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수내리[마을](/topic/마을)의 수호신인 산신과 당산신을 모신 제당. 이 마을에서는 고당할미당을 ‘고당할미집’이라고 칭한다. 제당 안에는 산신과 당산신의 신체身體)인 신석(神石) 두 위를 [봉안](/topic/봉안)하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막아 주는 거리당산이 있다, 거리당산에는 [돌탑](/topic/돌탑)과 나무 끝에 오리 형상을 붙인 거릿대를 모시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는 거리당산을 달리 ‘[거리제](/topic/거리제)당’ 또는 ‘탑거리’라고 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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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황경숙 |
정의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수내리[마을](/topic/마을)의 수호신인 산신과 당산신을 모신 제당. 이 마을에서는 고당할미당을 ‘고당할미집’이라고 칭한다. 제당 안에는 산신과 당산신의 신체身體)인 신석(神石) 두 위를 [봉안](/topic/봉안)하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막아 주는 거리당산이 있다, 거리당산에는 [돌탑](/topic/돌탑)과 나무 끝에 오리 형상을 붙인 거릿대를 모시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는 거리당산을 달리 ‘[거리제](/topic/거리제)당’ 또는 ‘탑거리’라고 칭한다. | 정의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수내리[마을](/topic/마을)의 수호신인 산신과 당산신을 모신 제당. 이 마을에서는 고당할미당을 ‘고당할미집’이라고 칭한다. 제당 안에는 산신과 당산신의 신체身體)인 신석(神石) 두 위를 [봉안](/topic/봉안)하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막아 주는 거리당산이 있다, 거리당산에는 [돌탑](/topic/돌탑)과 나무 끝에 오리 형상을 붙인 거릿대를 모시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는 거리당산을 달리 ‘[거리제](/topic/거리제)당’ 또는 ‘탑거리’라고 칭한다. | 내용 | 과거 이 [마을](/topic/마을)에 있던 고당할미당의 내부 모습과당산제의 제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당할미당의 내부에는 중앙에 시멘트로 만든 제단(앞면 84㎝, 옆면 36㎝, 높이 33㎝)이 있다. 제단 위에는 산신할배의 신체인 자연석(높이 32㎝, 지름 7㎝)과 고당할매의 신체인 자연석(높이 31㎝, 지름 2㎝)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 마을에서는 매해 한 차례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당산제를 모셨다. 당산제를 모시는 제주를 [헌관](/topic/헌관)(獻官)이라 칭한다. 제주는 정월 초이렛날에 마을 노인들이 모여 마을주민 가운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부정이 없고 깨끗한 이를 가려 선정한다. 이때 제주를 도우는 집사를 함께 선정한다. 제주로 선정된 이는 선정된 날로부터 부정을 가리는 금기를행한다. 금기는제를 지낸 후 한 달 동안 지속한다. 당산제의 제의 절차는 산신제-당산제-거릿대제 순이다. 예전에는 산신제와 당산제를 모시는 제의 장소가 달랐으나 제당에산신과 당산신을 함께 모신 뒤로는 제당에서 함께 제를 모신다. 제의에 진설하는 제물의 종류와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topic/기제사)와 동일하다. 단 제의를 마친 뒤에는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소원성취 및 풍농을 기원하며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정해진 형식이 달리 없어 제주에 따라 각성바지로 소지를 올리기도 하고 한 차례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당산제를 모신 뒤에는 [거리제](/topic/거리제)당으로 가 거릿대제를 지낸다. 거릿대제에는 술과 과일 등 제물을 간소하게 차린다. 거릿대제 제의 방식은 간소하여 제주가 [단작](/topic/단작) 재배 후 마을로들어오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막아 주고 그해 마을이 평안하고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이령수를 외는 것으로 마[무리](/topic/무리)한다. 거릿대제에서는 소지를 올리지 않는다. 제의가 끝나면 제물을 제주의 집으로 옮겨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음복](/topic/음복)한다. 이때 집안에 출산 또는 초상이 있거나 기타 부정이 있는 사람은 참석하지 않는다. | 참고문헌 | 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내용 | 과거 이 [마을](/topic/마을)에 있던 고당할미당의 내부 모습과당산제의 제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당할미당의 내부에는 중앙에 시멘트로 만든 제단(앞면 84㎝, 옆면 36㎝, 높이 33㎝)이 있다. 제단 위에는 산신할배의 신체인 자연석(높이 32㎝, 지름 7㎝)과 고당할매의 신체인 자연석(높이 31㎝, 지름 2㎝)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 마을에서는 매해 한 차례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당산제를 모셨다. 당산제를 모시는 제주를 [헌관](/topic/헌관)(獻官)이라 칭한다. 제주는 정월 초이렛날에 마을 노인들이 모여 마을주민 가운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부정이 없고 깨끗한 이를 가려 선정한다. 이때 제주를 도우는 집사를 함께 선정한다. 제주로 선정된 이는 선정된 날로부터 부정을 가리는 금기를행한다. 금기는제를 지낸 후 한 달 동안 지속한다. 당산제의 제의 절차는 산신제-당산제-거릿대제 순이다. 