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소놀이굿

한국무속신앙사전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소놀이굿. 양주소놀이굿은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양주소놀이굿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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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소놀이굿. 양주소놀이굿은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양주소놀이굿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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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호
정의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소놀이굿. 양주소놀이굿은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양주소놀이굿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내용양주소놀이굿은 [멍석](/topic/멍석) 등으로 소를 꾸며 만들어서 제석거리 주관자]인 무녀와 가장한 소를 몰고 온 마부가 [재담](/topic/재담)과 소리를 주고받는 굿놀음이다. 이 굿이 굿놀음이기는 하지만 무당 중심의 연행이 아니라 [마을](/topic/마을)의 신명 많은 놀음꾼들과 함께 연행해 나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마을의 놀음꾼과 무당이 합작해 벌이는 것이 소놀이굿이다.

양주소놀이굿은 만신과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온 마부와의 재담과 타령을 중심으로 엮어진다. 만신의 부름을 받은 마부가 소와 송아지를 몰고 들어와서 소의 여러 [가지](/topic/가지) 모색을 묘사한 뒤 소의 여러 가지 치장을 서술하고 소를 사고파는 행위가 이어진 다음 집안이 잘되도록 축원하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다. 원래 양주소놀이굿은 양주 지역 재수굿의 일종인 [경사](/topic/경사)굿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소놀이굿만 독립적으로 연행되는 것이 아니라 농사나 사업·장사 등이 잘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경사굿의 일부로서 제석거리에 이어서 행해졌다. 보통 가을 추수 후에 신곡(新穀)맞이 경사굿에서 연행되었다.

경사굿은 첫 굿거리인 행추물림에서 시작하여 부정, 불사맞이, 본향, 초가망, 조상, 대감, 성주받이, 상산, 별상, 신장, [산대](/topic/산대)감, 제석(소놀이굿), 호구거리, 성주, 산거리, 창부, 뒷전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소놀이굿은 이러한 경사굿의 문맥에서 제석거리에 연계되어 진행된다. 양주소놀이굿은 [길놀이](/topic/길놀이), 제석굿의 주바지, 마부의 등장과 소의 등장, 소의 모색치레, 소의 치장치레, 소의 논밭갈[기와](/topic/기와) 글 가르치기, [고사](/topic/고사)ㆍ축원ㆍ[덕담](/topic/덕담), 소 흥정과 권주, 뒷풀이 등의 순으로 연행된다. 길놀이, 소 흥정과 권주, 뒷풀이는 1980년 이후 새롭게 첨가된 것이다. 이는 양주소놀이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공연을 중심으로 연행되면서 생긴 독립적 연행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양주소놀이굿의 연행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석거리 절차가 되면 [대청](/topic/대청)[마루](/topic/마루)에서 진행되던 굿이 안[마당](/topic/마당)으로 옮겨지고 제석상이 차려진다. 마당에 제석상이 차려지면 [악사](/topic/악사)들이 밑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원마부 한 명과 곁마부 두 명이 어미소와 송아지를 데리고 들어와 소놀이굿을 한다. 어미소는 네 명, 송아지는 두 명의 사람이 각각 들어가 가장한 것이다. 소놀이굿에 등장하는 무당은 제석거리 복색인 [장삼](/topic/장삼)과 [고깔](/topic/고깔)을 쓰고 함께 마당에서 춤을 추면서 판을 이끌어간다.

양주소놀이굿은 마부들과 무당의 재담 및 타령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판에 등장한 무당은 먼저 제석청배한다. 제석청배를 끝낸 무당은 마부를 부르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소놀이굿이 시작된다. 만신이 부르는 소리에 등장한 마부는 만신과 재담을 주고받는다. 무당이 짤막한 말을 던지며 원마부와 곁마부가 교대로 서로 창을 한다. 이 과정에서 원마부타령, 곁마부타령, 마부노정기 등의 타령이 불려진다. 마부들과 함께 등장한 어미소와 송아지는 까불면서 마당판을 돌아다닌다. 마부들은 절타령과 보물타령을 통해 어미소를 소개한다. 이어서 소의 생김새를 타령으로 부르면서 소빛내력, 머리치레, 뿔치레, 귀치레, 눈치레, 코치레, 입치레, 혀치레, 이치레, 꼬리치레, 다리치레, 굽치레로 이어진다. 이어서 소의 치장치레가 진행된다. 질마치장, [굴레](/topic/굴레)치장, 마부치장 등의 소 장식품에 대한 모습이 묘사된다. 치장치레 다음에 소의 기능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마부가 소를 부리는 일과 함께 글 가르치기를 시도한다. 여기에서 소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 잘 부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고사ㆍ축원ㆍ덕담이 진행된다. 이 대목에서는 소놀이굿이 마부 중심에서 무당에게로 넘어간다. 양주소놀이굿의 결말은 소 흥정 대목이다. 무당이 집주인을 내세워 소 값을 흥정하고 소를 사고파는 행위가 보여진다. 소가 팔리면 집안이 잘되도록 무당이 축원을 하고 소놀이굿이 마[무리](/topic/무리)된다.
역사양주소놀이굿의 기원이나 형성 과정에 대해 참고할 문헌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우마숭배와 농경의례인 소멕이놀이에 그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배송굿](/topic/마마배송굿)의 마부타령에 자극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양주소놀이굿의 형성 과정 역시 자생적으로 양주 지방의 무속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른 지방에서 배워온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전승자들의 단편적 기억에 의존해 양주소놀이굿의 역사를 재구성해 볼 때 떠오르는 인물은 팽수천(彭壽天, 1901~1937)이다. 현재 전승자들이 말하는 양주소놀이굿의 역사는 무부였던 팽수천에서 시작된다. 팽수천은 [재담](/topic/재담)도 잘하고 소리도 잘했으며 놀기도 잘했던 인물이다. 무녀와 한 짝이 되어 양주소놀이굿 재담도 확립하고, 소리도 전승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구빼미 만신과 같은 양주 지역의 만신들과 함께 광복 이전에 양주 경사굿에서 벌어지는 소놀이굿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60년대 양주소놀이굿 재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여러 연행자를 길러내는 역할을 했다.

