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신체뿐만 아니라 용신신앙 자체를 의미하며 용 또는 용신을 형상화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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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김명자 |
정의 | 신체뿐만 아니라 용신신앙 자체를 의미하며 용 또는 용신을 형상화한 것. | 정의 | 신체뿐만 아니라 용신신앙 자체를 의미하며 용 또는 용신을 형상화한 것. | 내용 | 용단지는 집안의 농사를 비롯하여 재물을 불게 해주고 집을 지켜주며 가내의 평안을 도모하는 [가신](/topic/가신)이다. 특히 [곡물](/topic/곡물)을 비롯한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그 [자리](/topic/자리)도 이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흔히 용단지는 ‘용이 드는 자리’에 모신다고 한다. 용이 드는 자리란 재산이 들고 그 재산을 지켜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용단지의 자리는 대체로 곡물을 취급하는 [부엌](/topic/부엌)이라든가 고방, [안방](/topic/안방) 위 [다락](/topic/다락)을 비롯하여 뒤뜰이나 [처마](/topic/처마)밑 또는 뒤란 등지가 된다. 이는 가옥 구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러한 용단지의 자리는 용단지의 신격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곧 용단지는 이처럼 재물이 있는 곳에 자리함으로써 재복과 관련된 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가정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추석, 동지 등 명절과 음력 시월 추수 때에 행한다. 이때 정갈한 밥 한 그릇과 [정화수](/topic/정화수) 한 그릇을 올린다. 또는 봄에 햇[보리](/topic/보리)가 나면 용단지의 곡물을 갈아주고 다시 가을에 햅쌀이 나왔을 때 갈아넣고나서 간단히 의례를 행하는 가정도 있다. 이 밖에 봄에 풍농을 위해 용단지에 제를 지내거나 오랜가뭄 또는 심한 홍수 때에도 임시제로서 용단지에 의례를 올려 비가 오기를 기원하거나 비를 알맞게 조절해줄 것을 기원한다. 안동시 풍산읍의 한 사례에서는 용단지에 곡물을 갈아넣을 때 항상 [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우선 가을에 햇농사를 지으면([수확](/topic/수확)하여 햇곡식을 거두어들이면) 고사를 지내기 위해 바깥어른(남편)이 [손 없는 날](/topic/손없는날)을 택일한다. 날이 잡히면 ‘[수지](/topic/수지)쌀’(처음 수확한 깨끗한 쌀)로 백편이나 마구설기 등 마음 내키는 대로 떡을 쪄 올리며 치성을 드린다. 예전에는 집에서 직접 떡을 쪘지만 방앗간이 생긴 이후에는 집에서 햅쌀을 물에 불려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떡을 해온다. 고사떡은 각 가신에게 고루 나누어 올린다. 다만 성주를 새로 맬 때에는 떡을 시루째 올린다. 용단지에 제를 지낼 때에는 쌀용에 먼저 음식을 올린 뒤에 꺼칠용에게 올린다.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주로 그 집의 여자 상어른이 집행한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 등 특별히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에는 간혹 무당과 같은 전문 사제자에게 의례를 의뢰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 사제자가 집행할 경우는 주로 용단지를 새로 모실 때이다. 또한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독자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다. 성주, 조왕, 삼신 등 여러 가신을 위하는 가정의 경우 이들 가신과 함께 제의를 올린다. 순서는 가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용단지는 점괘나 현몽에 따라 [봉안](/topic/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가신의 신체와 가신을 모시기 전후해서는 내력담이나 [영험담](/topic/영험담)이 있다. 내력담은 주로 어른이 모시거나 집안의 우환이 있어서 모시는 경우가 중심이 된다. 반면에 영험담은 현몽, 이를테면 종교체험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이는 구별할 수 없을만큼 유사성을 띠는 경우가 흔하다. 