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섣달그믐에 행하는 제의. 일명 잔등(盞燈)이라고 한다. 섣달 그믐날밤 온 집안에 불을 밝히는 것을 수세(守歲)라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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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김선풍 |
정의 |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섣달그믐에 행하는 제의. 일명 잔등(盞燈)이라고 한다. 섣달 그믐날밤 온 집안에 불을 밝히는 것을 수세(守歲)라고도 한다. | 정의 |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섣달그믐에 행하는 제의. 일명 잔등(盞燈)이라고 한다. 섣달 그믐날밤 온 집안에 불을 밝히는 것을 수세(守歲)라고도 한다. | 역사 | 한 해를 마감하는 섣달그믐에는 수세(守歲)를 비롯하여 묵은해 세배, 그믐 차례, 청단(靑壇), 연종포(年終砲), 등잔 팔기[賣燈盞], 대나(大儺) 등 여러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민간에서는 섣달그믐이 지나면 새해의 신인 세신(歲神)이 하늘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믐날과 정월 초하룻날에는 조상들이 오시기 때문에 이들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불을 밝혀둔다고 믿는 속신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세신을 맞이하는 제의적 장치가 수세나 불밝히기이다. 수세 풍속이나 불밝히기는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이 풍속은 도교적인 경신신앙(庚申信仰)의 [경신수야](/topic/경신수야)(庚申守夜) 유습에서 내려왔다고 보는 설이 있다. 즉 60일에 한 번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형체 없이 사람의 몸에 기생하고 있다는 삼시(三尸) 또는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上帝)께 그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 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를 막고 천수(天壽)를 다하려고 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도교적 장생법인 경신수야 풍속은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 나타나 있다. 최고의 기록으로는 고려 1265년(원종 6) 4월 경신일에 태자가 밤새워 연회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자지 않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후 연회를 베풀고 이런 의식이 성행되었으나 조선조에 들어와 수경신(守庚申)은 미신이며 삼척설(三尺設)은 황당무계하다 하여 유신(儒臣)들의 반대가 있었다. 1759년(영조 35)부터는 연회도 없어지고 대신 불을 밝히고 근신하면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고 한다. 1486년 11월 19일 성종은 종친과 여러 신하를 한 곳에 모아 놓고 음식과 주악을 갖추어 경신수야를 하였다. 연산군도 경신이 든 11월에 경신수야를 하면서 이날 밤낮으로 악공과 기녀들을 불러 노래와 춤으로 즐기고 음식과 술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흔히 민간에서는 풍류객이나 난봉꾼들이 경신수야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천기대요](/topic/천기대요)(天機大要)』 세관교승(歲官交承)조에 따르면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2일은 신구세관(新舊歲官)이 뒤바뀌는 때이다.”라고 하였다. 즉 한 해를 관장할 세신의 군림(君臨)을 인간이 즐겁게 맞이한다는 뜻이다. 섣달그믐에서 설로 이행되는 순간이 설이다. 설은 다름 아닌 속세(俗世)의 공간과 시간에서 신성(神聖)의 공간과 시간대로 이행되는 환세일(換歲日)인 셈이다. 제주도지역에서는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을 ‘[신구간](/topic/신구간)(新舊間)’이라고 한다. 이때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사를 수호․관장하던 신들은 한 해의 임무를 다하고 [옥황상제](/topic/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로 모두 올라가 신들이 지상에는 없다고 믿고 있어 이때 [이사](/topic/이사)도 하고 변소(측간)도 고치고 집 거래도 이루어진다. 