예전에는 산신제와 당산제를 모시는 제의 장소가 달랐으나 제당에산신과 당산신을 함께 모신 뒤로는 제당에서 함께 제를 모신다. 제의에 진설하는 제물의 종류와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topic/기제사)와 동일하다. 단 제의를 마친 뒤에는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소원성취 및 풍농을 기원하며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정해진 형식이 달리 없어 제주에 따라 각성바지로 소지를 올리기도 하고 한 차례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당산제를 모신 뒤에는 [거리제](/topic/거리제)당으로 가 거릿대제를 지낸다. 거릿대제에는 술과 과일 등 제물을 간소하게 차린다. 거릿대제 제의 방식은 간소하여 제주가 [단작](/topic/단작) 재배 후 마을로들어오는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막아 주고 그해 마을이 평안하고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이령수를 외는 것으로 마[무리](/topic/무리)한다. 거릿대제에서는 소지를 올리지 않는다. 제의가 끝나면 제물을 제주의 집으로 옮겨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음복](/topic/음복)한다. 이때 집안에 출산 또는 초상이 있거나 기타 부정이 있는 사람은 참석하지 않는다. | 참고문헌 | 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역사 | 당산제를 지내게 된 연원과 제당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관련 문헌자료는 물론 구전자료도 전무한 실정이다. 고당할미당은 1980년대에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건립된 것으로 이후 시대적 추이에 따라 당산제를 거행하지 않게 되면서 제당이 방치되어 지금은 제당이 있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마을에서는 1984년부터 당산제를 모시지 않았다고 한다. 당산제를 모시지 않게 된 연유는 외지인의 이주가 많아지고 기독교 신자가 늘면서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으 부산 수영구 수영동, 2008.6.8, 배도식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당할미당은 당산제를 모시지 않게 된 이후로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평소에도 주민이 자주 왕래하지 않은 탓에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 이로인해 점차적으로 제당이 허물어져 지금은 제당에 모셔둔 신체 역시 건물 잔해에 묻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역사 | 당산제를 지내게 된 연원과 제당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관련 문헌자료는 물론 구전자료도 전무한 실정이다. 고당할미당은 1980년대에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건립된 것으로 이후 시대적 추이에 따라 당산제를 거행하지 않게 되면서 제당이 방치되어 지금은 제당이 있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마을에서는 1984년부터 당산제를 모시지 않았다고 한다. 당산제를 모시지 않게 된 연유는 외지인의 이주가 많아지고 기독교 신자가 늘면서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으 부산 수영구 수영동, 2008.6.8, 배도식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당할미당은 당산제를 모시지 않게 된 이후로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평소에도 주민이 자주 왕래하지 않은 탓에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다. 이로인해 점차적으로 제당이 허물어져 지금은 제당에 모셔둔 신체 역시 건물 잔해에 묻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형태 | 수내리[마을](/topic/마을) 산기슭에 위치한 고당할미당은 1980년대에 건립되었다. 제당의 규모는 앞면 242㎝, 옆면 183㎝, 높이 133㎝이다. 형태는 맞배[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에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구조물이며, 제당 문은 [여닫이](/topic/여닫이) 두 짝의 함석문이다. 제당 주위에는 소나무 숲이 있으며, 제당 뒤로 큰 바위가 놓여 있을 뿐 [담장](/topic/담장)은 따로 없다. 마을 어귀에 위치한 [거리제](/topic/거리제)당에는 자연석을 깔대기형으로 쌓아 올린 [돌탑](/topic/돌탑)이 있다. 돌탑의 규모는 기저 직경이 90㎝, 높이 130㎝ 이다. 거리제당에는 이 밖에 매해 당산제를 지낼 때 나무 끝에 오리 형상을 조각해 붙인 거릿대를 돌탑 옆에 세워 두기도 한다. 거리제당 주위에는 8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 | 형태 | 수내리[마을](/topic/마을) 산기슭에 위치한 고당할미당은 1980년대에 건립되었다. 제당의 규모는 앞면 242㎝, 옆면 183㎝, 높이 133㎝이다. 형태는 맞배[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에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한 구조물이며, 제당 문은 [여닫이](/topic/여닫이) 두 짝의 함석문이다. 제당 주위에는 소나무 숲이 있으며, 제당 뒤로 큰 바위가 놓여 있을 뿐 [담장](/topic/담장)은 따로 없다. 마을 어귀에 위치한 [거리제](/topic/거리제)당에는 자연석을 깔대기형으로 쌓아 올린 [돌탑](/topic/돌탑)이 있다. 돌탑의 규모는 기저 직경이 90㎝, 높이 130㎝ 이다. 거리제당에는 이 밖에 매해 당산제를 지낼 때 나무 끝에 오리 형상을 조각해 붙인 거릿대를 돌탑 옆에 세워 두기도 한다. 거리제당 주위에는 80여 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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