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알뜨기

한국무속신앙사전
용알뜨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이나 첫 용날[上辰日] 새벽 첫닭이 울 때 부인들이 [우물](/topic/우물)이나 샘에서 물을 길어오던 풍속. 가장 먼저 용알을 뜨면 그해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고, 이 물로 밥을 해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지역에 따라 용물뜨기, 용알줍기, [새알뜨기](/topic/새알뜨기), [복물뜨기](/topic/복물뜨기), [수복수](/topic/수복수)(壽福水)뜨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definition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이나 첫 용날[上辰日] 새벽 첫닭이 울 때 부인들이 [우물](/topic/우물)이나 샘에서 물을 길어오던 풍속. 가장 먼저 용알을 뜨면 그해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고, 이 물로 밥을 해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지역에 따라 용물뜨기, 용알줍기, [새알뜨기](/topic/새알뜨기), [복물뜨기](/topic/복물뜨기), [수복수](/topic/수복수)(壽福水)뜨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mp3Cnt
0
wkorname
김준기
정의[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이나 첫 용날[上辰日] 새벽 첫닭이 울 때 부인들이 [우물](/topic/우물)이나 샘에서 물을 길어오던 풍속. 가장 먼저 용알을 뜨면 그해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고, 이 물로 밥을 해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지역에 따라 용물뜨기, 용알줍기, [새알뜨기](/topic/새알뜨기), [복물뜨기](/topic/복물뜨기), [수복수](/topic/수복수)(壽福水)뜨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정의[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이나 첫 용날[上辰日] 새벽 첫닭이 울 때 부인들이 [우물](/topic/우물)이나 샘에서 물을 길어오던 풍속. 가장 먼저 용알을 뜨면 그해 운수가 대통한다고 하고, 이 물로 밥을 해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지역에 따라 용물뜨기, 용알줍기, [새알뜨기](/topic/새알뜨기), [복물뜨기](/topic/복물뜨기), [수복수](/topic/수복수)(壽福水)뜨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내용용알뜨기를 행하는 날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정초에 맞이하는 첫 용날에 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행해진다. 간혹 정월 열나흗날이라는 제보도 있는데, 이는 용알을 먼저 뜨면 그해의 운수가 좋다고 하므로 서로 먼저 물을 길어 오려는 경쟁이 치열해져서 시간이 점점 앞당겨진 결과로 보인다.

『[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 등 문헌에는 용알뜨기가 정월대보름날에 행하는 의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문인인 김려(金鑢, 1766~1822)가 정월대보름의 다양한 풍속을 노래한 25수 가운데에서 이 용알뜨기의 모습을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어 용알뜨기가 원래 정월대보름의 대표적인 여성의 민속의례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을](/topic/마을) 각시들 초록[명주](/topic/명주) 차림새로 / [담장](/topic/담장) 밖에 모여서 소곤거리는 말
동이 끼고 패 지어 냇물에 가서 / 용의 알 남실남실 떠 이고 오네.

민간의 속설에 따르면 하늘에 사는 용이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지상으로 내려와 [우물](/topic/우물) 속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따라서 물을 첫 번째 긷는 사람만이 물에 낳은 용의 알을 떠 갈 수 있고, 용의 알이 들어간 [정화수](/topic/정화수)로 밥을 해 먹으면 그해 운수가 대통하고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부녀자들은 서로 먼저 용알을 뜨려고 밤을 지새워 가며 우물을 지키거나 아예 [[두레](/topic/두레)박](/topic/두레박)줄을 잡고 버티는 부산스러움을 떨기도 하는 풍속이 생겼다. 그러나 용알은 첫닭이 울어야만 뜰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도 상당한 인내심과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이었다.