고대사회로부터 우리 민족은 해와 달을 민족신으로 선택하였다. 7세기 문헌인 『수서(隋書)』에는 신라인들은 매년 정월 초 아침에 서로 경하하고, 왕이 연희를 베풀어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서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관행은 한가위에도 똑같았다고 한다. 우리 선인들은 하늘의 해와 달을 신격(神格)의 위상(位相)으로까지 끌어올렸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158년(아사달왕 5) 동해변에 사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이들은 해와 달의 정(精, 精氣)이었기 때문에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그리하여 신라의 왕은 사신을 보내어 그들을 오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이 신화에서 달의 정기인 세오녀가 여성이고 달은 여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을 상징하는 가진 속성 때문에 달은 [농업](/topic/농업)과 관련된 풍요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시 행사 가운데 [용알뜨기](/topic/용알뜨기), 다리 밟기, [강강술래](/topic/강강술래), 좀생이 별보기 등을 살펴보면 달은 물이나 여성과 연관된 풍요로운 생산성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강술래는 달의 흥망성쇠와 재생을 상징한 원무(圓舞)이다. [춤사위](/topic/춤사위)를 살펴보면 달의 차고 기욺을 재현하고 있어 부활의 의지까지 표상하고 있다. 달이 만월인 때에 민속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만월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달신(月神)이 숨긴 그의 신체(神體)를 모두 드러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보름달은 완성, 완전무구, 힘, 영력(靈力)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정월 초의 윷점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밤에 해야 효험을 얻는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변 조선족은 둥근 [멍석](/topic/멍석)을 [마당](/topic/마당)에 깐 다음 그 위에 둥근 [두레](/topic/두레)반을 놓고 옆에 물동이도 함께 올려놓는다. 달신이 물동이 안의 물에 들어 있을 때 세 번 [장작](/topic/장작)윷을 던져 윷괘를 얻어 그해 운수와 풍[농점](/topic/농점)을 친다. 이처럼 만월인 때에 주술적(呪術的) 힘이 크게 발동된다는 뜻이다.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때 집단적 무의식이 끊임없이 촉발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한가윗날 조상을 위하는 것을 ‘송편제의’라고 일컫는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지역에서는 그해 흉작이 들었을 때 ‘[보리](/topic/보리)송편’이라도 만들어 조상께 천신한다. 차례상에 올리는 떡이나 음식 가운데 달의 상징성이 은유화된 것이 많다. 8월령에는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쉬어보세 [신도주](/topic/신도주) 올여송편 [박나물](/topic/박나물) [[토란](/topic/토란)국](/topic/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먹세.”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의 송편은 달을 상징한 떡이다. 일반적 통념으로 백설기는 땅, 절편은 해, 기름떡(우찍)은 별을 각각 상징한다. 이처럼 우주론적 음식관을 [가지](/topic/가지)고 있는 우리 선인들의 음식철학관은 놀라울 정도이다. 한가위에는 토란국을 해 먹는다. 이때의 토란도 달을 상징한다. 강원도 강릉지역에는 토란이 나지 않기 때문에 대신 [고지](/topic/고지)박국과 지박나물을 해 먹는다. 달을 먹는 행위는 성체(聖體)를 먹는 행위인 [유감주술](/topic/유감주술)(類感呪術)에 해당한다. 술도 [올벼](/topic/올벼)로 신청주(新淸酒․新稻酒)를 빚어 조상님께 올린다. 이를 ‘백주(白酒)’라고 한다. 이때의 백(白)도 알고 보면 일월신(日月神)이 밝히고 있는 광명의 색이이다. 이에 따라 백주는 곧 ‘신주(神酒)’라는 뜻이다. 백색은 신성하고 깨끗한 신으로 인식한다. 