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개바우마을동제문서

한국무속신앙사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 속칭 구암(狗岩) 또는 ‘개바우’라고 부르는 반농반어촌의 [마을](/topic/마을) 자치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동제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조직 구성과 운영 및 재산관리 등을 기록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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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 속칭 구암(狗岩) 또는 ‘개바우’라고 부르는 반농반어촌의 [마을](/topic/마을) 자치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동제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조직 구성과 운영 및 재산관리 등을 기록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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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 속칭 구암(狗岩) 또는 ‘개바우’라고 부르는 반농반어촌의 [마을](/topic/마을) 자치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동제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조직 구성과 운영 및 재산관리 등을 기록한 문서.
정의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 속칭 구암(狗岩) 또는 ‘개바우’라고 부르는 반농반어촌의 [마을](/topic/마을) 자치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동제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조직 구성과 운영 및 재산관리 등을 기록한 문서.
내용문서의 분류와 종류는 다음과 같으며, 표기는 본래의 것을 그대로 따른다.

1. 동안류(洞案類) : 6건, 동안류는 구암리의 주민 자치조직[일명 동수조직(‘洞首組織’)이라 함]의 규칙과 임원 구성을 기록한 문서이다. 동중좌목성책(洞中座目成冊, 1895), 동중좌목(洞中座目, 1899), 구암분동동안(狗巖分洞洞案, 1900), 동안(洞案, 1909), 동중의안(洞中議案, 1940), 구암동동원좌목기(狗巖洞洞員座目記, 1866)가 여기에 해당된다.

2. 성책류(成冊類) : 28건, 성책류는 주민 자치조직의 다양한 활동상황(제당의 증개축, 공동 재산의 관리와 증식, 세금납부, 공동노역 등)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들이다.

신건모옥개초성책(新建茅屋蓋草成冊, 1850), 본동패계이패성책(本洞牌稧李牌成冊, 1868), 본동별보전분급기(本洞別補錢分給記, 1868), 공납성책(公納成冊, 1895), 남하리면구암동사환미수성책(南下里面狗巖洞社還米修成冊, 1899), 구재성책(鳩財成冊, 1899), 선염곽세구별성책(船鹽藿稅區別成冊, 1900), 각양공납보급장책(各樣公納報給掌冊, 1903), [공전](/topic/공전)수조성책(각양공납원수성책)[公錢修造成冊(各樣公納元修成冊), 1905)], 곽암방매기구재성책(藿巖放賣記鳩財成冊, 1905), 입문기(入文記, 1905), 각동구걸보급록수성책(各洞求乞報給錄修成冊, 1906), 각세금영수정성책(各稅金領收正成冊, 1908), 입문여부비기동별보성책(入文與浮費記洞別補成冊, 1908), 구암동결수신고성책(狗巖洞結數申告成冊, 1909), 구암동중별보성책(狗巖洞中別補成冊, 1909), 각동구걸성책(동사성공시)[各洞求乞成冊(同舍成工時), 1910], 남하리면구암동식목성책(南下里面狗巖洞植木成冊, 1911), 신유보폐전이래자노반별보성책(新襦補弊錢移來者老班別補成冊, 1916), 궐기(闕記, 1917), 관전성책개초성책(關錢成冊盖草成冊, 1926), 구동송계성책(九洞松契成冊, 1926), 동사신축비록(洞舍新築費錄, 1958), 평해군청훈시접수부(平海郡廳訓示接受簿, 1914), 구암동성황당중수청조문(狗巖洞城隍堂重修淸助文), 남하리면구암동인구조사성책(南下里面狗巖洞人口調査成冊, 1909), 구암동연명부총(狗巖洞連名簿總, 1911), 재무조사부(財務調査簿, 1913), 송계관전수성책(松稧官錢收成冊, 1905) 등을 성책류로 분류할 수 있다.