용알뜨기에서 말하는 용알에 대해서도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다양하다.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은 『[해동죽지](/topic/해동죽지)(海東竹枝)』의 명절풍속 가운데 ‘급용란(汲龍卵)’에서 “옛 풍속에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정화수를 긷는다. 물 위에 방울 거품이 있으면 이것을 용란(龍卵)이라 하고, 이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용의 알이 뜬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현장조사를 통해서도 우물이나 샘의 물을 바[가지](/topic/가지)에 따를 때 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이것을 용알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내용이 많아 예전부터 이 물방울을 용알이라고 보는 견해가 보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급용란(汲龍卵)’의 이어지는 시에서 “어여쁜 색시 희미한 달빛 비치는 새벽에 정화수를 길으니 / 돌우물 [난간](/topic/난간)머리에서 두레박틀 소리 울려 퍼진다. / 파뿌리 머리의 늙은 어머니 나직한 소리로 묻기를 / 용알 몇 개나 떴느냐?”라고 노래하고 있어 정초 가정신앙으로서 용알뜨기의 생생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바가지에 뜬 물방울이 많을수록 좋은 징조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용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차이가 있었다. 경기도 광명지역에서는 정초 용날 새벽에 달이 우물에 가득 비칠 때 가서 물을 떠 왔다는 경우도 있어 우물이나 바가지에 비친 달을 용알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용알뜨기에서 먼저 온 사람이 일단 용알을 뜨게 되면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용알을 뜰 수가 없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은 물을 떠갔다는 표시로 짚으로 똬리를 틀거나 지푸라기를 잘라서 우물에 넣어 두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다른 샘이나 우물로 용알을 뜨러 다녔다. 늦게 물을 길어 오면 여름에 농사일을 할 때 비를 자주 맞는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용알을 뜨러 갈 때 [오곡](/topic/오곡)밥이나 [약밥](/topic/약밥)을 뭉쳐 우물에 던져 넣는 경우도 있다. 이는 ‘용알뜨기’와 ‘용왕먹이기’가 결합된 형태이다. ‘용왕먹이기’ 역시 정월대보름이나 첫 용날에 강이나 우물에서 촛불을 밝히고 가족들의 평안과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여성들의 의례이다. 따라서 이 두 의례가 병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역에 따라 ‘용왕먹이기’는 생쌀이나 팥 등을 우물이나 강에 뿌리기도 한다.
내용용알뜨기를 행하는 날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정초에 맞이하는 첫 용날에 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행해진다. 간혹 정월 열나흗날이라는 제보도 있는데, 이는 용알을 먼저 뜨면 그해의 운수가 좋다고 하므로 서로 먼저 물을 길어 오려는 경쟁이 치열해져서 시간이 점점 앞당겨진 결과로 보인다.

『[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 등 문헌에는 용알뜨기가 정월대보름날에 행하는 의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문인인 김려(金鑢, 1766~1822)가 정월대보름의 다양한 풍속을 노래한 25수 가운데에서 이 용알뜨기의 모습을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어 용알뜨기가 원래 정월대보름의 대표적인 여성의 민속의례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을](/topic/마을) 각시들 초록[명주](/topic/명주) 차림새로 / [담장](/topic/담장) 밖에 모여서 소곤거리는 말
동이 끼고 패 지어 냇물에 가서 / 용의 알 남실남실 떠 이고 오네.

민간의 속설에 따르면 하늘에 사는 용이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지상으로 내려와 [우물](/topic/우물) 속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따라서 물을 첫 번째 긷는 사람만이 물에 낳은 용의 알을 떠 갈 수 있고, 용의 알이 들어간 [정화수](/topic/정화수)로 밥을 해 먹으면 그해 운수가 대통하고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부녀자들은 서로 먼저 용알을 뜨려고 밤을 지새워 가며 우물을 지키거나 아예 [[두레](/topic/두레)박](/topic/두레박)줄을 잡고 버티는 부산스러움을 떨기도 하는 풍속이 생겼다. 그러나 용알은 첫닭이 울어야만 뜰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도 상당한 인내심과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이었다.