신의 옷인 [백의](/topic/백의)(白衣)를 입고 신주(神酒)인 백주(白酒)를 마시고 신의 성체(聖體)인 해와 달(토란과 고지박)을 먹는 제의 공간이 설이나 한가위 명절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좁쌀 한 알이 귀신 천(千)을 쫓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곡식알에도 주술적 힘과 신령(神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곡령숭배사상(穀靈崇拜思想)에서 나왔다. [농민](/topic/농민)들의 정신세계에서의 곡식이나 씨는 동물세계에서의 알(卵)에 해당한다. 알은 태양이나 달의 변신적(變身的) 모습이기 때문에 불멸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대구지역에서는 아이들이 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에 황과 고무를 넣고 휘휘 돌려 달 모양을 만들면서 “오늘밤엔 달 끄실려(그슬러) 먹을까?” 하고 외친다. 달은 아이들만 먹는 게 아니라 임신 못하는 궁중의 비빈(妃嬪)들도 먹었다. 정월대보름 달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켜길 아홉 번씩 아홉 차례, 곧 81번 기통(氣通)시키는 달의 정기를 빨아먹는 풍속인 ‘흡월정민속(吸月精民俗)’까지 있었다. 이 또한 슬기롭기만 하다. 태양의 정기를 흡입하는 풍속인 흡일정민속(吸日精民俗)도 많다. 한국인은 유독 ‘해맞이’를 즐긴다.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을 굳이 찾아가서 해맞이를 하는 이유는 광화문 네거리부터 정(正)동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한국인은 해를 맞이할 때 북을 치고 새해맞이굿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부여의 [영고](/topic/영고)(迎鼓)이다. 그 당시 부여민들은 황홀경을 느끼는 제의와 축제를 벌였을 것이다. 태양은 병도 치유한다. 강릉시 강문동 해안가에서는 삼눈을 앓고 있는 이를 새벽에 해변으로 데리고 나가 주문을 외면서 환자로 하여금 해를 먹게 한다. 이때 환자는 입을 크게 벌여 해를 먹는 시늉을 한다. 해의 기를 먹게 하고 그 기를 쏘이게 하여 병을 치료하겠다는 원시적 유감주술인 것이다. 우리 선인들은 작은 곡식알, 동물의 알, 옥돌, 차돌 등에도 해와 달을 유감시켜 가며 기(氣)철학을 생활에 실천하고 원용해 온 것이다. 이같이 인간에게 모든 은혜와 덕을 베풀어 주는 신을 맞이하는 의례나 의식의 하나가 불밝히기와 수세이다. 제석(除夕)에는 [민가](/topic/민가)와 궁중에서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나례](/topic/나례)(儺禮)를 행하였다. 민간에서는 수세(守歲)라 하여 문 위에 도지(桃枝)를 꽂고, 집안 곳곳에 등불을 밝히고, 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려 귀신이 놀라 달아나게 하였다. 궁중의 나례는 중국에서 유래된 의식이다. 『후한서(後漢書)』 나례지(儺禮志)에 이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정종(靖宗) 6년에 기록이 나타난다. 궁중에서는 대나(大儺)라 하여 12세 이상 16세 이하의 소년들이 진자(侲子)와 황금사목(黃金四目)의 가면(假面)을 쓰고 현의(玄衣), 주상(朱裳)에 웅피(熊皮)를 무릅쓴 [방상시](/topic/방상시)(方相氏)의 축귀의식(逐鬼儀式)이 있었다. 이 의식에서 사용되는 가면, 붉은 옷, 방상씨, 가무악(歌舞樂) 등은 모두 잡귀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희생(犧牲)으로는 닭 다섯 마리를 잡아 역기(疫氣)를 쫓았다. 정종이 이를 애통하게 여기고 닭 대신 다른 물건으로 하도록 하여 [황토](/topic/황토)우(黃土牛) 네 마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나례 때에는 벽사의식(辟邪儀式)으로 [처용무](/topic/처용무)(處容舞) 등 여러 잡희(雜戲)가 베풀어졌다. 이를 나희(儺戲)라고 하였다. 나희는 나례 이외에도 왕의 행차 때 주연(酒宴)이나 사신의 위로연 등 의식적인 성격을 떠나 오락적인 연희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음력 12월 30일은 일 년의 마지막 날로서 섣달그믐, [제야](/topic/제야)(除夜), 제석(除夕) 등으로 부른다. 이날은 우선 일 년 동안 있은 거래를 마[무리](/topic/무리) 지어야 한다. 빚이 있는 사람은 갚을 것을 다 갚고, 받을 것도 미리미리 다 받아 둬야 한다. 이날 자정까지 받지 못하면 정월대보름까지는 빚을 받으러 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섣달그믐날 한밤중에 생대[靑竹] 마디들을 불에 태운다. 그러면 대 마디들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터진다. 이것을 폭죽, 대총, 대불이라고 불러왔다. 이렇게 하면 집 안에 숨어 있는 악귀들이 놀라서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집 안이 깨끗하고 무사태평한 한 해를 맞게 된다고 믿었다. 