3. 완문류(完文類) : 7건, 완문류는 구암리의 사회질서 확립과 주민의 기풍 진작을 위한 규약을 기록한 문서이다. 완문(完文, 1870), 구암동완문(狗岩洞完文, 1882), 남하리면완문(南下里面完文, 1898), 구암동완문(狗岩洞完文, 1901), 구암진완문(狗岩津完文, 1906), 남진완문(南津完文, 1909), 근남면향약절목(近南面鄕約節目)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4. 하기류(下記類) : 62건, 하기류는 주민 공동제 제의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기록한 문서이다. 하기류에는 정조[고사](/topic/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25), 동중하기(洞中下記, 1926), 동중계(洞中計, 1927), 신미고사하기(新米告祀下記, 1928), 중양일도신록(中陽日禱神錄, 1928), 별고사하(別告祀下, 1928), 정초고사하기(正初告祀下記, 1928), 천신고사하기(薦新告祀下記, 1929), 중양도신하기(中陽禱神下記, 1930), 고사하(告祀下, 1932), 고사하기(告祀下記, 1930), 중양도신하기(重陽禱神下記, 1930), 고사하(告祀下, 1932), 정초고사하(正初告祀下, 1932), 동중하기(洞中下記, 1933), 동중하기(洞中下記, 1936), 동중류이하기(洞中流伊下記, 1938), 고사하기(告祀下記, 1938), 성조고사하기(成造告祀下記, 1940), 신미고사하(新米告祀下, 1940), 고사하기(告祀下記, 1943), 하기(下記, 1946), 제사하기(祭事下記, 1947), 정초고사하기(正初告祀下記, 1948), 동중하기(洞中下記, 1948),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49), 하기(下記, 1949),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50), 제하기(祭下記, 1950), 제사하기(祭事下記, 1954), 구월중구무인소비(九月重九巫人消費, 1955), 제사하기(祭事下記, 1956), 하기(下記, 1957), 중양고사하기(重陽告祀下記, 1957),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58), 제사하기(祭事下記, 1958), 하기(下記, 1959), 제(사하기)[祭(祀下記), 1960], 신미제하(新米祭下, 1961), 중양제사하기(重陽祭祀下記, 1961), 정초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62), 신미고사하기(新米告祀下記, 1962), 중양고사하기(重陽告祀下記, 1963), 정초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64), 동중유리하기명세서(洞中流離下記明細書, 1963~1964), 성황중수하(城隍重修下, 1938),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중양시(重陽時, 1967), 중양고사후하기(重陽告祀後下記), 중양도신잡비(重陽禱神雜費), 정조제하기(正朝祭下記), 중양고사하기(重陽告祀下記), 동중하기(洞中下記)가 있다.

5. 수기류(手記類) : 5건, 수기류는 골매기제 성원인 주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는 어장 침입 또는 어획량에 따른 세금 등 구임리와 인근 [마을](/topic/마을)들 사이에서, 또는 어로세 등 다양한 돈 거래 행위를 기록한 문서이다.

동중전수기(洞中前手記, 1900), 박향장전수기(朴鄕長前手記, 1903) 외 24건, 박향장전표기(朴鄕長前標記, 1905) 외 4건, 이행수전수표(李行首前水標, 1907) 외 11건 등이 해당된다.

6. 분배기류(分排記類) : 28건, 분배기류는 골매기제의 중요한 자금이 되는 원천인 마을 공동구역인 ‘짬’의 운영에 관한 내용이며, ‘짬’의 분배와 수익금의 분배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후리항하기분배기(厚里舡下記分配記, 1903), 화포암분배(和布岩分排, 1930),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37), 화포추첨기(和布抽籤記, 1938), 별신하기분배(別神下記分排, 1938), 곽암추첨기(藿岩抽籤記, 1940),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44),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45), 화포암분배기(和布岩分配記, 1945), 화포암분배기(1946), 풍락화포함기(1매, 1948), 화포함분별명부(1매, 1948), 화[포대](/topic/포대)금입(和布代金入, 1949), 화포암분별기(和布岩分別記, 1950), 절곽혈매도금(絶藿穴賣渡金, 1959), 화포암입금(和布岩入金), 호포배정기(戶布排定記, 1902), 채조분배기(採藻分排記, 1926), 채조분배기(採藻分排記, 1951), 곽암분배시하기(藿岩分排時記下), 곽암분배기(藿岩分排記), 후리항하기분배기(厚里舡下記分配記, 癸卯二月), 화포암분배(和布岩分配, 1930),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37), 화포암풍락대금(和布岩風落代金, 1958), 화포암입금(和布岩入金) 등이 분배류에 해당된다.

7. 봉상기류(捧上記類) : 26건, 봉상기류는 골매기제의 중요한 자금이 되는 ‘짬’(곽암)의 수익금이나 어로 수익금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마을 공동기금의 운용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곽암방매기(藿岩放賣記, 1893), 동중별보추봉상기(洞中別補推捧上記, 1904), 이상존회계(李上尊會計, 1905), 구암동기어개광기(狗岩洞幾魚改筐記, 1908), 동중노반전본리추봉기(洞中老班錢本利推捧記, 1911), 봉상전기(捧上錢記, 1911), 동중곽수봉기(洞中藿收捧記, 1911), 남하리면구암리저축별명기(南下里面狗岩里貯蓄別名記, 1912), 백미수입기(白米受入記, 1924), 동중별보전(洞中別補錢, 1925), 일본인연조금(日本人捐助金, 1926), 동중별보전(洞中別補錢, 1926), 제초초(除草抄, 1928), 유용(流用, 1930), 중앙기부금(中央寄附金, 1930), 고사시입금(告祀時入金, 1943), 오락기기부금(娛樂器寄附金, 1947), 기부기(寄附記, 1948), 동중금차용(洞中金借用, 1950), 제사비입금(祭祀費入金), 곽암방매기(藿岩放賣記, 1913), 동중구암병수봉기(洞中狗岩幷收捧記, 1913), 곽암전수입(藿岩錢收入, 1919), 구암리곽암 수입금(狗岩里藿岩 收入金), 곽암전배정암수산금원납기(藿岩錢排定岩水産金元納記, 1920), 패미출방기(牌米出放記)가 봉상기류에 해당된다.

