이 죽었다.”


“제관 부부가 동침을 했더니 결합된 두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란 나머지 산신에게 잘못을 빌었더니 그제서야 두 몸이 떨어졌다.”


“개고기를 먹은 사람이 성황제를 구경하였다. 금방 뼈가 뒤틀려 다리도 건너기 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상가(喪家)에 입고 간 옷을 그대로 입고 동고사를 지냈다. 그해 마을에 큰 흉사가 있었다.”


“제물 준비를 하는데 고양이가 조기를 물고 달아났다. 이를 쫓아가 다시 찾아서 제사를 올렸다. 제관의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산제 제물을 이고 산을 오르는데 쇠머리가 굴러떨어졌다. 어떠랴 싶어 쇠머리를 주워 산제를 지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유사의 며느리가 계속 유산을 하였다.”


“산제당에 올릴 떡을 찔 때에 임신부, 변소에 다녀온 사람,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대표적인 금기 대상이 된다. 이들이 [부엌](/topic/부엌)에 들어오거나 엿보기만 해도 시루번이 부풀거나 터져서 떡이 설게 된다. 이때에는 산신에게 잘못을 빌고 꽃떡을 시루 안에 올리는 등 뱅이를 한다.”


한편 역시 가장 무서운 지벌은 마을 신령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마을 신령에 대한 직접적 공격 또는 신체나 제당에 대한 파괴 행위는 즉각적인 지벌을 야기한다. 마을의 신목(神木)인 당수나무를 벌목하거나 훼손시킨 사람들에 대한 지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수나무의 영험성은 대체로 나무를 해친 자들에게 [신벌](/topic/신벌)이 내린다는 이야기로 나타난다. 곧 나무를 베어낸 사람들이 결국은 다 다치거나 죽었다든지,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topic/가지)일망정 결코 화목(火木)으로 쓰지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거의 모든 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마을에서 [물레방아](/topic/물레방아)를 만들기 위하여 마을의 느티나무를 베려고 하니 소 울음소리가 심하게 났다. 그래서 벌목을 중단했지만 베려 한 사람들은 모두 까닭 없이 죽었다. 느티나무가 소 울음소리를 냈다 하여 우명목(牛鳴木)이라고 불리고 있다.

마을에서 위하는 곰솔나무에서 송진만 떼어도 동티가 난다든지 나무에 소변을 보면 앉은뱅이가 된다는 등의 전설도 있다. 또한 당수나무 아래에 상여를 놓으면 [조문](/topic/조문)객들이 병이 난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당수나무를 베려다가 급살(急煞)을 맞거나 다친 일본인 순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당수나무의 영험에 의한 지벌을 증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을 주민들의 저항의식을 표현한다. 불가항력적인 식민 당국의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마을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마을의 신목을 잃었지만 비현실적인 세계에서조차 그러한 좌절을 지속시킬 수가 없다. 마침내 벌목을 지시하거나 실제 나무를 베어낸 인부들은 귀가(歸嫁)한 뒤에 곧바로 피를 토하거나 복통을 호소하며 덧없이 죽어 갔다. 이것이 사실이거나 허구이거나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지벌을 받았다고 믿고 대내․외적으로 전승시키는 민간사고(民間思考) 자체가 의미가 있다. 현실의 좌절이나 실패를 정신적 보복이나 저항 또는 승리로 전환시킨 것이다.

마을 신령에 대한 신성모독이나 신의의 거부나 위배, 부족한 정성도 노여움을 불러일으켜 지벌을 받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다음의 사례들에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를 볼 수 있다.


“마을 회의에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어떤 사람을 제관으로 뽑았다. 그런데 여러모로 귀찮고 힘들 것 같아 제관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제관을 냈다. 얼마 후 제관직을 맡지 않은 사람의 자식이 별스럽지 않게 가볍게 앓더니 이내 죽었다.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무당에게 무꾸리를 하였다. 무당은 “너는 산에 해당이 되었는데 왜 가지 않았느냐”고 힐난을 하였다.”


“마을 이름에 소 우(牛) 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매년 통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냈다. 어느 해인가 제사 비용을 줄인다고 쇠머리로 대신하였다. 곧바로 동네 소 열 마리가 이유 없이 죽었다. 그래서 통소를 잡아 새로 동제를 모셨다.”