구한말에는 관가에서나 세도가에서 총을 쏘았다는 보고도 있다. 지금은 시들해졌만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부터 대포를 쏘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 한다. [화전](/topic/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것은 대나(大儺)의 역질귀신 쫓는 행사의 남은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포를 쏘는 벽사행위는 설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를 [세포](/topic/세포)(歲砲)라고 하였다. 포는 세 번 쏜다. 같은 책에서 이를 제석이나 설날에 폭죽을 터뜨려 귀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모방한 제도라 하였다. 이로 보면 [연말](/topic/연말) 연초에 행한 민간의 폭죽이나 궁중의 연종포나 불밝히기는 모두 다 벽사진경(辟邪進慶)의 행사였다는 점에서 근본성격이 같다. 대개 [세찬](/topic/세찬) 준비가 끝나면 수세로 들어간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민가에서는 [다락](/topic/다락), [마루](/topic/마루), 방, [부엌](/topic/부엌)에 모두 등잔을 밝혀 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 실을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topic/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밝혀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다. 이것을 수세라고 한다. 또 속담에 제야 때 잠을 자면 눈썹이 모두 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대개 속아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분을 재어 눈썹에 바르고, 깨워서 거울을 보게 하며 놀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보고서에 따면 다락방, 마루, 부엌 외에도 별채, 마당, 광, 샘, 외양간, 장독간, [대문](/topic/대문) 등에 불을 밝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제야와 원단에 윷을 던져 괘를 보아 새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이날 밤을 새우기 위해 흔히 [윷놀이](/topic/윷놀이)나 [화투](/topic/화투)치기를 식구들이 모여 앉아서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같은 놀이 외에 [술래잡기](/topic/술래잡기), 풍장치기, 달 넘세 놀이를 하거나 유식한 동네 어른을 찾아가서 밤새도록 옛날 얘기를 들으면서 날을 새우기도 했다. 부인들은 세찬 준비에도 바쁠 뿐만 아니라 초롱불을 들고 왕래하는 묵은 세배꾼들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수세가 자연적으로 되는 셈이다. 『동국세시기』에서는 각 지방의 빙등(氷燈)과 연말 놀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함경도와 평안도 풍속에는 설치해 놓는 등이 있다. 그것은 마치 원주(圓柱) 안에 기름 심지를 해 박은 것과 같다. 그것을 밝혀 놓고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희(儺戲)를 했다. 이것을 ‘청단(靑壇)’이라고 한다. 지금도 섣달그믐날에 매구치기를 한다는 보고도 있다. 전북지역에서는 [농악](/topic/농악)대가 마당, 부엌, 장광들을 돈다. 이때 [상쇠](/topic/상쇠)가 [덕담](/topic/덕담)도 하면서 집을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섣달그믐날에 불을 밝히는 이유를 민간에서는 설을 밝게 맞으면 복된 신년을 맞는다고도 하고 잡귀가 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서 가운이 트인다고 한다. 이는 광명의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오후부터는 세찬을 준비하느라고 집 안은 분주해진다. 아이들은 벌써 설 치장을 하고 나선다. 