8. 규약서류(規約書類) : 9건, 규약서류는 골매기제의 중요한 자금이 생산되는 ‘짬’(곽암)의 미역 채취와 관련한 규약과 계약 내용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계약서(契約書, 1914), 곽암채취시인원규칙(藿岩採取時人員規則, 1920), 임야경계서약서(誓約書, 1924), 구암대동회석상화포채취규(邱菴大洞會席上和布採取規, 1930), 습곽선조약서(拾藿船條約書, 1933), 서약서(誓約書, 1934), 화포채취규약서(和布採取規約書, 1934), 화포분배시조약의 건(和布分配時條約의 件, 1935), 계약서(契約書, 1948)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9. 전장기류(傳掌記類) : 8건, 전장기류는 구암리 공동기금의 수입과 지출 및 보관 상황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동중입문기(洞中入文記, 1908), 구임유[사전](/topic/사전)장기(舊任有司傳掌記, 1910), 신임전장기(新任傳掌記, 1915), 도신시치부록(禱神時致富錄, 1926), 취회시입금기(聚會時入金記, 1931), 현금출납부(現金出納簿, 1933), 전장기(傳掌記, 1934), 총회시구책이래(總會時舊冊移來, 1929) 등이 있다.

10. 입지․소지류(立旨․所志類) : 12건, 입지․소지류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것으로 구암동민들 사이에서 발생한 다양한 송사를 관청에서 심사하여 그 결과를 통지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남하리구암동임위수[본사](/topic/본사)…(南下里狗岩洞任爲手本事…, 1895) 외 3건, 남하리면구암동거박두한백학조윤인길정구보전개필등장(南下里面狗岩洞居朴斗漢白學祚尹仁吉鄭九寶全啓弼等狀, 1906) 외 3건, 구암동동임위첩장등…(狗岩洞洞任爲牒狀等…, 1893)외 2건, 우문위영구준행사…(右文爲永久逡行事…, 1889) 외 4건, 남하리구암동민인등장(南下里狗岩洞民人等狀, 1864), 구암동거박성관박원식등(狗岩洞居朴成寬朴元植等, 1887), 남하리구암동동임위첩보사…(南下里狗岩洞洞任爲牒報事…, 1889), 남하리구암동동민등장(南下里狗岩洞洞民等狀, 1890), 남하리면구암동두민급동임등장(南下里面狗岩洞頭民及洞任等狀, 1890), 남하리구암동동민등장(南下里狗岩洞洞民等狀, 1892), 남북각진혜민등도부장(南北各津匸民等到付狀, 1899), 구암동박보배백학손등등장(狗岩洞朴寶培白學遜等等狀, 1904)이 해당된다.

11. 기타 : 15건, 이들 중에서 묶어져 있거나 두루마리 형태 등으로 보관된 문서들은 분류가 가능하나 낱장으로 존재하는 위의 문서들은 특별히 분류하기가 곤란하여 기타로 분류하였다. 또한 기타로 분류된 것은 문서의 머리 부분에 제목이 표기된 것들이다.

김택수후리채전기(金澤水厚罹債錢記, 1900), 휘리선중전수기(揮罹船中前手記, 1902), 각동구공표(各洞求公標, 1905), 대로소설궐계(大路小雪闕計, 1922), 도로궐기(道路闕記, 1926), 동사개초초(洞舍盖草抄, 1928), 도로수선시궐기(道路修繕時闕記, 1932), 도로수선우시(道路修繕于時, 1937), 동사낙성식(洞舍落成式, 1958), 동사낙성식부조부(洞舍落成式扶助簿, 1958), 품청 보고제일호(稟請 報告第一號, 1911), 게방(揭榜, 1921), 계방(啓榜, 1923), 성조택일(成造擇日, 미상), 오월수입금부(五月收入金簿, 미상) 등이 있다.

12. 분류 불가: 19건. 제목의 표기가 없이 낱장으로 존재하는 문서들은 분류 불가로 처리하였다.

미대(米代), 금은이전명문(金銀伊前明文), 구암동(狗岩洞) 외 3건, 망(望), 수입금(收入金), 입금부(入金簿), 입금(入金) 인부대, 기(記), 하기(下記), 십육년정월십이일(十六年正月十二日), 미분수금(未分授金), 구월구일회계(九月九日會計), [목수](/topic/목수)(木手)엔젱기, 공 외(恐外) 13건, 칙론(勅論) 등이 있다.
내용문서의 분류와 종류는 다음과 같으며, 표기는 본래의 것을 그대로 따른다.

1. 동안류(洞案類) : 6건, 동안류는 구암리의 주민 자치조직[일명 동수조직(‘洞首組織’)이라 함]의 규칙과 임원 구성을 기록한 문서이다. 동중좌목성책(洞中座目成冊, 1895), 동중좌목(洞中座目, 1899), 구암분동동안(狗巖分洞洞案, 1900), 동안(洞案, 1909), 동중의안(洞中議案, 1940), 구암동동원좌목기(狗巖洞洞員座目記, 1866)가 여기에 해당된다.

2. 성책류(成冊類) : 28건, 성책류는 주민 자치조직의 다양한 활동상황(제당의 증개축, 공동 재산의 관리와 증식, 세금납부, 공동노역 등)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들이다.