양주소놀이굿은 광복 이후 급격하게 쇠퇴하고 전승마저 단절될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때에 양주소놀이굿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재현 작업도 이루어진다. 우용진(禹龍辰)·고관성(高寬成) 같이 팽수천에게 소놀이굿을 배운 인물들과 조영자(趙英子)로 대표되는 양주 지역 만신을 중심으로 양주소놀이굿이 재현되었다. 양주 지역의 신명 많은 놀음꾼과 만신들의 합작품이 양주소놀이굿임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양주소놀이굿은 마부 역할을 맡는 놀음꾼과 만신을 중심으로 전승되었다. 그런데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전후해 양주소놀이굿은 마부, 만신, [악사](/topic/악사)의 세 [가지](/topic/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승체계가 마련된다.
지역사례소놀이굿 형태의 연행은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실제 연행 상황이 보고된 지역은 경기도와 황해도이다. 양주소놀이굿을 제외한다면 보고된 소놀이굿은 모두 황해도 지역이다. 경기도와 황해도 지역의 소놀이굿은 경사굿 문맥에서 제석거리와 연계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볼 때 적지 않은 차별성을 보인다.

황해도 평산군에서 전승 연행되던 소놀이굿이 평산소놀음굿이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산소놀음굿의 특징은 다른 소놀이굿과 비교할 때, 연극적 속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제석굿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극적 형태로 새롭게 분화되고 발전되어 등장한다. 제석님, 세 지석(삼신제석·복립지석·지인지석), 신농씨, 애미보살, 지장보살, 마부, 약대 등 등장인물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이를 인물의 역할 또한 분명하다. 제석님은 인간애기를 점지하고 농사를 감독하는 구실을 한다. 신농씨는 농사를 감독하고, 애미보살은 [씨뿌리기](/topic/씨뿌리기)를 하고, 지장보살은 [김매기](/topic/김매기) 등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평산소놀음굿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제석과 마부이지만 나머지 인물들도 적절한 나름의 역할을 한다. 다른 소놀이굿과 비교할 때 가장 연극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황해도 연백군에서도 소놀음굿이 연행되었다. 연백소놀이굿의 주된 내용은 마부와 [만신](/topic/만신)의 말로 겨루기가 서두에 진행된다. 이어서 소가 분명히 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소에게 축원하고 대접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결말 부분은 [대주](/topic/대주)가 나서서 풍농을 기원하자 마부가 나서서 잦은난봉가, [산염불](/topic/산염불), 잦은염불 등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연백소놀이굿의 특징은 소놀이굿의 제의적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제의적 성격이 많이 거세된 양주소놀이굿에 비해 연백소놀이굿은 소놀이굿의 제의적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황해도 만신이었던 우옥주(禹玉珠)가 연행했던 소놀음굿이 있다.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황해도 옹진군 일대에서 전승되던 것으로 추론된다. 이 소놀음굿에는 [경관만신](/topic/경관만신), 마부, [상좌](/topic/상좌)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경관만신이 묻고, 그 말을 상좌가 마부에게 전하고, 마부가 한 말을 다시 상좌가 듣고, 상좌가 그 말을 경관만신에게 전하는 대[사전](/topic/사전)달법이 독특하다. 간접화법을 사용하는 소놀이굿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소놀이굿은 크게 네 [가지](/topic/가지)가 전승되고 있으며, 각각 나름대로의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소놀이굿의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가장한 소를 두고서 만신과 마부가 여러 가지 [재담](/topic/재담)과 소리를 하며 한바탕 놀이를 벌인다는 점은 동일하다. 각 지역 경사굿의 문맥에서 제석거리에 연계되어 진행된다는 점 역시 공통적인 속성이다.
참고문헌소놀이굿과 무가ㆍ제석거리에 대하여 (최길성, 고려대 석사논문, 1965)
양주 소놀이굿 (이두현, 무형문화재보고서 제6집, 문화재관리국, 1967)
큰무당 우옥주 유품 (양종승, 국립민속박물관, 1995)
[김금화](/topic/김금화)무가집 (김금화, 문음사, 1995)
[황해도평산소놀음굿](/topic/황해도평산소놀음굿) (양종승,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양주소놀이굿 (김헌선, 화산문화, 2001)
양주소놀이굿 (김헌선 외, 양주시, 2006)
국립문화재연구소서울새남굿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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