이 때문에 이날을 작은 설날이라고도 한다. | 참고문헌 | 한국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한국세시풍속연구 (임동권, 집문당, 1985) 서울민속대관-세시풍속과 놀이 (서울특별시, 1993) 우리 세시풍속의 노래 (유만공, 임기중 역주․해설, 집문당, 1993) 부산지방의 세시풍속 (김승찬, 세종출판사, 1999) 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충청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경상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전라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중구의 세시풍속 (김선풍, 서울중구문화원, 2007) | 역사 | 한 해를 마감하는 섣달그믐에는 수세(守歲)를 비롯하여 묵은해 세배, 그믐 차례, 청단(靑壇), 연종포(年終砲), 등잔 팔기[賣燈盞], 대나(大儺) 등 여러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민간에서는 섣달그믐이 지나면 새해의 신인 세신(歲神)이 하늘에서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믐날과 정월 초하룻날에는 조상들이 오시기 때문에 이들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불을 밝혀둔다고 믿는 속신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세신을 맞이하는 제의적 장치가 수세나 불밝히기이다. 수세 풍속이나 불밝히기는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이 풍속은 도교적인 경신신앙(庚申信仰)의 [경신수야](/topic/경신수야)(庚申守夜) 유습에서 내려왔다고 보는 설이 있다. 즉 60일에 한 번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형체 없이 사람의 몸에 기생하고 있다는 삼시(三尸) 또는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上帝)께 그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 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를 막고 천수(天壽)를 다하려고 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도교적 장생법인 경신수야 풍속은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 나타나 있다. 최고의 기록으로는 고려 1265년(원종 6) 4월 경신일에 태자가 밤새워 연회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자지 않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후 연회를 베풀고 이런 의식이 성행되었으나 조선조에 들어와 수경신(守庚申)은 미신이며 삼척설(三尺設)은 황당무계하다 하여 유신(儒臣)들의 반대가 있었다. 1759년(영조 35)부터는 연회도 없어지고 대신 불을 밝히고 근신하면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고 한다. 1486년 11월 19일 성종은 종친과 여러 신하를 한 곳에 모아 놓고 음식과 주악을 갖추어 경신수야를 하였다. 연산군도 경신이 든 11월에 경신수야를 하면서 이날 밤낮으로 악공과 기녀들을 불러 노래와 춤으로 즐기고 음식과 술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흔히 민간에서는 풍류객이나 난봉꾼들이 경신수야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천기대요](/topic/천기대요)(天機大要)』 세관교승(歲官交承)조에 따르면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2일은 신구세관(新舊歲官)이 뒤바뀌는 때이다.”라고 하였다. 즉 한 해를 관장할 세신의 군림(君臨)을 인간이 즐겁게 맞이한다는 뜻이다. 섣달그믐에서 설로 이행되는 순간이 설이다. 설은 다름 아닌 속세(俗世)의 공간과 시간에서 신성(神聖)의 공간과 시간대로 이행되는 환세일(換歲日)인 셈이다. 제주도지역에서는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을 ‘[신구간](/topic/신구간)(新舊間)’이라고 한다. 이때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사를 수호․관장하던 신들은 한 해의 임무를 다하고 [옥황상제](/topic/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로 모두 올라가 신들이 지상에는 없다고 믿고 있어 이때 [이사](/topic/이사)도 하고 변소(측간)도 고치고 집 거래도 이루어진다. 고대사회로부터 우리 민족은 해와 달을 민족신으로 선택하였다. 7세기 문헌인 『수서(隋書)』에는 신라인들은 매년 정월 초 아침에 서로 경하하고, 왕이 연희를 베풀어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서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관행은 한가위에도 똑같았다고 한다. 