용알뜨기에서 말하는 용알에 대해서도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다양하다.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은 『[해동죽지](/topic/해동죽지)(海東竹枝)』의 명절풍속 가운데 ‘급용란(汲龍卵)’에서 “옛 풍속에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정화수를 긷는다. 물 위에 방울 거품이 있으면 이것을 용란(龍卵)이라 하고, 이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용의 알이 뜬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현장조사를 통해서도 우물이나 샘의 물을 바[가지](/topic/가지)에 따를 때 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이것을 용알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내용이 많아 예전부터 이 물방울을 용알이라고 보는 견해가 보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급용란(汲龍卵)’의 이어지는 시에서 “어여쁜 색시 희미한 달빛 비치는 새벽에 정화수를 길으니 / 돌우물 [난간](/topic/난간)머리에서 두레박틀 소리 울려 퍼진다. / 파뿌리 머리의 늙은 어머니 나직한 소리로 묻기를 / 용알 몇 개나 떴느냐?”라고 노래하고 있어 정초 가정신앙으로서 용알뜨기의 생생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바가지에 뜬 물방울이 많을수록 좋은 징조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용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차이가 있었다. 경기도 광명지역에서는 정초 용날 새벽에 달이 우물에 가득 비칠 때 가서 물을 떠 왔다는 경우도 있어 우물이나 바가지에 비친 달을 용알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용알뜨기에서 먼저 온 사람이 일단 용알을 뜨게 되면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용알을 뜰 수가 없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은 물을 떠갔다는 표시로 짚으로 똬리를 틀거나 지푸라기를 잘라서 우물에 넣어 두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다른 샘이나 우물로 용알을 뜨러 다녔다. 늦게 물을 길어 오면 여름에 농사일을 할 때 비를 자주 맞는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용알을 뜨러 갈 때 [오곡](/topic/오곡)밥이나 [약밥](/topic/약밥)을 뭉쳐 우물에 던져 넣는 경우도 있다. 이는 ‘용알뜨기’와 ‘용왕먹이기’가 결합된 형태이다. ‘용왕먹이기’ 역시 정월대보름이나 첫 용날에 강이나 우물에서 촛불을 밝히고 가족들의 평안과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여성들의 의례이다. 따라서 이 두 의례가 병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역에 따라 ‘용왕먹이기’는 생쌀이나 팥 등을 우물이나 강에 뿌리기도 한다.
역사용은 민간신앙에서 물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우물](/topic/우물), 샘, 하천, 바다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거주한다고 믿어진다. 신라의 국모인 알영이 알천에 사는 계룡의 옆구리에서 출생했다는 혁거세신화나 용의 화상을 그리고 비를 빌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진평왕 조의 기록을 볼 때 용이 고대사회부터 수신으로 신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현종 조에는 흙으로 용의 상을 만들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기우제는 조선시대에도 토룡제(土龍祭)라 불리며 성행하였고, 현재도 정초에 [용왕제](/topic/용왕제)를 지내는 지역이 많으므로 용신신앙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유래 깊은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용물뜨기의 정확한 기원 연대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용신신앙에 기대어 가정의 무병과 풍농을 기원하는 기본적인 신앙 행위이고,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보편적인 민간의례이기 때문에 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민간의 풍속이 본격적으로 기록된 조선시대 후기에 요즘과 동일한 형태의 용알뜨기가 민간층에서 성행하였음은 문헌자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상원](/topic/상원) 조에는 “이날 꼭두새벽에 [정화수](/topic/정화수) 한 그릇을 긷는 것을 ‘노룡자(撈龍子)’, 깨끗한 종이에 흰 밥을 싸서 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시](/topic/어부시)(魚鳧施)’라고 한다.”