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신라의 [장군](/topic/장군)인 김서현(金舒玄)과 그의 부인인 만명(萬明)을 그린 그림. 이 그림은 양산 신기리 당집에 모셨던 초상화로 20세기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5월 3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의 취서사(鷲棲祠)에서 보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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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유승훈 |
정의 | 신라의 [장군](/topic/장군)인 김서현(金舒玄)과 그의 부인인 만명(萬明)을 그린 그림. 이 그림은 양산 신기리 당집에 모셨던 초상화로 20세기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5월 3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의 취서사(鷲棲祠)에서 보관하고 있다. | 내용 | 양산지산리부부상은 취서사에 보관되어 있다. 취서사는 신라의 각간(角干)인 김무력과 김서현 [장군](/topic/장군)의 [위패](/topic/위패)를 모신 [사당](/topic/사당)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김서현 장군과 만명 부인은 김유신 장군의 부모이다. 김서현은 진평왕 때의 장군으로 고구려 낭비성을 함락시키는 등 삼국통일의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벼슬이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과 삽양주총관(歃良州摠管)에 이르렀다. 만명 부인은 진흥왕의 질녀로서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김서현과 눈이 맞아 야합을 하였다고 한다. 이 만명은 무속에서 ‘말명’이라 부르며, 말명신은 [무조신](/topic/무조신)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朝鮮巫俗の硏究)」에서는 “여자의 죽은 영혼을 말명이라 부르며, 무녀의 죽은 영혼은 만신말명이라 칭한다. 이 말명은 본래 김유신의 어머니 이름이었던 것을 나중에 무속에서 신격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1930년대에 쓰인 양산 지역의 관련 [사료](/topic/사료)에서는 양산지산리부부상으로 보이는 초상화를 언급하고 있다. 『교남지(嶠南誌)』 권26 능묘조(陵墓條)에서는 북정리에 있는 부부총(夫婦塚)을 거론하면서 그 위에 신라시대에 전사한 김 장군의 초상이 있다고 하였다. 부부총은 1920년 일제가 북정동 고분군을 발굴하면서 부부라고 생각되는 유해(遺骸)가 나란히 출토되면서 붙여진 것이다. 발굴된 유물로 보았을 때 진골 계급 이상의 귀족 무덤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편 구한말 유학자인 묵헌(默軒) 박천수가 쓴 ‘북산성신사중수기’에 따르면, [마을](/topic/마을)주민들의 뜻을 모아 김장군 사당을 새로 수리하였으며, 이곳에는 초상화가 엄숙하게 [자리](/topic/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다. 양산지산리부부상은 원래 마을의 당집에 모셔졌던 초상으로서 신앙물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무속인이었던 황기준이 이를 모시고 있다가 1984년 김해 김씨 가락종친회에 인수를 한 것이다. 황기준의 동생 황당룡에 의하면 1926년 경 자신의 집안이 마을수호신을 모시던 신기리 당집으로 [이사](/topic/이사)와 살게 되었다. 점을 봐주던 어머니는 당집에 있는 이 초상화를 모시고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당집은 당시 양산의 거부(巨富)였던 배영복이 지어준 것이다. 배영복은 당집을 지으면서 화가를 불러 부부상 2점을 그리게 하였다. 그림은 각각 성황사와 당집에 모시도록 했다고 한다. 이처럼 양산지산리부부상은 마을을 수호하는 당집의 부부신으로서 오랫동안 모셔지다가 1980년대 들어서 김해 김씨 가락종친회의 사당에 이전되어 [봉안](/topic/봉안)된 것이다. | 참고문헌 | 嶠南誌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옮김, 동문선, 1991) 양산 금조총·부부총 (동아대학교박물관, 1991) 묵헌유고 (박춘구, 경모재, 1992) 한국무신도 (김태곤, 열화당, 1993) 취서사지 (양산문화원, 2008) 성황사 및 그 사신에 대한 조사연구 (양산문화원, 2009) | 형태 | 김서현 [장군](/topic/장군) 그림은 크기가 세로 78.3㎝, 가로 56.1㎝로 종이에 채색한 것이다. 상 위에 앉아 있는 김서현 장군을 중심으로 [병풍](/topic/병풍)이 사방으로 감싸고 있다. 붉은색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있으며, 왼쪽 어깨 위로 화살이 드러나 있다. 왼손에는 환도(還刀)를 쥐고 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가지](/topic/가지)런히 두었다. 갑옷은 동그란 두정(頭釘)들이 달린 두정갑으로서 조선 후기 무인들이 입은 보편적인 양식이다. 그림의 좌측 상단에는 ‘大都督○○玄之像’이란 글씨가 쓰여 있다. 만명 부인 그림의 크기는 장군 그림과 동일하며, 좌측 상단에 ‘蘇判夫人萬明之像’이라는 글씨가 있다. 가르마를 단정히 탄 만명 부인은 붉은색 끝동을 댄 파란 반회장[저고리](/topic/저고리)에 붉은색 [치마](/topic/치마)를 입고 있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 가슴을 가리기 위한 허리띠를 차고 있으며, 왼쪽으로 [노리개](/topic/노리개)를 달았다. 병풍이 만명 부인을 감싸고 있으며, [문갑](/topic/문갑)과 [경대](/topic/경대), 상자와 태극문양의 [베개](/topic/베개) 등이 함께 그려져 있다. 전반적으로 [민화](/topic/민화)적 색채에 불화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다. 인물의 복식 및 그림의 양식 등으로 보았을 때 조선 후기의 화풍을 이어받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채색이 벗겨지고 훼손이 된 상태이며, 문화재 지정을 받기 전인 2000년 경에 보수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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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문화 | 양주소놀이굿 | 김헌선 | 2001 | 양주시 | 양주소놀이굿 | 김헌선 외 |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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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지산리부부상 | 64695 양산지산리부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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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지산리부부상 | 64694 양산지산리부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