우리 선인들은 하늘의 해와 달을 신격(神格)의 위상(位相)으로까지 끌어올렸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158년(아사달왕 5) 동해변에 사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이들은 해와 달의 정(精, 精氣)이었기 때문에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그리하여 신라의 왕은 사신을 보내어 그들을 오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지 않고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이 신화에서 달의 정기인 세오녀가 여성이고 달은 여성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을 상징하는 가진 속성 때문에 달은 [농업](/topic/농업)과 관련된 풍요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시 행사 가운데 [용알뜨기](/topic/용알뜨기), 다리 밟기, [강강술래](/topic/강강술래), 좀생이 별보기 등을 살펴보면 달은 물이나 여성과 연관된 풍요로운 생산성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강술래는 달의 흥망성쇠와 재생을 상징한 원무(圓舞)이다. [춤사위](/topic/춤사위)를 살펴보면 달의 차고 기욺을 재현하고 있어 부활의 의지까지 표상하고 있다. 달이 만월인 때에 민속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만월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달신(月神)이 숨긴 그의 신체(神體)를 모두 드러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보름달은 완성, 완전무구, 힘, 영력(靈力)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정월 초의 윷점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밤에 해야 효험을 얻는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변 조선족은 둥근 [멍석](/topic/멍석)을 [마당](/topic/마당)에 깐 다음 그 위에 둥근 [두레](/topic/두레)반을 놓고 옆에 물동이도 함께 올려놓는다. 달신이 물동이 안의 물에 들어 있을 때 세 번 [장작](/topic/장작)윷을 던져 윷괘를 얻어 그해 운수와 풍[농점](/topic/농점)을 친다. 이처럼 만월인 때에 주술적(呪術的) 힘이 크게 발동된다는 뜻이다.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때 집단적 무의식이 끊임없이 촉발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한가윗날 조상을 위하는 것을 ‘송편제의’라고 일컫는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지역에서는 그해 흉작이 들었을 때 ‘[보리](/topic/보리)송편’이라도 만들어 조상께 천신한다. 차례상에 올리는 떡이나 음식 가운데 달의 상징성이 은유화된 것이 많다. 8월령에는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쉬어보세 [신도주](/topic/신도주) 올여송편 [박나물](/topic/박나물) [[토란](/topic/토란)국](/topic/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먹세.”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때의 송편은 달을 상징한 떡이다. 일반적 통념으로 백설기는 땅, 절편은 해, 기름떡(우찍)은 별을 각각 상징한다. 이처럼 우주론적 음식관을 [가지](/topic/가지)고 있는 우리 선인들의 음식철학관은 놀라울 정도이다. 한가위에는 토란국을 해 먹는다. 이때의 토란도 달을 상징한다. 강원도 강릉지역에는 토란이 나지 않기 때문에 대신 [고지](/topic/고지)박국과 지박나물을 해 먹는다. 달을 먹는 행위는 성체(聖體)를 먹는 행위인 [유감주술](/topic/유감주술)(類感呪術)에 해당한다. 술도 [올벼](/topic/올벼)로 신청주(新淸酒․新稻酒)를 빚어 조상님께 올린다. 이를 ‘백주(白酒)’라고 한다. 이때의 백(白)도 알고 보면 일월신(日月神)이 밝히고 있는 광명의 색이이다. 이에 따라 백주는 곧 ‘신주(神酒)’라는 뜻이다. 백색은 신성하고 깨끗한 신으로 인식한다. 신의 옷인 [백의](/topic/백의)(白衣)를 입고 신주(神酒)인 백주(白酒)를 마시고 신의 성체(聖體)인 해와 달(토란과 고지박)을 먹는 제의 공간이 설이나 한가위 명절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좁쌀 한 알이 귀신 천(千)을 쫓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곡식알에도 주술적 힘과 신령(神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곡령숭배사상(穀靈崇拜思想)에서 나왔다. [농민](/topic/농민)들의 정신세계에서의 곡식이나 씨는 동물세계에서의 알(卵)에 해당한다. 