가정신앙 관련 체험에서 꿈, 이를테면 현몽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고대 때부터 특출한 꿈은 국가건설과 관련된 것을 비롯하여 빼어난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징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늘상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때문에 앞날을 예징하는 각별한 꿈은 현몽이라고 하며, 해몽에 대한 이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몽에 따라 용단지를 모시게 된 사례도 있다. 시집온지 얼마 안되어 커다란 누런색 구렁이가 사흘 내내 꿈에 나타났다. 또 부엌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는 꿈을 꾸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무당에게 물으니 친정에서 시집으로 복(福)을 가져온 것이라며 용단지를 모시라고 했다. 이러한 사연으로 길일을 잡아 용을 맞고 귀하게 섬기고 있다. 무당과 같은 전문 사제자가 신과 같은 존재를 볼 경우 흔히 환시(幻視)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환시가 아니라 실제로 신적인 존재를 만난다. 시집올 때 용이 따라온 것을 뒤늦게 알고 가신을 모시기 시작한 사례도 있다. 본인이 우환을 당했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한 가운데 점복자의 [점사](/topic/점사)에 따라 알게 되었다. 막내를 서른아홉에 낳은 후 아이들이 아프고 집안에 언짢은 일이 계속 생겨 ‘어디가서’ 물으니 제보자가 시집올 때 용을 가마 안에 싣고 왔다는 것이다. 용이 따라왔는데 모시지 않아서 “자꾸만 재수가 좋지 않고 탈이 생기고 큰아들이 직장을 얻으이 터지구, 또 직장을 잡으이 터지구, 계속 좋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러니 용을 모셔야만 모든데 재수가 있고 집안이 일어날 수 있다.” 하여 막내아들이 아홉 살 되던 해에 뒤늦게 용을 모셨다. 용을 모셔야 되는 것을 몰라서 몇 년동안이나 고생하다가 결국 모신 것이다. 이후 집안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전에 시어른과 함께 살 때에는 시어머니가 용단지를 모셨다. 남편이 차남이어서 [분가](/topic/분가)(分家)하면서부터 별도로 용단지를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제보자가 계속 몸이 아프자 시어머니가 권해서 1970년대 후반에 뒤늦게 용단지를 모시게 되었다. 그후 건강이 좋아지고 용단지가 늘 마음의 [기둥](/topic/기둥)이 되고 있다. 용단지는 [신줏단지](/topic/신줏단지)로 뿐만 아니라 곡식을 [저장](/topic/저장)해둔다는 의미도 있어서 필요할 때 쓰기도 했다. 특히 모심기 철이나 논매기 철에 용단지에 들어있는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 먹으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하여 그때 용단지 안의 곡물을 쓰기도 했다. | 참고문헌 | [가신](/topic/가신)신앙의 성격과 여성상 (김명자, 여성문제연구 13, 효성여자대학교 여성문제연구소, 1984)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김택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한국의 가정신앙 하 (민속원, 2005) 가정신앙 관련 종교체험 사례 일고 (김명자, 한국무속학 18, 한국무속학회, 2009) | 내용 | 용단지는 집안의 농사를 비롯하여 재물을 불게 해주고 집을 지켜주며 가내의 평안을 도모하는 [가신](/topic/가신)이다. 특히 [곡물](/topic/곡물)을 비롯한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그 [자리](/topic/자리)도 이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흔히 용단지는 ‘용이 드는 자리’에 모신다고 한다. 용이 드는 자리란 재산이 들고 그 재산을 지켜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용단지의 자리는 대체로 곡물을 취급하는 [부엌](/topic/부엌)이라든가 고방, [안방](/topic/안방) 위 [다락](/topic/다락)을 비롯하여 뒤뜰이나 [처마](/topic/처마)밑 또는 뒤란 등지가 된다. 