신건모옥개초성책(新建茅屋蓋草成冊, 1850), 본동패계이패성책(本洞牌稧李牌成冊, 1868), 본동별보전분급기(本洞別補錢分給記, 1868), 공납성책(公納成冊, 1895), 남하리면구암동사환미수성책(南下里面狗巖洞社還米修成冊, 1899), 구재성책(鳩財成冊, 1899), 선염곽세구별성책(船鹽藿稅區別成冊, 1900), 각양공납보급장책(各樣公納報給掌冊, 1903), [공전](/topic/공전)수조성책(각양공납원수성책)[公錢修造成冊(各樣公納元修成冊), 1905)], 곽암방매기구재성책(藿巖放賣記鳩財成冊, 1905), 입문기(入文記, 1905), 각동구걸보급록수성책(各洞求乞報給錄修成冊, 1906), 각세금영수정성책(各稅金領收正成冊, 1908), 입문여부비기동별보성책(入文與浮費記洞別補成冊, 1908), 구암동결수신고성책(狗巖洞結數申告成冊, 1909), 구암동중별보성책(狗巖洞中別補成冊, 1909), 각동구걸성책(동사성공시)[各洞求乞成冊(同舍成工時), 1910], 남하리면구암동식목성책(南下里面狗巖洞植木成冊, 1911), 신유보폐전이래자노반별보성책(新襦補弊錢移來者老班別補成冊, 1916), 궐기(闕記, 1917), 관전성책개초성책(關錢成冊盖草成冊, 1926), 구동송계성책(九洞松契成冊, 1926), 동사신축비록(洞舍新築費錄, 1958), 평해군청훈시접수부(平海郡廳訓示接受簿, 1914), 구암동성황당중수청조문(狗巖洞城隍堂重修淸助文), 남하리면구암동인구조사성책(南下里面狗巖洞人口調査成冊, 1909), 구암동연명부총(狗巖洞連名簿總, 1911), 재무조사부(財務調査簿, 1913), 송계관전수성책(松稧官錢收成冊, 1905) 등을 성책류로 분류할 수 있다.

3. 완문류(完文類) : 7건, 완문류는 구암리의 사회질서 확립과 주민의 기풍 진작을 위한 규약을 기록한 문서이다. 완문(完文, 1870), 구암동완문(狗岩洞完文, 1882), 남하리면완문(南下里面完文, 1898), 구암동완문(狗岩洞完文, 1901), 구암진완문(狗岩津完文, 1906), 남진완문(南津完文, 1909), 근남면향약절목(近南面鄕約節目)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4. 하기류(下記類) : 62건, 하기류는 주민 공동제 제의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기록한 문서이다. 하기류에는 정조[고사](/topic/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25), 동중하기(洞中下記, 1926), 동중계(洞中計, 1927), 신미고사하기(新米告祀下記, 1928), 중양일도신록(中陽日禱神錄, 1928), 별고사하(別告祀下, 1928), 정초고사하기(正初告祀下記, 1928), 천신고사하기(薦新告祀下記, 1929), 중양도신하기(中陽禱神下記, 1930), 고사하(告祀下, 1932), 고사하기(告祀下記, 1930), 중양도신하기(重陽禱神下記, 1930), 고사하(告祀下, 1932), 정초고사하(正初告祀下, 1932), 동중하기(洞中下記, 1933), 동중하기(洞中下記, 1936), 동중류이하기(洞中流伊下記, 1938), 고사하기(告祀下記, 1938), 성조고사하기(成造告祀下記, 1940), 신미고사하(新米告祀下, 1940), 고사하기(告祀下記, 1943), 하기(下記, 1946), 제사하기(祭事下記, 1947), 정초고사하기(正初告祀下記, 1948), 동중하기(洞中下記, 1948),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49), 하기(下記, 1949),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50), 제하기(祭下記, 1950), 제사하기(祭事下記, 1954), 구월중구무인소비(九月重九巫人消費, 1955), 제사하기(祭事下記, 1956), 하기(下記, 1957), 중양고사하기(重陽告祀下記, 1957),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58), 제사하기(祭事下記, 1958), 하기(下記, 1959), 제(사하기)[祭(祀下記), 1960], 신미제하(新米祭下, 1961), 중양제사하기(重陽祭祀下記, 1961), 정초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62), 신미고사하기(新米告祀下記, 1962), 중양고사하기(重陽告祀下記, 1963), 정초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1964), 동중유리하기명세서(洞中流離下記明細書, 1963~1964), 성황중수하(城隍重修下, 1938), 정조고사하기(正朝告祀下記), 중양시(重陽時, 1967), 중양고사후하기(重陽告祀後下記), 중양도신잡비(重陽禱神雜費), 정조제하기(正朝祭下記), 중양고사하기(重陽告祀下記), 동중하기(洞中下記)가 있다.

5. 수기류(手記類) : 5건, 수기류는 골매기제 성원인 주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는 어장 침입 또는 어획량에 따른 세금 등 구임리와 인근 [마을](/topic/마을)들 사이에서, 또는 어로세 등 다양한 돈 거래 행위를 기록한 문서이다.