알은 태양이나 달의 변신적(變身的) 모습이기 때문에 불멸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대구지역에서는 아이들이 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에 황과 고무를 넣고 휘휘 돌려 달 모양을 만들면서 “오늘밤엔 달 끄실려(그슬러) 먹을까?” 하고 외친다. 달은 아이들만 먹는 게 아니라 임신 못하는 궁중의 비빈(妃嬪)들도 먹었다. 정월대보름 달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켜길 아홉 번씩 아홉 차례, 곧 81번 기통(氣通)시키는 달의 정기를 빨아먹는 풍속인 ‘흡월정민속(吸月精民俗)’까지 있었다. 이 또한 슬기롭기만 하다. 태양의 정기를 흡입하는 풍속인 흡일정민속(吸日精民俗)도 많다. 한국인은 유독 ‘해맞이’를 즐긴다.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을 굳이 찾아가서 해맞이를 하는 이유는 광화문 네거리부터 정(正)동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한국인은 해를 맞이할 때 북을 치고 새해맞이굿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부여의 [영고](/topic/영고)(迎鼓)이다. 그 당시 부여민들은 황홀경을 느끼는 제의와 축제를 벌였을 것이다. 태양은 병도 치유한다. 강릉시 강문동 해안가에서는 삼눈을 앓고 있는 이를 새벽에 해변으로 데리고 나가 주문을 외면서 환자로 하여금 해를 먹게 한다. 이때 환자는 입을 크게 벌여 해를 먹는 시늉을 한다. 해의 기를 먹게 하고 그 기를 쏘이게 하여 병을 치료하겠다는 원시적 유감주술인 것이다. 우리 선인들은 작은 곡식알, 동물의 알, 옥돌, 차돌 등에도 해와 달을 유감시켜 가며 기(氣)철학을 생활에 실천하고 원용해 온 것이다. 이같이 인간에게 모든 은혜와 덕을 베풀어 주는 신을 맞이하는 의례나 의식의 하나가 불밝히기와 수세이다. 제석(除夕)에는 [민가](/topic/민가)와 궁중에서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나례](/topic/나례)(儺禮)를 행하였다. 민간에서는 수세(守歲)라 하여 문 위에 도지(桃枝)를 꽂고, 집안 곳곳에 등불을 밝히고, 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려 귀신이 놀라 달아나게 하였다. 궁중의 나례는 중국에서 유래된 의식이다. 『후한서(後漢書)』 나례지(儺禮志)에 이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정종(靖宗) 6년에 기록이 나타난다. 궁중에서는 대나(大儺)라 하여 12세 이상 16세 이하의 소년들이 진자(侲子)와 황금사목(黃金四目)의 가면(假面)을 쓰고 현의(玄衣), 주상(朱裳)에 웅피(熊皮)를 무릅쓴 [방상시](/topic/방상시)(方相氏)의 축귀의식(逐鬼儀式)이 있었다. 이 의식에서 사용되는 가면, 붉은 옷, 방상씨, 가무악(歌舞樂) 등은 모두 잡귀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희생(犧牲)으로는 닭 다섯 마리를 잡아 역기(疫氣)를 쫓았다. 정종이 이를 애통하게 여기고 닭 대신 다른 물건으로 하도록 하여 [황토](/topic/황토)우(黃土牛) 네 마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나례 때에는 벽사의식(辟邪儀式)으로 [처용무](/topic/처용무)(處容舞) 등 여러 잡희(雜戲)가 베풀어졌다. 이를 나희(儺戲)라고 하였다. 나희는 나례 이외에도 왕의 행차 때 주연(酒宴)이나 사신의 위로연 등 의식적인 성격을 떠나 오락적인 연희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음력 12월 30일은 일 년의 마지막 날로서 섣달그믐, [제야](/topic/제야)(除夜), 제석(除夕) 등으로 부른다. 이날은 우선 일 년 동안 있은 거래를 마[무리](/topic/무리) 지어야 한다. 빚이 있는 사람은 갚을 것을 다 갚고, 받을 것도 미리미리 다 받아 둬야 한다. 이날 자정까지 받지 못하면 정월대보름까지는 빚을 받으러 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섣달그믐날 한밤중에 생대[靑竹] 마디들을 불에 태운다. 그러면 대 마디들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터진다. 이것을 폭죽, 대총, 대불이라고 불러왔다. 이렇게 하면 집 안에 숨어 있는 악귀들이 놀라서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집 안이 깨끗하고 무사태평한 한 해를 맞게 된다고 믿었다. 구한말에는 관가에서나 세도가에서 총을 쏘았다는 보고도 있다. 지금은 시들해졌만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부터 대포를 쏘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 한다. [화전](/topic/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것은 대나(大儺)의 역질귀신 쫓는 행사의 남은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포를 쏘는 벽사행위는 설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를 [세포](/topic/세포)(歲砲)라고 하였다. 