이는 가옥 구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러한 용단지의 자리는 용단지의 신격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곧 용단지는 이처럼 재물이 있는 곳에 자리함으로써 재복과 관련된 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가정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추석, 동지 등 명절과 음력 시월 추수 때에 행한다. 이때 정갈한 밥 한 그릇과 [정화수](/topic/정화수) 한 그릇을 올린다. 또는 봄에 햇[보리](/topic/보리)가 나면 용단지의 곡물을 갈아주고 다시 가을에 햅쌀이 나왔을 때 갈아넣고나서 간단히 의례를 행하는 가정도 있다. 이 밖에 봄에 풍농을 위해 용단지에 제를 지내거나 오랜가뭄 또는 심한 홍수 때에도 임시제로서 용단지에 의례를 올려 비가 오기를 기원하거나 비를 알맞게 조절해줄 것을 기원한다. 안동시 풍산읍의 한 사례에서는 용단지에 곡물을 갈아넣을 때 항상 [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우선 가을에 햇농사를 지으면([수확](/topic/수확)하여 햇곡식을 거두어들이면) 고사를 지내기 위해 바깥어른(남편)이 [손 없는 날](/topic/손없는날)을 택일한다. 날이 잡히면 ‘[수지](/topic/수지)쌀’(처음 수확한 깨끗한 쌀)로 백편이나 마구설기 등 마음 내키는 대로 떡을 쪄 올리며 치성을 드린다. 예전에는 집에서 직접 떡을 쪘지만 방앗간이 생긴 이후에는 집에서 햅쌀을 물에 불려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떡을 해온다. 고사떡은 각 가신에게 고루 나누어 올린다. 다만 성주를 새로 맬 때에는 떡을 시루째 올린다. 용단지에 제를 지낼 때에는 쌀용에 먼저 음식을 올린 뒤에 꺼칠용에게 올린다.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주로 그 집의 여자 상어른이 집행한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 등 특별히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에는 간혹 무당과 같은 전문 사제자에게 의례를 의뢰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 사제자가 집행할 경우는 주로 용단지를 새로 모실 때이다. 또한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독자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다. 성주, 조왕, 삼신 등 여러 가신을 위하는 가정의 경우 이들 가신과 함께 제의를 올린다. 순서는 가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용단지는 점괘나 현몽에 따라 [봉안](/topic/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가신의 신체와 가신을 모시기 전후해서는 내력담이나 [영험담](/topic/영험담)이 있다. 내력담은 주로 어른이 모시거나 집안의 우환이 있어서 모시는 경우가 중심이 된다. 반면에 영험담은 현몽, 이를테면 종교체험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이는 구별할 수 없을만큼 유사성을 띠는 경우가 흔하다. 가정신앙 관련 체험에서 꿈, 이를테면 현몽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고대 때부터 특출한 꿈은 국가건설과 관련된 것을 비롯하여 빼어난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징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늘상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때문에 앞날을 예징하는 각별한 꿈은 현몽이라고 하며, 해몽에 대한 이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몽에 따라 용단지를 모시게 된 사례도 있다. 시집온지 얼마 안되어 커다란 누런색 구렁이가 사흘 내내 꿈에 나타났다. 또 부엌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는 꿈을 꾸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무당에게 물으니 친정에서 시집으로 복(福)을 가져온 것이라며 용단지를 모시라고 했다. 이러한 사연으로 길일을 잡아 용을 맞고 귀하게 섬기고 있다. 무당과 같은 전문 사제자가 신과 같은 존재를 볼 경우 흔히 환시(幻視)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환시가 아니라 실제로 신적인 존재를 만난다. 시집올 때 용이 따라온 것을 뒤늦게 알고 가신을 모시기 시작한 사례도 있다. 본인이 우환을 당했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한 가운데 점복자의 [점사](/topic/점사)에 따라 알게 되었다. 