동중전수기(洞中前手記, 1900), 박향장전수기(朴鄕長前手記, 1903) 외 24건, 박향장전표기(朴鄕長前標記, 1905) 외 4건, 이행수전수표(李行首前水標, 1907) 외 11건 등이 해당된다.

6. 분배기류(分排記類) : 28건, 분배기류는 골매기제의 중요한 자금이 되는 원천인 마을 공동구역인 ‘짬’의 운영에 관한 내용이며, ‘짬’의 분배와 수익금의 분배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후리항하기분배기(厚里舡下記分配記, 1903), 화포암분배(和布岩分排, 1930),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37), 화포추첨기(和布抽籤記, 1938), 별신하기분배(別神下記分排, 1938), 곽암추첨기(藿岩抽籤記, 1940),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44),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45), 화포암분배기(和布岩分配記, 1945), 화포암분배기(1946), 풍락화포함기(1매, 1948), 화포함분별명부(1매, 1948), 화[포대](/topic/포대)금입(和布代金入, 1949), 화포암분별기(和布岩分別記, 1950), 절곽혈매도금(絶藿穴賣渡金, 1959), 화포암입금(和布岩入金), 호포배정기(戶布排定記, 1902), 채조분배기(採藻分排記, 1926), 채조분배기(採藻分排記, 1951), 곽암분배시하기(藿岩分排時記下), 곽암분배기(藿岩分排記), 후리항하기분배기(厚里舡下記分配記, 癸卯二月), 화포암분배(和布岩分配, 1930), 화포암추첨기(和布岩抽籤記, 1937), 화포암풍락대금(和布岩風落代金, 1958), 화포암입금(和布岩入金) 등이 분배류에 해당된다.

7. 봉상기류(捧上記類) : 26건, 봉상기류는 골매기제의 중요한 자금이 되는 ‘짬’(곽암)의 수익금이나 어로 수익금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마을 공동기금의 운용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곽암방매기(藿岩放賣記, 1893), 동중별보추봉상기(洞中別補推捧上記, 1904), 이상존회계(李上尊會計, 1905), 구암동기어개광기(狗岩洞幾魚改筐記, 1908), 동중노반전본리추봉기(洞中老班錢本利推捧記, 1911), 봉상전기(捧上錢記, 1911), 동중곽수봉기(洞中藿收捧記, 1911), 남하리면구암리저축별명기(南下里面狗岩里貯蓄別名記, 1912), 백미수입기(白米受入記, 1924), 동중별보전(洞中別補錢, 1925), 일본인연조금(日本人捐助金, 1926), 동중별보전(洞中別補錢, 1926), 제초초(除草抄, 1928), 유용(流用, 1930), 중앙기부금(中央寄附金, 1930), 고사시입금(告祀時入金, 1943), 오락기기부금(娛樂器寄附金, 1947), 기부기(寄附記, 1948), 동중금차용(洞中金借用, 1950), 제사비입금(祭祀費入金), 곽암방매기(藿岩放賣記, 1913), 동중구암병수봉기(洞中狗岩幷收捧記, 1913), 곽암전수입(藿岩錢收入, 1919), 구암리곽암 수입금(狗岩里藿岩 收入金), 곽암전배정암수산금원납기(藿岩錢排定岩水産金元納記, 1920), 패미출방기(牌米出放記)가 봉상기류에 해당된다.

8. 규약서류(規約書類) : 9건, 규약서류는 골매기제의 중요한 자금이 생산되는 ‘짬’(곽암)의 미역 채취와 관련한 규약과 계약 내용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계약서(契約書, 1914), 곽암채취시인원규칙(藿岩採取時人員規則, 1920), 임야경계서약서(誓約書, 1924), 구암대동회석상화포채취규(邱菴大洞會席上和布採取規, 1930), 습곽선조약서(拾藿船條約書, 1933), 서약서(誓約書, 1934), 화포채취규약서(和布採取規約書, 1934), 화포분배시조약의 건(和布分配時條約의 件, 1935), 계약서(契約書, 1948)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9. 전장기류(傳掌記類) : 8건, 전장기류는 구암리 공동기금의 수입과 지출 및 보관 상황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동중입문기(洞中入文記, 1908), 구임유[사전](/topic/사전)장기(舊任有司傳掌記, 1910), 신임전장기(新任傳掌記, 1915), 도신시치부록(禱神時致富錄, 1926), 취회시입금기(聚會時入金記, 1931), 현금출납부(現金出納簿, 1933), 전장기(傳掌記, 1934), 총회시구책이래(總會時舊冊移來, 1929) 등이 있다.