고 하여, 용알뜨기와 [어부심](/topic/어부심) 등 용왕을 모시는 민간층의 의례가 당시에도 성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상원 조에도 “황해도와 평안도 풍속에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topic/가지)를 가지고 서로 알을 다투어 정화수(井華水)를 길어 온다. 이것을 ‘노룡란(撈龍卵)’이라고 한다. 맨 먼저 긷는 사람이 그해의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하여 정화수 뜨기가 가정마다 행해졌으며 경쟁 의례로서의 특징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룡자(撈龍子)’, ‘노룡란(撈龍卵)’, ‘급용란(汲龍卵)’ 등 문헌에 나타난 명칭을 통해 볼 때 조선시대 후기 당시의 명칭도 ‘용알뜨기’, ‘용알줍기’ 등과 같은 오늘날의 명칭과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용은 민간신앙에서 물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우물](/topic/우물), 샘, 하천, 바다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거주한다고 믿어진다. 신라의 국모인 알영이 알천에 사는 계룡의 옆구리에서 출생했다는 혁거세신화나 용의 화상을 그리고 비를 빌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진평왕 조의 기록을 볼 때 용이 고대사회부터 수신으로 신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현종 조에는 흙으로 용의 상을 만들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기우제는 조선시대에도 토룡제(土龍祭)라 불리며 성행하였고, 현재도 정초에 [용왕제](/topic/용왕제)를 지내는 지역이 많으므로 용신신앙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유래 깊은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용물뜨기의 정확한 기원 연대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용신신앙에 기대어 가정의 무병과 풍농을 기원하는 기본적인 신앙 행위이고,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보편적인 민간의례이기 때문에 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민간의 풍속이 본격적으로 기록된 조선시대 후기에 요즘과 동일한 형태의 용알뜨기가 민간층에서 성행하였음은 문헌자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상원](/topic/상원) 조에는 “이날 꼭두새벽에 [정화수](/topic/정화수) 한 그릇을 긷는 것을 ‘노룡자(撈龍子)’, 깨끗한 종이에 흰 밥을 싸서 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시](/topic/어부시)(魚鳧施)’라고 한다.”고 하여, 용알뜨기와 [어부심](/topic/어부심) 등 용왕을 모시는 민간층의 의례가 당시에도 성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상원 조에도 “황해도와 평안도 풍속에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topic/가지)를 가지고 서로 알을 다투어 정화수(井華水)를 길어 온다. 이것을 ‘노룡란(撈龍卵)’이라고 한다. 맨 먼저 긷는 사람이 그해의 농사를 잘 짓는다.”고 하여 정화수 뜨기가 가정마다 행해졌으며 경쟁 의례로서의 특징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룡자(撈龍子)’, ‘노룡란(撈龍卵)’, ‘급용란(汲龍卵)’ 등 문헌에 나타난 명칭을 통해 볼 때 조선시대 후기 당시의 명칭도 ‘용알뜨기’, ‘용알줍기’ 등과 같은 오늘날의 명칭과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사례‘용알뜨기’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정월의 여성민속이고, 형태나 절차 역시 대동소이한 편이다. 지역별로 대표적인 ‘용알뜨기’의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동두천지역에서는 보름날 주부들은 일찍 일어나 [우물](/topic/우물)에 가서 용알을 떠 왔다. 물을 뜨고 난 뒤에는 짚을 동그랗게 말아서 띄워 두고 온다. 정월 열나흗날 밤 12시가 넘으면 서로 먼저 물을 길어 가려고 서둘렀다. 대보름날에 늦게 물을 길어 오면 농사일을 할 때 비를 맞는다고 한다. 이렇게 새벽 일찍 길어 온 물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을 해 먹고 밤에는 [섬만두](/topic/섬만두)를 해 먹었다. 섬만두는 벼가 많이 열려 풍년이 되어 쌀섬이 많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평상](/topic/평상)시에 만드는 만두보다 속이 꽉 차게 소를 넣어 크게 만든다.