막내를 서른아홉에 낳은 후 아이들이 아프고 집안에 언짢은 일이 계속 생겨 ‘어디가서’ 물으니 제보자가 시집올 때 용을 가마 안에 싣고 왔다는 것이다. 용이 따라왔는데 모시지 않아서 “자꾸만 재수가 좋지 않고 탈이 생기고 큰아들이 직장을 얻으이 터지구, 또 직장을 잡으이 터지구, 계속 좋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러니 용을 모셔야만 모든데 재수가 있고 집안이 일어날 수 있다.” 하여 막내아들이 아홉 살 되던 해에 뒤늦게 용을 모셨다. 용을 모셔야 되는 것을 몰라서 몇 년동안이나 고생하다가 결국 모신 것이다. 이후 집안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전에 시어른과 함께 살 때에는 시어머니가 용단지를 모셨다. 남편이 차남이어서 [분가](/topic/분가)(分家)하면서부터 별도로 용단지를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제보자가 계속 몸이 아프자 시어머니가 권해서 1970년대 후반에 뒤늦게 용단지를 모시게 되었다. 그후 건강이 좋아지고 용단지가 늘 마음의 [기둥](/topic/기둥)이 되고 있다. 용단지는 [신줏단지](/topic/신줏단지)로 뿐만 아니라 곡식을 [저장](/topic/저장)해둔다는 의미도 있어서 필요할 때 쓰기도 했다. 특히 모심기 철이나 논매기 철에 용단지에 들어있는 쌀을 가지고 밥을 지어 먹으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하여 그때 용단지 안의 곡물을 쓰기도 했다. | 참고문헌 | [가신](/topic/가신)신앙의 성격과 여성상 (김명자, 여성문제연구 13, 효성여자대학교 여성문제연구소, 1984)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김택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한국의 가정신앙 하 (민속원, 2005) 가정신앙 관련 종교체험 사례 일고 (김명자, 한국무속학 18, 한국무속학회, 2009) | 역사 | 용신신앙은 이미 고대국가 때부터 있어왔다. 이에 따라 가정신앙으로서의 용신신앙 역시 역사가 오래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부적처럼 문에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였다는 것은 곧 가정신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의 오랜 역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용단지라는 신체의 시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용단지가 옹기로서 농경의 시작과 함께 씨앗을 [저장](/topic/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와](/topic/기와) 관련시킨다면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추정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오늘날 섬기는 용단지는 가정마다 [봉안](/topic/봉안)하게 된 시원을 달리할 수 있는데다 선대부터 한 경우여서 그 연원을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당대에 모시기 시작한 경우만 알 수 있으며 그때마다 나름의 유래가 있다. 용단지는 [터줏가리](/topic/터줏가리)나 [업가리](/topic/업가리)와 같이 해마다 새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우선 옹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평생 사용할 수가 있다. 다만 단지 안에 있는 [곡물](/topic/곡물)만 해마다 갈아준다. 혹시 실수로 인해 용단지를 깨트렸을 경우 새로 용단지를 봉안할 수도 있지만 없는 채로 그 [자리](/topic/자리)에서 [비손](/topic/비손)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신체없이 ‘[건궁](/topic/건궁) 용단지’를 섬기는 것이다. 용단지를 처음 봉안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례가 행해진다. 방법은 가정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주부가 직접 봉안하기도 하지만 무당과 같은 사제자가 와서 봉안해 주기도 한다. 주부는 ‘용왕님’을 모시기 위해 옹기로 된 단지를 사온다. 이때 장에 가서도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을 골라 옹[기장](/topic/기장)사가 값을 부르는 대로 주고 절대 깎지 않는다. 물건을 고른 뒤에는 다른 물건을 보지 않는다. 