10. 입지․소지류(立旨․所志類) : 12건, 입지․소지류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것으로 구암동민들 사이에서 발생한 다양한 송사를 관청에서 심사하여 그 결과를 통지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남하리구암동임위수[본사](/topic/본사)…(南下里狗岩洞任爲手本事…, 1895) 외 3건, 남하리면구암동거박두한백학조윤인길정구보전개필등장(南下里面狗岩洞居朴斗漢白學祚尹仁吉鄭九寶全啓弼等狀, 1906) 외 3건, 구암동동임위첩장등…(狗岩洞洞任爲牒狀等…, 1893)외 2건, 우문위영구준행사…(右文爲永久逡行事…, 1889) 외 4건, 남하리구암동민인등장(南下里狗岩洞民人等狀, 1864), 구암동거박성관박원식등(狗岩洞居朴成寬朴元植等, 1887), 남하리구암동동임위첩보사…(南下里狗岩洞洞任爲牒報事…, 1889), 남하리구암동동민등장(南下里狗岩洞洞民等狀, 1890), 남하리면구암동두민급동임등장(南下里面狗岩洞頭民及洞任等狀, 1890), 남하리구암동동민등장(南下里狗岩洞洞民等狀, 1892), 남북각진혜민등도부장(南北各津匸民等到付狀, 1899), 구암동박보배백학손등등장(狗岩洞朴寶培白學遜等等狀, 1904)이 해당된다.

11. 기타 : 15건, 이들 중에서 묶어져 있거나 두루마리 형태 등으로 보관된 문서들은 분류가 가능하나 낱장으로 존재하는 위의 문서들은 특별히 분류하기가 곤란하여 기타로 분류하였다. 또한 기타로 분류된 것은 문서의 머리 부분에 제목이 표기된 것들이다.

김택수후리채전기(金澤水厚罹債錢記, 1900), 휘리선중전수기(揮罹船中前手記, 1902), 각동구공표(各洞求公標, 1905), 대로소설궐계(大路小雪闕計, 1922), 도로궐기(道路闕記, 1926), 동사개초초(洞舍盖草抄, 1928), 도로수선시궐기(道路修繕時闕記, 1932), 도로수선우시(道路修繕于時, 1937), 동사낙성식(洞舍落成式, 1958), 동사낙성식부조부(洞舍落成式扶助簿, 1958), 품청 보고제일호(稟請 報告第一號, 1911), 게방(揭榜, 1921), 계방(啓榜, 1923), 성조택일(成造擇日, 미상), 오월수입금부(五月收入金簿, 미상) 등이 있다.

12. 분류 불가: 19건. 제목의 표기가 없이 낱장으로 존재하는 문서들은 분류 불가로 처리하였다.

미대(米代), 금은이전명문(金銀伊前明文), 구암동(狗岩洞) 외 3건, 망(望), 수입금(收入金), 입금부(入金簿), 입금(入金) 인부대, 기(記), 하기(下記), 십육년정월십이일(十六年正月十二日), 미분수금(未分授金), 구월구일회계(九月九日會計), [목수](/topic/목수)(木手)엔젱기, 공 외(恐外) 13건, 칙론(勅論) 등이 있다.
역사개바우[마을](/topic/마을)의 자치조직은 동수조직(洞首組織)이라고 하는 ‘노계(老契)’이다. 이 조직의 생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 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1850년인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는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계는 당고사의 수제관(首祭官)인 존위(尊位)를 지냈던 사람들로 구성된다. 노계의 성원 중에서 최고령자를 ‘[좌상](/topic/좌상)(座上)’이라 하고, 그다음의 고령자를 ‘부좌상(副座上)’이라고 부른다. 즉 노계는 마을 일의 실무를 책임졌던 좌상 집단인 것이다. 마을의 실무를 책임지는 담당자로는 유사(有司)와 동수(洞首)와 존위가 있다. 이들은 노계에서 선정하는데, 선정 기준은 마을의 정식 주민이어야 한다. 즉 이 마을로 새로 [이사](/topic/이사) 온 사람과 마을 안에서 [분가](/topic/분가)한 경우에도 입참례(入參禮)를 행해야 비로소 정식 주민으로서의 자격을 얻게 된다. 그 대상자는 유사에게 입참례를 행할 시기를 알려주면, 유사는 동수에게, 동수는 존위에게, 존위는 좌상에게 알려서 행사를 하게 된다. 그 방법은 [동사](/topic/동사)에서 노계의 성원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음료수를 준비해 놓고 “이 마을에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입참례를 행하지 않으면 미역짬의 분배를 받을 수 없고 마을회의에서도 발언권이 없다.