포는 세 번 쏜다. 같은 책에서 이를 제석이나 설날에 폭죽을 터뜨려 귀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모방한 제도라 하였다. 이로 보면 [연말](/topic/연말) 연초에 행한 민간의 폭죽이나 궁중의 연종포나 불밝히기는 모두 다 벽사진경(辟邪進慶)의 행사였다는 점에서 근본성격이 같다. 대개 [세찬](/topic/세찬) 준비가 끝나면 수세로 들어간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민가에서는 [다락](/topic/다락), [마루](/topic/마루), 방, [부엌](/topic/부엌)에 모두 등잔을 밝혀 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 실을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topic/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밝혀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다. 이것을 수세라고 한다. 또 속담에 제야 때 잠을 자면 눈썹이 모두 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대개 속아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분을 재어 눈썹에 바르고, 깨워서 거울을 보게 하며 놀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보고서에 따면 다락방, 마루, 부엌 외에도 별채, 마당, 광, 샘, 외양간, 장독간, [대문](/topic/대문) 등에 불을 밝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제야와 원단에 윷을 던져 괘를 보아 새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이날 밤을 새우기 위해 흔히 [윷놀이](/topic/윷놀이)나 [화투](/topic/화투)치기를 식구들이 모여 앉아서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같은 놀이 외에 [술래잡기](/topic/술래잡기), 풍장치기, 달 넘세 놀이를 하거나 유식한 동네 어른을 찾아가서 밤새도록 옛날 얘기를 들으면서 날을 새우기도 했다. 부인들은 세찬 준비에도 바쁠 뿐만 아니라 초롱불을 들고 왕래하는 묵은 세배꾼들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수세가 자연적으로 되는 셈이다. 『동국세시기』에서는 각 지방의 빙등(氷燈)과 연말 놀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함경도와 평안도 풍속에는 설치해 놓는 등이 있다. 그것은 마치 원주(圓柱) 안에 기름 심지를 해 박은 것과 같다. 그것을 밝혀 놓고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희(儺戲)를 했다. 이것을 ‘청단(靑壇)’이라고 한다. 지금도 섣달그믐날에 매구치기를 한다는 보고도 있다. 전북지역에서는 [농악](/topic/농악)대가 마당, 부엌, 장광들을 돈다. 이때 [상쇠](/topic/상쇠)가 [덕담](/topic/덕담)도 하면서 집을 한 바퀴 돌아 나온다. 섣달그믐날에 불을 밝히는 이유를 민간에서는 설을 밝게 맞으면 복된 신년을 맞는다고도 하고 잡귀가 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서 가운이 트인다고 한다. 이는 광명의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오후부터는 세찬을 준비하느라고 집 안은 분주해진다. 아이들은 벌써 설 치장을 하고 나선다. 이 때문에 이날을 작은 설날이라고도 한다. | 참고문헌 | 한국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한국세시풍속연구 (임동권, 집문당, 1985) 서울민속대관-세시풍속과 놀이 (서울특별시, 1993) 우리 세시풍속의 노래 (유만공, 임기중 역주․해설, 집문당, 1993) 부산지방의 세시풍속 (김승찬, 세종출판사, 1999) 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충청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경상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전라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중구의 세시풍속 (김선풍, 서울중구문화원,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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