용단지를 모셔놓고 빌 때 주부는 목욕재계하며 가족들도 모두 금기하여 조신하게 행동한다. 각별히 무당이 용단지를 모시는 의례를 주관할 때에는 주부가 제물을 차린 뒤에 무당이 “용왕님, 용왕님 계시는데 성심으로 가져왔습니다.”라고 축원을 하면 주부는 그 곁에서 성심껏 빈다. 용단지를 구입할 때부터 제물 차리기, 비손하기 등이 모두 용단지를 섬기는 중요한 의례이다. 용단지를 봉안하기 위해 큰 물에 가서 용을 받아오기도 한다. 용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선 길일을 잡아 큰 물의 소(沼)에 가서 용을 맞이해야 한다. 이때 무당이 해 주기도 하지만 주부가 직접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주부가 직접 용맞이를 하는 경우 흰밥, 미역국, 과실 등 제물을 장만하여 강가에 있는 소(沼)로 간다. ‘용머리’라는 곳에 제물을 진설하고 빌면서 용왕을 맞는다. 용을 맞아 [한지](/topic/한지)에 싸 집으로 [가지](/topic/가지)고 온 뒤 쌀과 함께 단지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러고는 뚜껑 위에 다시 한지를 덮고 그 위를 돌로 눌러 놓는다. 보살이 용을 맞이하는 경우에는 실에 돈을 달아 물에 떠내려 보내다가 용을 맞게 되면 그 실을 다시 끌어올린다. 이때 실과 함께 용이 끌려오므로 무척 무겁다. 단지에 쌀을 찧어서 넣고 물을 부어놓는다. 이튿날 단지에 물이 불어 있으면 용이 들어앉았다 하고 이후 용단지를 모시기 시작한다. 용단지는 무작정 모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정신앙이 대체로 주부들에 의해 전승되듯이 용단지 역시 시어머니 또는 시할머니 등 여자 상어른이 모셨기 때문에 새로 시집온 며느리가 그대로 모신다. 이 밖에 정월에 신수를 보아 용단지를 모셔야 한다는 점괘에 의하거나 현몽에 따라 새로 모시는 경우도 흔하다. 꿈에 용이 나타나면 모신다. 용을 모시려면 다른 [가신](/topic/가신)을 모실 때와 마찬가지로 무당에게 청하여 길일을 잡아야 한다. 길일이 잡히면 용을 모실 단지부터 준비하고 용맞이를 하는 것이 순서이다. 용단지를 섬기는 사람은 가족 가운데 여자 상어른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며느리가 이어받는 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 역사 | 용신신앙은 이미 고대국가 때부터 있어왔다. 이에 따라 가정신앙으로서의 용신신앙 역시 역사가 오래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부적처럼 문에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였다는 것은 곧 가정신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의 오랜 역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용단지라는 신체의 시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용단지가 옹기로서 농경의 시작과 함께 씨앗을 [저장](/topic/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와](/topic/기와) 관련시킨다면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추정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오늘날 섬기는 용단지는 가정마다 [봉안](/topic/봉안)하게 된 시원을 달리할 수 있는데다 선대부터 한 경우여서 그 연원을 파악할 수가 없다. 다만 당대에 모시기 시작한 경우만 알 수 있으며 그때마다 나름의 유래가 있다. 용단지는 [터줏가리](/topic/터줏가리)나 [업가리](/topic/업가리)와 같이 해마다 새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우선 옹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평생 사용할 수가 있다. 다만 단지 안에 있는 [곡물](/topic/곡물)만 해마다 갈아준다. 혹시 실수로 인해 용단지를 깨트렸을 경우 새로 용단지를 봉안할 수도 있지만 없는 채로 그 [자리](/topic/자리)에서 [비손](/topic/비손)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신체없이 ‘[건궁](/topic/건궁) 용단지’를 섬기는 것이다. 용단지를 처음 봉안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례가 행해진다. 방법은 가정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주부가 직접 봉안하기도 하지만 무당과 같은 사제자가 와서 봉안해 주기도 한다. 주부는 ‘용왕님’을 모시기 위해 옹기로 된 단지를 사온다. 