유사는 동네 일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으로 동임의 첫 단계이다. 동수는 유사를 지낸 사람 가운데 순서대로 맡으며, 7년 만에 동수를 맡은 사람도 있어서 그 시기는 일정치 않다. 유사를 거치지 않고 동수가 된 사람은 ‘와채동수’라고 하며, 이들은 실제 마을회의나 모든 경우에 유사보다도 낮게 취급된다. 존위는 수제관으로 고사를 주도한다. 이들의 임기는 모두 1년이다. 당고사의 기간에는 모든 주민에게 반말을 하고, 나이가 아[무리](/topic/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에게는 서로 맞절을 한다. 즉 주민들은 그를 주민대표로서 인정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고기잡이철은 중구고사를 지낸 뒤 시작되며, 동임을 맡은 사람은 고사를 지내기 전에는 바다에 나갈 수 없다. 예전에는 동임을 맡으면 6개월간 배를 타지 않을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즉 이 마을의 자치조직은 좌상을 정점으로 한 어른들의 집단인 노계가 있고, 그 밑에 다양한 마을 일들을 주관하는 존오와 동수, 유사가 있어서 주민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치조직에서 매년 행하는 마을의 다양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 다음의 문서들이다.
역사개바우[마을](/topic/마을)의 자치조직은 동수조직(洞首組織)이라고 하는 ‘노계(老契)’이다. 이 조직의 생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 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1850년인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는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계는 당고사의 수제관(首祭官)인 존위(尊位)를 지냈던 사람들로 구성된다. 노계의 성원 중에서 최고령자를 ‘[좌상](/topic/좌상)(座上)’이라 하고, 그다음의 고령자를 ‘부좌상(副座上)’이라고 부른다. 즉 노계는 마을 일의 실무를 책임졌던 좌상 집단인 것이다. 마을의 실무를 책임지는 담당자로는 유사(有司)와 동수(洞首)와 존위가 있다. 이들은 노계에서 선정하는데, 선정 기준은 마을의 정식 주민이어야 한다. 즉 이 마을로 새로 [이사](/topic/이사) 온 사람과 마을 안에서 [분가](/topic/분가)한 경우에도 입참례(入參禮)를 행해야 비로소 정식 주민으로서의 자격을 얻게 된다. 그 대상자는 유사에게 입참례를 행할 시기를 알려주면, 유사는 동수에게, 동수는 존위에게, 존위는 좌상에게 알려서 행사를 하게 된다. 그 방법은 [동사](/topic/동사)에서 노계의 성원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음료수를 준비해 놓고 “이 마을에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입참례를 행하지 않으면 미역짬의 분배를 받을 수 없고 마을회의에서도 발언권이 없다.

유사는 동네 일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으로 동임의 첫 단계이다. 동수는 유사를 지낸 사람 가운데 순서대로 맡으며, 7년 만에 동수를 맡은 사람도 있어서 그 시기는 일정치 않다. 유사를 거치지 않고 동수가 된 사람은 ‘와채동수’라고 하며, 이들은 실제 마을회의나 모든 경우에 유사보다도 낮게 취급된다. 존위는 수제관으로 고사를 주도한다. 이들의 임기는 모두 1년이다. 당고사의 기간에는 모든 주민에게 반말을 하고, 나이가 아[무리](/topic/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에게는 서로 맞절을 한다. 즉 주민들은 그를 주민대표로서 인정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고기잡이철은 중구고사를 지낸 뒤 시작되며, 동임을 맡은 사람은 고사를 지내기 전에는 바다에 나갈 수 없다. 예전에는 동임을 맡으면 6개월간 배를 타지 않을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즉 이 마을의 자치조직은 좌상을 정점으로 한 어른들의 집단인 노계가 있고, 그 밑에 다양한 마을 일들을 주관하는 존오와 동수, 유사가 있어서 주민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치조직에서 매년 행하는 마을의 다양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 다음의 문서들이다.
의의경북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 개바우(狗岩)[마을](/topic/마을)의 문서들은 마을의 역사 중에서 100여 년간 이 마을이 겪었을 다양한 생활사의 증거물들이다. 자료들은 모두 촌락사회의 이념적 중심이었던 ‘골매기제’라고 부르는 동제와 동제의 주체였던 주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100여 년 동안의 촌락사를 통해서 사회변동과 동제의 변화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 생성되고 변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제당은 동제가 마을의 역사를 반영하는 상징적 증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제당은 마을 입구의 안쪽에 위치한 [기와집](/topic/기와집) 형태의 박씨골맥이당, 마을 입구의 바깥쪽에 위치한 산기슭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김씨골맥이당, 마을 입구 바닷가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인 이씨골맥이당 등이다. 자연물을 제당으로 삼고 있는 경우는 일반적인 인공건축물 제당에 비해서 비교적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서, 두 자연물 제당의 대상신 성씨인 김씨와 이씨가 박씨에 비해서 더 선주민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마을에서 전승되는 “이씨 터전에 박씨 [골맥이](/topic/골맥이)”라는 향언(鄕言)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제당의 위치와 대상신의 성씨는 마을의 형성 배경 및 변화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86년 조사 당시 마을에서 주도권을 행세하는 밀양 박씨들이 박씨골맥이를 자신의 조상으로 이해하면서 [골맥이제](/topic/골맥이제)사를 주관하고 있었음이 확인될 정도로 상징물을 이용한 마을 정치의 변화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제당이 세 개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매년 3회에 걸친 당고사를 통하여 동제의 생태환경 적응의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즉 한 해의 풍농과 풍어 및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의 [정월고사](/topic/정월고사)와 7월 백중일을 전후하여 햅쌀이 났을 때 택일하여 추수감사제의 의미를 지니는 신미고사,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9월 중구일에 행하는 중구고사가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크게 행하는 의례는 중구고사이다. 3개의 제당에 모두 제의를 행하는데, 이것은 어촌마을의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제의는 [동사](/topic/동사)(洞舍)의 성주에 대한 제의를 합하며 네 번 행하는 것이다. 다른 두 고사에는 박씨골맥이와 성주에 대한 2개의 제의뿐이다. 박씨골맥이당이 의례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 제당이 다른 두 곳에 비해서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세 차례의 제의에서 마지막 절차는 동사(洞舍)에서의 성주고사이다. 이것은 세 개의 성씨 골맥이당에서 각각 행하던 의례가 주민들의 사회생활의 중심인 동사로 결집되어서 이들 의례가 사회통합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관](/topic/제관)은 유고(有故)한 사람과 입참례(入參禮)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자격이 없으며, 1년에 1명씩 능력과 행실에 따라서 노계(老契)에서 선정한 유사(有司)와 동수(洞首) 및 존위(尊位)가 담당한다. 이들 가운데 유고가 생기면 당년에는 자격이 상실된다.

