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영천리방울샘

한국무속신앙사전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415-3[번지](/topic/번지) 오동촌[마을](/topic/마을) 어귀에 위치한 [우물](/topic/우물).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2001년 9월 2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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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415-3[번지](/topic/번지) 오동촌[마을](/topic/마을) 어귀에 위치한 [우물](/topic/우물).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2001년 9월 2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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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희
정의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415-3[번지](/topic/번지) 오동촌[마을](/topic/마을) 어귀에 위치한 [우물](/topic/우물).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2001년 9월 2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415-3[번지](/topic/번지) 오동촌[마을](/topic/마을) 어귀에 위치한 [우물](/topic/우물).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2001년 9월 2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내용방울샘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복합되어 있는 복합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 샘은 지하에서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고 하여 방울샘으로 불린다. 이러한 현상은 지질학적 측면에서 지층 구조상 지질습곡대에 의해 지표 가까이 노출된 지하 대수층이 지표에 가장 근접한 지역 위에서 형성되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샘은 500여 년 전에 용이 승천한 늪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샘의 상태를 보고 나라의 평안과 풍흉을 점쳤는데 동학[농민](/topic/농민)운동과 6․25전쟁 등 나라에 대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황토물이 나오고 풍년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뜬물처럼 우윳빛 물이 나왔다고 한다. 오동촌[마을](/topic/마을)에서는 방울샘을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당산나무에서 지내는 당산제와 함께 방울샘에서 [샘제](/topic/샘제)를 지내며 신성시 하고 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전에 당산나무와 방울샘 주변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밤 11시쯤에 당산할아버지에게 먼저 제를 올리고 나서 방울샘으로 옮겨 샘제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당산할머니에게 제를 지내는 것으로 절차를 마[무리](/topic/무리)한다.
참고문헌장성군의 문화유적 (장성군ㆍ조선대박물관, 1999)
大東地志, 장성군 [마을](/topic/마을)굿 (나경수 외, 민속원, 2007)
내용방울샘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복합되어 있는 복합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 샘은 지하에서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고 하여 방울샘으로 불린다. 이러한 현상은 지질학적 측면에서 지층 구조상 지질습곡대에 의해 지표 가까이 노출된 지하 대수층이 지표에 가장 근접한 지역 위에서 형성되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샘은 500여 년 전에 용이 승천한 늪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샘의 상태를 보고 나라의 평안과 풍흉을 점쳤는데 동학[농민](/topic/농민)운동과 6․25전쟁 등 나라에 대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황토물이 나오고 풍년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뜬물처럼 우윳빛 물이 나왔다고 한다. 오동촌[마을](/topic/마을)에서는 방울샘을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당산나무에서 지내는 당산제와 함께 방울샘에서 [샘제](/topic/샘제)를 지내며 신성시 하고 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전에 당산나무와 방울샘 주변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밤 11시쯤에 당산할아버지에게 먼저 제를 올리고 나서 방울샘으로 옮겨 샘제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당산할머니에게 제를 지내는 것으로 절차를 마[무리](/topic/무리)한다.
참고문헌장성군의 문화유적 (장성군ㆍ조선대박물관, 1999)
大東地志, 장성군 [마을](/topic/마을)굿 (나경수 외, 민속원, 2007)
역사방울샘의 시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오동촌[마을](/topic/마을)이 4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동[우물](/topic/우물)로서 기능하던 방울샘의 역사도 400년 이전으로 소급된다고 할 수 있다. 방울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대동지지』이다. 이 책에는 방울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소재지만 기록되고 있다. 다음으로 『호남읍지』에 포함된 「장성부읍지」 산천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부(府)의 동쪽 5리에 있다. 물이 솟아나오는 것이 방울과 같은데 영험과 이적이 자주 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鈴泉 在府東五里 湧水如鈴 頻靈異 當旱祈雨祭)”