이때 장에 가서도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을 골라 옹[기장](/topic/기장)사가 값을 부르는 대로 주고 절대 깎지 않는다. 물건을 고른 뒤에는 다른 물건을 보지 않는다. 용단지를 모셔놓고 빌 때 주부는 목욕재계하며 가족들도 모두 금기하여 조신하게 행동한다. 각별히 무당이 용단지를 모시는 의례를 주관할 때에는 주부가 제물을 차린 뒤에 무당이 “용왕님, 용왕님 계시는데 성심으로 가져왔습니다.”라고 축원을 하면 주부는 그 곁에서 성심껏 빈다. 용단지를 구입할 때부터 제물 차리기, 비손하기 등이 모두 용단지를 섬기는 중요한 의례이다. 용단지를 봉안하기 위해 큰 물에 가서 용을 받아오기도 한다. 용을 모시기 위해서는 우선 길일을 잡아 큰 물의 소(沼)에 가서 용을 맞이해야 한다. 이때 무당이 해 주기도 하지만 주부가 직접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주부가 직접 용맞이를 하는 경우 흰밥, 미역국, 과실 등 제물을 장만하여 강가에 있는 소(沼)로 간다. ‘용머리’라는 곳에 제물을 진설하고 빌면서 용왕을 맞는다. 용을 맞아 [한지](/topic/한지)에 싸 집으로 [가지](/topic/가지)고 온 뒤 쌀과 함께 단지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그러고는 뚜껑 위에 다시 한지를 덮고 그 위를 돌로 눌러 놓는다. 보살이 용을 맞이하는 경우에는 실에 돈을 달아 물에 떠내려 보내다가 용을 맞게 되면 그 실을 다시 끌어올린다. 이때 실과 함께 용이 끌려오므로 무척 무겁다. 단지에 쌀을 찧어서 넣고 물을 부어놓는다. 이튿날 단지에 물이 불어 있으면 용이 들어앉았다 하고 이후 용단지를 모시기 시작한다. 용단지는 무작정 모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정신앙이 대체로 주부들에 의해 전승되듯이 용단지 역시 시어머니 또는 시할머니 등 여자 상어른이 모셨기 때문에 새로 시집온 며느리가 그대로 모신다. 이 밖에 정월에 신수를 보아 용단지를 모셔야 한다는 점괘에 의하거나 현몽에 따라 새로 모시는 경우도 흔하다. 꿈에 용이 나타나면 모신다. 용을 모시려면 다른 [가신](/topic/가신)을 모실 때와 마찬가지로 무당에게 청하여 길일을 잡아야 한다. 길일이 잡히면 용을 모실 단지부터 준비하고 용맞이를 하는 것이 순서이다. 용단지를 섬기는 사람은 가족 가운데 여자 상어른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며느리가 이어받는 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 형태 | 용단지는 이름 그대로 신체가 옹기로 된 단지형태이다. 한 개나 세 개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두 개를 모신다. 꺼칠용과 쌀용의 두 개로서 여자를 상징한다는 쌀용은 안용이라고도 하며, 이 안에는 쌀을 넣어둔다. 남자를 상징한다는 꺼칠용 단지에는 나락을 넣어두며, 건용 또는 터용이라고도 한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의 한 경우는 대단히 특수한 형태지만 단지가 아닌 것으로 용단지를 모신 가정도 있었다. 용단지로는 두 개를 모신다. 쌀용과 꺼칠용이다. 쌀용단지 안에는 쌀을 넣었으며 집안의 고방(광) 안에 모셔 두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단지형태의 용단지를 [봉안](/topic/봉안)하기 전에는 다른 형태의 용단지를 봉안했다. 1980년대 중반에 [부엌](/topic/부엌)을 [입식](/topic/입식)으로 하는 등 가옥 내부를 개조하기 전에는 [마루](/topic/마루) 실겅[[시렁](/topic/시렁)] 위에 쌀 한 말들이 큰 버지기(자배기)에 쌀을 담아 쌀용으로 모셨다. 그러나 가옥 개조 후 쌀용의 신체를 단지로 바꾸고 고방 안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터용’이라고도 하는 꺼칠용은 예나 지금이나 뒤꼍 [굴뚝](/topic/굴뚝) 아래에 모시고 있다. 단지 안에는 나락을 넣어두고 뚜껑 위에 돌을 올려놓아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topic/동물)들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햇곡식이 나면 용단지에 으레 [수지](/topic/수지)(처음 마련했다는 의미)를 올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쌀용단지에는 수지쌀, 꺼칠용단지에는 수지 나락을 각각 갈아넣는다. 용단지는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며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무척 꺼린다. 이 때문에 집에 외부인이 출입하는 것을 각별히 조심할 정도이다. 