“산제당의 [쇠말](/topic/쇠말)을 훔쳐 갔더니 갑자기 봉사가 되었다.”


“산제에 올릴 돼지를 잡다가 콩팥을 몰래 먹었다. 그랬더니 입이 돌아갔다. 다시 새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용서를 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이 되돌아왔다.”


“산제를 지내기 위하여 제물을 지고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이때 떨어진 밤을 주워 먹고 그 자리에서 복통을 일으켜 죽는 일이 있었다.”


“김유신[장군](/topic/장군)사당 앞을 일본 헌병이 말을 타고 지나갔다. 말발굽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꼼짝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말에서 내려 [사당](/topic/사당)에 절을 올린 뒤에야 말발굽이 떨어져 그 앞을 지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부인당(夫人堂) 앞길로 사람이 많이 다녔다. 이때 말을 타고 가던 행인들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야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말 다리가 부러지거나 말 탄 사람이 앉은뱅이가 되었다. 월경하는 여자가 이 앞을 지나도 앉은뱅이가 되었다.”


“마을의 숲 속에 터주가리 모습의 군웅 장군당을 모셨다. 워낙 군웅의 신력이 강하여 그곳을 지나는 말의 말굽이 들러붙어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언젠가 배의 돛대로 쓸 나무를 이곳에서 베던 나뭇꾼들이 숲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낸 뒤에야 하산할 수 있었다. 군웅당 숲 속에 누워 있으면 귀 달린 구렁이가 돌아다니면서 집으로 되돌아가라고 이를 정도로 영험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에 헐벗은 거지가 당산할머니(돌로 만든 오리솟대)에 감아 놓은 베가 탐이 났다. 그래서 옷을 지어 입으려고 당산 [기둥](/topic/기둥)에 올라갔다가 몸이 그대로 기둥에 붙어 동사(凍死)하였다. 지금도 당산 기둥에 남아 있는 거무스레한 자국은 바로 거지가 죽은 자취라 한다.”


이러한 지벌에 관한 믿음은 동민에게 마을 신령의 영험을 드러내게 할 뿐만 아니라 경외(敬畏)하도록 만든다. 또한 마을신앙과 그 의례를 일정한 형식과 내용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 관념적 장치가 된다. 마을 신령과 동민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지벌은 개인이나 가정 또는 마을 단위로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벌의 연좌제’가 적용된다. 이때의 연좌는 연좌(緣坐)와 연좌(連坐) 모두 해당된다. 지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만 신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가족 및 친인척을 넘어 동네 전체로 파장을 일으킨다. 또 이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topic/가축)에까지 이른다.

대체로 지벌은 급하고 엄하게 즉각 내려져 죽음, 부상,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간혹 마을 신령은 직접적이고 강력한 응징을 하기보다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어떤 징조로 미리 나타내 제관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또한 그러한 징조로서 자신이 받을 정당한 종교적 대우를 확보하기도 한다. 마을 신령의 노여움이 극대화되어 무서운 책벌(責罰)로 이어지는 것을 [사전](/topic/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이다. 이 같은 징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 지벌’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지벌 관념은 동제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제관이나 마을 주민들의 ‘꺼림칙한 사건의 기억’에서 형성된다. 마음에 걸려 있던 불안한 기억이 동제 이후에 일어난 어떤 불의의 사건·사고와 연계될 때 지벌은 그 불행한 결과를 설명하는 원인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마을의 역사를 경유하면서 반신반의(半信半疑)를 거쳐 점차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전승되고 각인된다.
참고문헌[마을](/topic/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일제하 민간신앙의 지속과 변화 (이필영 일제의 식민지배와 일상생활, 연세대 국학연구원, 혜안, 2004)
지역사례금기들을 소홀히 하거나 지키지 않고 동제를 진행하면 지벌을 맞는다. 다음의 예화가 부정에 의한 지벌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제관](/topic/제관) 댁의 소가 갑자기 죽었다. 제일을 연기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사람도 아닌 소인데 어떠랴 싶었다. 그래서 당제를 예정대로 그대로 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해 여름까지 [마을](/topic/마을)의 소가 일곱 마리나 차례로 죽었다. 문복(問卜)을 하니 제관을 잘못 선정하였다고 하였다. 그해 7월에 큰 굿을 하고 나서야 마을이 평안해졌다.”