1927년에 간행된 「장성읍지」 이적조(異蹟條)에 방울샘과 관련된 기록이 전한다. “영천은 장성면 영천리에 있는데 샘의 맥이 드러난 곳의 모래 가운데에서 수많은 방울들이 떠올라 끊이지 않으니 이름 부르게 되었다. 물 색깔의 적백으로써 세상일을 징험하고 청탁(淸濁)으로 1년 일을 점쳤다. 샘 안에 물고기는 모두 오른 눈이 멀었다. 비록 다른 물에 있던 것도 한 번 이 샘에 들어오면 또한 눈이 먼다. 사람들이 만일 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재해를 받게 되는 까닭에 서로 경계하고 침범하지 않았다(鈴泉在長城面鈴泉里泉脈散出沙中萬鈴浮上不絶故名之以水之赤白驗世事淸濁占年事泉中魚族盡盲右目雖他水所産一入是泉則亦盲人若釣取必受災害故相戒不侵)”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이미 조선시대부터 방울샘은 제의 공간이면서 점세(占世)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샘 옆에 세워진 빗돌에는 ‘영천수축실적(鈴泉修築實積)’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1931년에 공사를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1991년에 재정비 하면서 석축 위에 대리석을 올리고 배수로를 정비하고 우물 바닥에 자갈을 넣었다고 한다.
역사방울샘의 시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오동촌[마을](/topic/마을)이 400여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동[우물](/topic/우물)로서 기능하던 방울샘의 역사도 400년 이전으로 소급된다고 할 수 있다. 방울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대동지지』이다. 이 책에는 방울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소재지만 기록되고 있다. 다음으로 『호남읍지』에 포함된 「장성부읍지」 산천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부(府)의 동쪽 5리에 있다. 물이 솟아나오는 것이 방울과 같은데 영험과 이적이 자주 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鈴泉 在府東五里 湧水如鈴 頻靈異 當旱祈雨祭)”

1927년에 간행된 「장성읍지」 이적조(異蹟條)에 방울샘과 관련된 기록이 전한다. “영천은 장성면 영천리에 있는데 샘의 맥이 드러난 곳의 모래 가운데에서 수많은 방울들이 떠올라 끊이지 않으니 이름 부르게 되었다. 물 색깔의 적백으로써 세상일을 징험하고 청탁(淸濁)으로 1년 일을 점쳤다. 샘 안에 물고기는 모두 오른 눈이 멀었다. 비록 다른 물에 있던 것도 한 번 이 샘에 들어오면 또한 눈이 먼다. 사람들이 만일 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재해를 받게 되는 까닭에 서로 경계하고 침범하지 않았다(鈴泉在長城面鈴泉里泉脈散出沙中萬鈴浮上不絶故名之以水之赤白驗世事淸濁占年事泉中魚族盡盲右目雖他水所産一入是泉則亦盲人若釣取必受災害故相戒不侵)”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이미 조선시대부터 방울샘은 제의 공간이면서 점세(占世)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샘 옆에 세워진 빗돌에는 ‘영천수축실적(鈴泉修築實積)’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1931년에 공사를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1991년에 재정비 하면서 석축 위에 대리석을 올리고 배수로를 정비하고 우물 바닥에 자갈을 넣었다고 한다.
형태샘은 둘레 15m, 높이 2m, 수심 1m, 면적 145㎡의 타원형 [우물](/topic/우물)이다. 지하에서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고 하여 ‘방울샘’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샘가를 석축으로 쌓고 석축 맨 윗부분과 샘 주변으로는 대리석을 둘렀으며, 아래로는 배수로가 나 있다. 샘 주변에는 샘을 보수한 사실이 기록된 빗돌이 서 있다.
형태샘은 둘레 15m, 높이 2m, 수심 1m, 면적 145㎡의 타원형 [우물](/topic/우물)이다. 지하에서 물이 방울처럼 솟아오른다고 하여 ‘방울샘’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샘가를 석축으로 쌓고 석축 맨 윗부분과 샘 주변으로는 대리석을 둘렀으며, 아래로는 배수로가 나 있다. 샘 주변에는 샘을 보수한 사실이 기록된 빗돌이 서 있다.
동국대학교조선도교사이능화1959
아세아문화사도교와 한국문화한국도교사상연구회1988
아세아문화사도교 사상의 한국적 전개한국도교사상연구회1989
분도출판사도교사窪德忠1990
아세아문화사한국도교사상의 이해한국도교사상연구회1990
민족문화사한국민속대사전 21991
목원사무속신앙박정례1994
이가책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무신도건들바우박물관1994
한국 무속신 고찰양종승1996
민족사무-한국 무의 역사와 현상조흥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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