선대부터 용단지를 단지로 하지 않고 버지기로 했지만 그 연원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다. 버지기는 바[가지](/topic/가지)나 함지박같이 생긴 그릇을 말하는 안동지역 방언이다. 단지를 바가지나 고리(주로 버들고리) 형태로 대용하는 경우는 있다. 곧 [가신](/topic/가신)의 신체가 단지 이외에 [삼신바가지](/topic/삼신바가지)나 삼신고리처럼 바가지와 고리형태도 있는 것이다. 이들 신체를 바가지→단지→당세기(고리)로 계보화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버지기는 단지 이전의 형태가 된다. 이를테면 더욱 고형(古形)인 셈이다. 용단지의 신체는 옹기로 된 단지로서 모시는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다. [터줏가리](/topic/터줏가리)나 [업가리](/topic/업가리) 또는 성주의 신체는 무당과 같은 사제자가 만들거나 집안의 주부, 가장(家長) 등이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용단지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용기를 구입하여 용단지로 신격화하는 것이다. 일단 시장에서 구입한 단지라 하더라도 용단지로 탈바꿈하면 신을 상징하는 몸, 곧 신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용단지를 구입할 때부터 각별하게 정성을 쏟는다. 용단지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높이가 30㎝의 아담한 단지부터 그 이상 높이의 단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단지는 주로 가운데가 불룩한 항아리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사용한다. | 형태 | 용단지는 이름 그대로 신체가 옹기로 된 단지형태이다. 한 개나 세 개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두 개를 모신다. 꺼칠용과 쌀용의 두 개로서 여자를 상징한다는 쌀용은 안용이라고도 하며, 이 안에는 쌀을 넣어둔다. 남자를 상징한다는 꺼칠용 단지에는 나락을 넣어두며, 건용 또는 터용이라고도 한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의 한 경우는 대단히 특수한 형태지만 단지가 아닌 것으로 용단지를 모신 가정도 있었다. 용단지로는 두 개를 모신다. 쌀용과 꺼칠용이다. 쌀용단지 안에는 쌀을 넣었으며 집안의 고방(광) 안에 모셔 두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단지형태의 용단지를 [봉안](/topic/봉안)하기 전에는 다른 형태의 용단지를 봉안했다. 1980년대 중반에 [부엌](/topic/부엌)을 [입식](/topic/입식)으로 하는 등 가옥 내부를 개조하기 전에는 [마루](/topic/마루) 실겅[[시렁](/topic/시렁)] 위에 쌀 한 말들이 큰 버지기(자배기)에 쌀을 담아 쌀용으로 모셨다. 그러나 가옥 개조 후 쌀용의 신체를 단지로 바꾸고 고방 안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터용’이라고도 하는 꺼칠용은 예나 지금이나 뒤꼍 [굴뚝](/topic/굴뚝) 아래에 모시고 있다. 단지 안에는 나락을 넣어두고 뚜껑 위에 돌을 올려놓아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topic/동물)들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햇곡식이 나면 용단지에 으레 [수지](/topic/수지)(처음 마련했다는 의미)를 올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쌀용단지에는 수지쌀, 꺼칠용단지에는 수지 나락을 각각 갈아넣는다. 용단지는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며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무척 꺼린다. 이 때문에 집에 외부인이 출입하는 것을 각별히 조심할 정도이다. 선대부터 용단지를 단지로 하지 않고 버지기로 했지만 그 연원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다. 버지기는 바[가지](/topic/가지)나 함지박같이 생긴 그릇을 말하는 안동지역 방언이다. 단지를 바가지나 고리(주로 버들고리) 형태로 대용하는 경우는 있다. 곧 [가신](/topic/가신)의 신체가 단지 이외에 [삼신바가지](/topic/삼신바가지)나 삼신고리처럼 바가지와 고리형태도 있는 것이다. 이들 신체를 바가지→단지→당세기(고리)로 계보화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버지기는 단지 이전의 형태가 된다. 이를테면 더욱 고형(古形)인 셈이다. 