“당주네 부인이 월경하는 것을 감추고 제물을 준비하였다. 그 이후 집안에서 키우던 돼지가 아무 까닭 없이 갑자기 죽었다.”


“제주의 아들이 밖에 나가서 피를 흘린 사실을 모르고 그대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갑자기 산제당에 모래가 뿌려지고 메에 수저를 꽂는데 수저가 부러졌다.”


“며느리가 임신을 하였다. 시아버지가 그 사실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고 산제에 참여했다가 곧바로 이유 없이 죽었다.”


“제관 부부가 동침을 했더니 결합된 두 몸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란 나머지 산신에게 잘못을 빌었더니 그제서야 두 몸이 떨어졌다.”


“개고기를 먹은 사람이 성황제를 구경하였다. 금방 뼈가 뒤틀려 다리도 건너기 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상가(喪家)에 입고 간 옷을 그대로 입고 동고사를 지냈다. 그해 마을에 큰 흉사가 있었다.”


“제물 준비를 하는데 고양이가 조기를 물고 달아났다. 이를 쫓아가 다시 찾아서 제사를 올렸다. 제관의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산제 제물을 이고 산을 오르는데 쇠머리가 굴러떨어졌다. 어떠랴 싶어 쇠머리를 주워 산제를 지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유사의 며느리가 계속 유산을 하였다.”


“산제당에 올릴 떡을 찔 때에 임신부, 변소에 다녀온 사람,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대표적인 금기 대상이 된다. 이들이 [부엌](/topic/부엌)에 들어오거나 엿보기만 해도 시루번이 부풀거나 터져서 떡이 설게 된다. 이때에는 산신에게 잘못을 빌고 꽃떡을 시루 안에 올리는 등 뱅이를 한다.”


한편 역시 가장 무서운 지벌은 마을 신령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마을 신령에 대한 직접적 공격 또는 신체나 제당에 대한 파괴 행위는 즉각적인 지벌을 야기한다. 마을의 신목(神木)인 당수나무를 벌목하거나 훼손시킨 사람들에 대한 지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수나무의 영험성은 대체로 나무를 해친 자들에게 [신벌](/topic/신벌)이 내린다는 이야기로 나타난다. 곧 나무를 베어낸 사람들이 결국은 다 다치거나 죽었다든지,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topic/가지)일망정 결코 화목(火木)으로 쓰지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거의 모든 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마을에서 [물레방아](/topic/물레방아)를 만들기 위하여 마을의 느티나무를 베려고 하니 소 울음소리가 심하게 났다. 그래서 벌목을 중단했지만 베려 한 사람들은 모두 까닭 없이 죽었다. 느티나무가 소 울음소리를 냈다 하여 우명목(牛鳴木)이라고 불리고 있다.

마을에서 위하는 곰솔나무에서 송진만 떼어도 동티가 난다든지 나무에 소변을 보면 앉은뱅이가 된다는 등의 전설도 있다. 또한 당수나무 아래에 상여를 놓으면 [조문](/topic/조문)객들이 병이 난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당수나무를 베려다가 급살(急煞)을 맞거나 다친 일본인 순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당수나무의 영험에 의한 지벌을 증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을 주민들의 저항의식을 표현한다. 불가항력적인 식민 당국의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마을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마을의 신목을 잃었지만 비현실적인 세계에서조차 그러한 좌절을 지속시킬 수가 없다. 마침내 벌목을 지시하거나 실제 나무를 베어낸 인부들은 귀가(歸嫁)한 뒤에 곧바로 피를 토하거나 복통을 호소하며 덧없이 죽어 갔다. 이것이 사실이거나 허구이거나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지벌을 받았다고 믿고 대내․외적으로 전승시키는 민간사고(民間思考) 자체가 의미가 있다. 현실의 좌절이나 실패를 정신적 보복이나 저항 또는 승리로 전환시킨 것이다.

마을 신령에 대한 신성모독이나 신의의 거부나 위배, 부족한 정성도 노여움을 불러일으켜 지벌을 받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다음의 사례들에서 이러한 원인과 결과를 볼 수 있다.


“마을 회의에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어떤 사람을 제관으로 뽑았다. 그런데 여러모로 귀찮고 힘들 것 같아 제관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제관을 냈다. 얼마 후 제관직을 맡지 않은 사람의 자식이 별스럽지 않게 가볍게 앓더니 이내 죽었다.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무당에게 무꾸리를 하였다. 무당은 “너는 산에 해당이 되었는데 왜 가지 않았느냐”고 힐난을 하였다.”