양주지역에서는 밤에 달이 뜨면 우물에 가서 ‘용알 뜬다’고 하여 물을 길어 왔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 떠 온 이 물로 대보름날 아침밥을 지어서 먹었다. 용알을 뜨지 못하고 대보름날 아침에서야 우물에서 물을 떠 오면 일 년 내내 소나기를 자주 맞는다고 한다.

강원도 화천지역에서는 ‘용알떠오기’라고 하며, 정월 열나흗날과 대보름날 아침에 동네 우물에서 일찍 물을 길어 온다. 우물은 세 곳의 우물을 떠 오면 좋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경지역에서는 대보름날 새벽에 여성들은 [마을](/topic/마을)의 공동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topic/가지)를 떠 온다. 이날 새벽에 마을 공동우물 세 곳에서 먼저 물을 길어 가면 그 해 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남보다 먼저 우물을 떠가려고 한다. 이것을 ‘용물뜨기’라고 한다. 원래는 열나흗날 자정에 우물을 길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남보다 먼저 길어 가기 위해 자정이 채 되기도 전에 우물물을 길어 가기 일쑤였고 점차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한다.

충청북도 제천지역에서는 ‘용물’이나 ‘용알뜨기’라고 하며, 정월 열나흗날에 [찰밥](/topic/찰밥)을 먹고 짚으로 동그란 똬리를 만든다. 예전에는 대보름날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가지고 간 똬리를 우물에 넣고 “용알뜨자.”를 세 번하고 우물물 한 바가지를 떠 가지고 와 대보름날 아침밥을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지역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남보다 먼저 떠오는 우물물을 ‘행운의 물’이라고 하여 부녀자들이 새벽 일찍 우물물을 떠 온다. 이 물을 가족들이 마시기도 하고 장광([장독대](/topic/장독대))에 올려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특징 및 의의용의 고유어는 ‘미르’이다. 어원적으로도 물의 고어 ‘믈’과 연관성이 짙다. 따라 용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전통적 물의 신[水神]임이 분명하다. 이 용에 대한 신앙은 물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심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농경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전통적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이나 가정신앙에서 용왕신앙과 관계있는 의례가 유난히 많았다. ‘용알뜨기’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용알뜨기’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여성들이 물에서 용알을 떠 오는 의례로서 보름달, 물, 알, 여성이라는 생명과 풍요의 원형적 상징으로 이루어진 민속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대의 주술원리와 상통하는 것이어서 ‘용알뜨기’의 유래가 자못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용알뜨기’는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인 동시에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보편적 여성민속이라는 점에서 가정신앙에 속하기도 한다. ‘용알뜨기’ 신앙의 대상이 되는 용왕은 주로 [마을](/topic/마을)의 [우물](/topic/우물)이나 샘, 강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분명 집 밖에 존재하는 신격이지만 마을신으로서 모셔지는 신격이라기보다 [가신](/topic/가신)(家神)으로서 모셔지는 성격이 짙었다. ‘용알뜨기’의 주체가 집안의 할머니나 어머니였고, 그 내용 또한 가족들의 평안과 가정 단위의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집 안에 존재하는 다른 가신(家神)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용알뜨기’는 용이 낳은 알을 먼저 떠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잘되게 해 달라고, 일 년 열두 달 신수가 좋으라고 비는 기복신앙으로서의 민속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정월대보름 이후에는 농사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근면함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남보다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가 [정화수](/topic/정화수)를 뜨며, 가족과 집안일을 생각하면서 [비손](/topic/비손)하는 ‘용알뜨기’야말로 우리 어머니들의 부지런함과 가족에 대한 정성 및 사랑을 잘 나타내 주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한국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최상수, 고려서적, 1960)
한국풍속지 (양재연․임동권․장덕순․최길성 공편, 을유문화사, 1971)
한국민속대관 4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81)
경기민속지 Ⅲ-세시풍속, 놀이 (경기도박물관, 2000)
洌陽歲時記, 東國歲時記, 海東竹枝, 강원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충청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경상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속악유희 (최영년, 범우사, 2002)
전라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조선대세시기 Ⅱ (국립민속박물관, 2005)
한국의 가정신앙-상․하 (김명자 외, 민속원, 2005)
지역사례‘용알뜨기’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정월의 여성민속이고, 형태나 절차 역시 대동소이한 편이다. 지역별로 대표적인 ‘용알뜨기’의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동두천지역에서는 보름날 주부들은 일찍 일어나 [우물](/topic/우물)에 가서 용알을 떠 왔다. 물을 뜨고 난 뒤에는 짚을 동그랗게 말아서 띄워 두고 온다. 정월 열나흗날 밤 12시가 넘으면 서로 먼저 물을 길어 가려고 서둘렀다. 대보름날에 늦게 물을 길어 오면 농사일을 할 때 비를 맞는다고 한다. 이렇게 새벽 일찍 길어 온 물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쌀밥을 해 먹고 밤에는 [섬만두](/topic/섬만두)를 해 먹었다. 섬만두는 벼가 많이 열려 풍년이 되어 쌀섬이 많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평상](/topic/평상)시에 만드는 만두보다 속이 꽉 차게 소를 넣어 크게 만든다.

양주지역에서는 밤에 달이 뜨면 우물에 가서 ‘용알 뜬다’고 하여 물을 길어 왔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 떠 온 이 물로 대보름날 아침밥을 지어서 먹었다. 용알을 뜨지 못하고 대보름날 아침에서야 우물에서 물을 떠 오면 일 년 내내 소나기를 자주 맞는다고 한다.

강원도 화천지역에서는 ‘용알떠오기’라고 하며, 정월 열나흗날과 대보름날 아침에 동네 우물에서 일찍 물을 길어 온다. 우물은 세 곳의 우물을 떠 오면 좋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경지역에서는 대보름날 새벽에 여성들은 [마을](/topic/마을)의 공동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topic/가지)를 떠 온다. 이날 새벽에 마을 공동우물 세 곳에서 먼저 물을 길어 가면 그 해 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남보다 먼저 우물을 떠가려고 한다. 이것을 ‘용물뜨기’라고 한다. 원래는 열나흗날 자정에 우물을 길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남보다 먼저 길어 가기 위해 자정이 채 되기도 전에 우물물을 길어 가기 일쑤였고 점차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한다.