용단지의 신체는 옹기로 된 단지로서 모시는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다. [터줏가리](/topic/터줏가리)나 [업가리](/topic/업가리) 또는 성주의 신체는 무당과 같은 사제자가 만들거나 집안의 주부, 가장(家長) 등이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용단지는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용기를 구입하여 용단지로 신격화하는 것이다. 일단 시장에서 구입한 단지라 하더라도 용단지로 탈바꿈하면 신을 상징하는 몸, 곧 신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용단지를 구입할 때부터 각별하게 정성을 쏟는다. 용단지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높이가 30㎝의 아담한 단지부터 그 이상 높이의 단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단지는 주로 가운데가 불룩한 항아리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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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금순 씻김굿 공연 조사 사진 자료(김월덕 촬영, 2006년 4월 8-9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완산동 세종문화원 공연장) | 전북 무형문화재 38호 하진순 넋풀이굿 조사 사진 자료(김익두ㆍ허정주 촬영, 2009년 4월 18일, 전북 군산 은파유원지) | 전북 무형문화재 38호 하진순 넋풀이굿 조사 녹음 자료 CD(김익두ㆍ백은철ㆍ허정주 녹음, 2009년 4월 18일, 전북 군산 은파유원지) | 하진순 넋풀이굿 공연 영상 자료 CD 1-7(김익두ㆍ백은철 촬영, 2009년 4월 18일, 전북 군산 은파유원지) | 전금순 씻김굿 공연 영상 자료 CD 1-7(김월덕ㆍ이영배ㆍ홍태한 촬영, 2006년 4월 8-9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완산동 세종문화원 공연장) | 박이정 | 씻김굿 무가: 순천 씻김굿을 중심으로 | 이경엽 | 2000 | 무속학회 | 세습무 사례를 통해서 살펴본 강신무ㆍ세습무의 검토 | 이경엽 | 2000 | 박이정 | 전북 씻김굿: 전금순의 무가 | 이영금 | 2007 | 전북대 국문과 박사논문 | 전북지역 무당굿 연구: 정읍 세습무 전금순 굿을 중심으로 | 이영금 |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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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남씨 가옥 용단지 | 13738 권용남씨 가옥 용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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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난씨 가옥 거칠용단지 | 13737 조순난씨 가옥 거칠용단지 |
황수기씨 가옥 용단지 | 13736 황수기씨 가옥 용단지 |
권순희씨 가옥 용단지(쌀) 시숙 | 13735 권순희씨 가옥 용단지(쌀) 시숙 |
황병학씨 가옥 용단지 | 13734 황병학씨 가옥 용단지 |
황석호씨 가옥 용단지 | 13733 황석호씨 가옥 용단지 |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13732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13731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권영해씨 가옥 용단지 | 13730 권영해씨 가옥 용단지 |
황용성씨 가옥 나락용단지 | 13729 황용성씨 가옥 나락용단지 |
권용남씨 가옥 용단지 | 13738 권용남씨 가옥 용단지 |
조순난씨 가옥 거칠용단지 | 13737 조순난씨 가옥 거칠용단지 |
황수기씨 가옥 용단지 | 13736 황수기씨 가옥 용단지 |
권순희씨 가옥 용단지(쌀) 시숙 | 13735 권순희씨 가옥 용단지(쌀) 시숙 |
황병학씨 가옥 용단지 | 13734 황병학씨 가옥 용단지 |
황석호씨 가옥 용단지 | 13733 황석호씨 가옥 용단지 |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13732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13731 권영해씨 가옥 거친용단지 |
권영해씨 가옥 용단지 | 13730 권영해씨 가옥 용단지 |
황용성씨 가옥 나락용단지 | 13729 황용성씨 가옥 나락용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