“마을 이름에 소 우(牛) 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매년 통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냈다. 어느 해인가 제사 비용을 줄인다고 쇠머리로 대신하였다. 곧바로 동네 소 열 마리가 이유 없이 죽었다. 그래서 통소를 잡아 새로 동제를 모셨다.”


“산제당의 [쇠말](/topic/쇠말)을 훔쳐 갔더니 갑자기 봉사가 되었다.”


“산제에 올릴 돼지를 잡다가 콩팥을 몰래 먹었다. 그랬더니 입이 돌아갔다. 다시 새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용서를 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이 되돌아왔다.”


“산제를 지내기 위하여 제물을 지고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이때 떨어진 밤을 주워 먹고 그 자리에서 복통을 일으켜 죽는 일이 있었다.”


“김유신[장군](/topic/장군)사당 앞을 일본 헌병이 말을 타고 지나갔다. 말발굽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꼼짝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말에서 내려 [사당](/topic/사당)에 절을 올린 뒤에야 말발굽이 떨어져 그 앞을 지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부인당(夫人堂) 앞길로 사람이 많이 다녔다. 이때 말을 타고 가던 행인들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야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말 다리가 부러지거나 말 탄 사람이 앉은뱅이가 되었다. 월경하는 여자가 이 앞을 지나도 앉은뱅이가 되었다.”


“마을의 숲 속에 터주가리 모습의 군웅 장군당을 모셨다. 워낙 군웅의 신력이 강하여 그곳을 지나는 말의 말굽이 들러붙어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언젠가 배의 돛대로 쓸 나무를 이곳에서 베던 나뭇꾼들이 숲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었다.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낸 뒤에야 하산할 수 있었다. 군웅당 숲 속에 누워 있으면 귀 달린 구렁이가 돌아다니면서 집으로 되돌아가라고 이를 정도로 영험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에 헐벗은 거지가 당산할머니(돌로 만든 오리솟대)에 감아 놓은 베가 탐이 났다. 그래서 옷을 지어 입으려고 당산 [기둥](/topic/기둥)에 올라갔다가 몸이 그대로 기둥에 붙어 동사(凍死)하였다. 지금도 당산 기둥에 남아 있는 거무스레한 자국은 바로 거지가 죽은 자취라 한다.”


이러한 지벌에 관한 믿음은 동민에게 마을 신령의 영험을 드러내게 할 뿐만 아니라 경외(敬畏)하도록 만든다. 또한 마을신앙과 그 의례를 일정한 형식과 내용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 관념적 장치가 된다. 마을 신령과 동민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지벌은 개인이나 가정 또는 마을 단위로 당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벌의 연좌제’가 적용된다. 이때의 연좌는 연좌(緣坐)와 연좌(連坐) 모두 해당된다. 지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만 신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가족 및 친인척을 넘어 동네 전체로 파장을 일으킨다. 또 이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topic/가축)에까지 이른다.

대체로 지벌은 급하고 엄하게 즉각 내려져 죽음, 부상,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간혹 마을 신령은 직접적이고 강력한 응징을 하기보다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어떤 징조로 미리 나타내 제관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또한 그러한 징조로서 자신이 받을 정당한 종교적 대우를 확보하기도 한다. 마을 신령의 노여움이 극대화되어 무서운 책벌(責罰)로 이어지는 것을 [사전](/topic/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이다. 이 같은 징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 지벌’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지벌 관념은 동제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제관이나 마을 주민들의 ‘꺼림칙한 사건의 기억’에서 형성된다. 마음에 걸려 있던 불안한 기억이 동제 이후에 일어난 어떤 불의의 사건·사고와 연계될 때 지벌은 그 불행한 결과를 설명하는 원인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마을의 역사를 경유하면서 반신반의(半信半疑)를 거쳐 점차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전승되고 각인된다.
참고문헌[마을](/topic/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일제하 민간신앙의 지속과 변화 (이필영 일제의 식민지배와 일상생활, 연세대 국학연구원, 혜안, 2004)
집문당한국무속연구김태곤1981
서광사한국인의 종교경험-무교차옥숭1997
국립민속박물관재가집의 관점에서 바라 본 오구굿의 의미홍태한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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