충청북도 제천지역에서는 ‘용물’이나 ‘용알뜨기’라고 하며, 정월 열나흗날에 [찰밥](/topic/찰밥)을 먹고 짚으로 동그란 똬리를 만든다. 예전에는 대보름날 새벽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가지고 간 똬리를 우물에 넣고 “용알뜨자.”를 세 번하고 우물물 한 바가지를 떠 가지고 와 대보름날 아침밥을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지역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남보다 먼저 떠오는 우물물을 ‘행운의 물’이라고 하여 부녀자들이 새벽 일찍 우물물을 떠 온다. 이 물을 가족들이 마시기도 하고 장광([장독대](/topic/장독대))에 올려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특징 및 의의용의 고유어는 ‘미르’이다. 어원적으로도 물의 고어 ‘믈’과 연관성이 짙다. 따라 용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의 전통적 물의 신[水神]임이 분명하다. 이 용에 대한 신앙은 물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심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농경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전통적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이나 가정신앙에서 용왕신앙과 관계있는 의례가 유난히 많았다. ‘용알뜨기’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용알뜨기’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여성들이 물에서 용알을 떠 오는 의례로서 보름달, 물, 알, 여성이라는 생명과 풍요의 원형적 상징으로 이루어진 민속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대의 주술원리와 상통하는 것이어서 ‘용알뜨기’의 유래가 자못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용알뜨기’는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인 동시에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보편적 여성민속이라는 점에서 가정신앙에 속하기도 한다. ‘용알뜨기’ 신앙의 대상이 되는 용왕은 주로 [마을](/topic/마을)의 [우물](/topic/우물)이나 샘, 강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분명 집 밖에 존재하는 신격이지만 마을신으로서 모셔지는 신격이라기보다 [가신](/topic/가신)(家神)으로서 모셔지는 성격이 짙었다. ‘용알뜨기’의 주체가 집안의 할머니나 어머니였고, 그 내용 또한 가족들의 평안과 가정 단위의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집 안에 존재하는 다른 가신(家神)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용알뜨기’는 용이 낳은 알을 먼저 떠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잘되게 해 달라고, 일 년 열두 달 신수가 좋으라고 비는 기복신앙으로서의 민속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정월대보름 이후에는 농사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근면함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남보다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가 [정화수](/topic/정화수)를 뜨며, 가족과 집안일을 생각하면서 [비손](/topic/비손)하는 ‘용알뜨기’야말로 우리 어머니들의 부지런함과 가족에 대한 정성 및 사랑을 잘 나타내 주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한국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최상수, 고려서적, 1960)
한국풍속지 (양재연․임동권․장덕순․최길성 공편, 을유문화사, 1971)
한국민속대관 4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81)
경기민속지 Ⅲ-세시풍속, 놀이 (경기도박물관, 2000)
洌陽歲時記, 東國歲時記, 海東竹枝, 강원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충청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경상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속악유희 (최영년, 범우사, 2002)
전라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조선대세시기 Ⅱ (국립민속박물관, 2005)
한국의 가정신앙-상․하 (김명자 외, 민속원, 2005)
국립민속박물관ㆍ전라남도진도무속현지조사-채씨자매를 중심으로이종철ㆍ조경만ㆍ이정란ㆍ박주언ㆍ정종수ㆍ황루시1988
뿌리깊은나무“에이 짠한 사람!” 내가 나보고 그라요박주언 편집1991
화산문화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황루시2001
비교민속학회서울굿 열두달의 치성의례와 경제성김헌선2004
계명대학교출판부진도씻김굿연구박미경2004
국립남도국악원진도 단골 채정례 구술 채록 연구 : 채정례의 삶과 예술이숙희 편집2005
한국무속학회서울굿의 다양성과 구조김헌선2006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서울 무속 죽음의례의 유형과 구조적 상관성 연구김헌선2007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동해안 굿의 전승과 변화윤동환2007
정월 대보름 용왕에게 올리는 촛불
13740
정월 대보름 용왕에게 올리는 촛불
장독에 떠놓은 정화수
13739
장독에 떠놓은 정화수
정월 대보름 용왕에게 올리는 촛불
13740
정월 대보름 용왕에게 올리는 촛불
장독에 떠놓은 정화수
13739
장독에 떠놓은 정화수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