이러한 자치조직은 서구문물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한국 농촌사회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자치조직의 조직과 운영 및 한국 촌락사회의 조직과 운영실태 및 변동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韓國東海沿岸の民俗祭儀 (金宅圭․益田庄三編著, 日韓漁村の比較硏究, 行踏社, 1991)
동해안어촌민속지 (김택규,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0)
[마을](/topic/마을) 공간분담과 당고사 (이기태, 지역문화사의 민속학적 인식, 민속원, 2004)
의의경북 울진군 평해읍 거일1리 개바우(狗岩)[마을](/topic/마을)의 문서들은 마을의 역사 중에서 100여 년간 이 마을이 겪었을 다양한 생활사의 증거물들이다. 자료들은 모두 촌락사회의 이념적 중심이었던 ‘골매기제’라고 부르는 동제와 동제의 주체였던 주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100여 년 동안의 촌락사를 통해서 사회변동과 동제의 변화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 생성되고 변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제당은 동제가 마을의 역사를 반영하는 상징적 증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제당은 마을 입구의 안쪽에 위치한 [기와집](/topic/기와집) 형태의 박씨골맥이당, 마을 입구의 바깥쪽에 위치한 산기슭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김씨골맥이당, 마을 입구 바닷가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인 이씨골맥이당 등이다. 자연물을 제당으로 삼고 있는 경우는 일반적인 인공건축물 제당에 비해서 비교적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서, 두 자연물 제당의 대상신 성씨인 김씨와 이씨가 박씨에 비해서 더 선주민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마을에서 전승되는 “이씨 터전에 박씨 [골맥이](/topic/골맥이)”라는 향언(鄕言)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다.

제당의 위치와 대상신의 성씨는 마을의 형성 배경 및 변화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86년 조사 당시 마을에서 주도권을 행세하는 밀양 박씨들이 박씨골맥이를 자신의 조상으로 이해하면서 [골맥이제](/topic/골맥이제)사를 주관하고 있었음이 확인될 정도로 상징물을 이용한 마을 정치의 변화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제당이 세 개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매년 3회에 걸친 당고사를 통하여 동제의 생태환경 적응의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즉 한 해의 풍농과 풍어 및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의 [정월고사](/topic/정월고사)와 7월 백중일을 전후하여 햅쌀이 났을 때 택일하여 추수감사제의 의미를 지니는 신미고사,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9월 중구일에 행하는 중구고사가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크게 행하는 의례는 중구고사이다. 3개의 제당에 모두 제의를 행하는데, 이것은 어촌마을의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제의는 [동사](/topic/동사)(洞舍)의 성주에 대한 제의를 합하며 네 번 행하는 것이다. 다른 두 고사에는 박씨골맥이와 성주에 대한 2개의 제의뿐이다. 박씨골맥이당이 의례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 제당이 다른 두 곳에 비해서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세 차례의 제의에서 마지막 절차는 동사(洞舍)에서의 성주고사이다. 이것은 세 개의 성씨 골맥이당에서 각각 행하던 의례가 주민들의 사회생활의 중심인 동사로 결집되어서 이들 의례가 사회통합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관](/topic/제관)은 유고(有故)한 사람과 입참례(入參禮)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자격이 없으며, 1년에 1명씩 능력과 행실에 따라서 노계(老契)에서 선정한 유사(有司)와 동수(洞首) 및 존위(尊位)가 담당한다. 이들 가운데 유고가 생기면 당년에는 자격이 상실된다.

이러한 자치조직은 서구문물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한국 농촌사회에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자치조직의 조직과 운영 및 한국 촌락사회의 조직과 운영실태 및 변동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韓國東海沿岸の民俗祭儀 (金宅圭․益田庄三編著, 日韓漁村の比較硏究, 行踏社, 1991)
동해안어촌민속지 (김택규,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0)
[마을](/topic/마을) 공간분담과 당고사 (이기태, 지역문화사의 민속학적 인식, 민속원, 2004)
고려대 석사논문소놀이굿과 무가ㆍ제석거리에 대하여최길성1965
문화재관리국양주 소놀이굿이두현1967
국립민속박물관큰무당 우옥주 유품양종승1995
문음사김금화무가집김금화1995
국립문화재연구소황해도평산소놀음굿양종승1998
화산문화양주소놀이굿김헌선2001
양주시양주소놀이굿김헌선 외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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