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있다. 이 [마을](/topic/마을)에서는 두 곳에 당이 있다. 하나는 마을 앞 300여 m 거리의 조그만 섬 장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마을 안 사장(射場)의 귀목나무거리다. 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은 1995년 12월 26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으며, 김봉도가 예능보[유자](/topic/유자)였으나 2002년에 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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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나경수 |
정의 |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당제를 지내고 있다. 이 [마을](/topic/마을)에서는 두 곳에 당이 있다. 하나는 마을 앞 300여 m 거리의 조그만 섬 장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마을 안 사장(射場)의 귀목나무거리다. 완도장좌리당제 및 당굿은 1995년 12월 26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으며, 김봉도가 예능보[유자](/topic/유자)였으나 2002년에 사망하였다. | 내용 | 매년 이장을 중심으로 정월 초사흗날 [마을](/topic/마을)회의격인 대동공회(大同公會)를 열어 [제관](/topic/제관), 제비, 당굿을 칠 사람들을 선정한다. 이 회의에는 마을의 유지 및 임원들이 참여하며, 여기에서 결정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시행한다. 제관으로는 당주와 집사를 선정한다. 당주는 제물을 비롯한 일체의 준비물을 맡고, 집사는 [독축](/topic/독축)과 집례를 관장한다. 당주의 선정 기준은 무척 까다롭고 엄격하다. 친가는 물론 처가까지도 아직 [상복](/topic/상복)을 벗지 않은 사람은 제외되며, 집안에 산고가 든 사람도 안 된다. 또 어린애가 있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 역시 당주를 맡을 수 없다. 당비는 당공(堂貢)이라고 하며, 그해 당제에 필요한 경비를 산출하여 호구전(戶口錢, 집집마다 내는 돈)으로 걷는다. 초사흗날 마을회의가 끝나고 이장이 방송을 하면 대개 그날 다 걷힌다. 이장은 그중 제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당주에게 준다. 나머지는 다른 준비물, 예를 들면 굿물이나 풍물치는 사람들의 [의복](/topic/의복)·[고깔](/topic/고깔) 등을 사는 비용으로 사용한다. 당주는 정월 대보름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여러 [가지](/topic/가지) 준비에 들어간다. 처음 하는 일은 당샘 청소이다. 당주는 샘을 청소하고 목욕재계를 마친 후 물을 길어 집에 돌아와서 우선 제주와 콩나물을 앉힌다. 또 [대문](/topic/대문)간에 왼새끼를 꼬아 만든 [금줄](/topic/금줄)을 걸고, 마을 사람들과의 왕래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까지도 삼간다. 마을 사람들 역시 당주 내외를 보면 서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길을 피한다. 특히 제수를 준비하면서부터는 소변을 보면 손발을 씻고, 대변을 보면 찬물로 목욕재계한 후 옷을 갈아입는다. 이 때문에 옷은 최소한 세 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대소변 후 목욕제계하는 일이 번거롭기 때문에 준비기간에 극히 소식하거나 단식하는 경우가 많다. 당제를 모시기 2~3일 전에는 제물을 사기 위해 장에 간다. 이장과 당주가 함께 완도읍장 또는 해남 송지장을 본다. 장을 보러갈 때에도 반드시 목욕재계한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제물은 육류·생선·과일·나물 등 필요한 것을 사며, 쇠머리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사는 것은 제수를 만들 식료품만 아니라 솥, 시루, 제기, 돗[자리](/topic/자리) 등 일체를 새로 구입한다. 물건을 살 때는 일절 값을 깎지 않는다. 값을 흥정하거나 깎으면 공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한편 당제 하루 전인 14일에 당집을 비롯하여 공동[우물](/topic/우물)과 당수(堂樹)가 서 있는 사장을 청소하고 금줄과 [금토](/topic/금토)를 한다. 금토는 깨끗한 [황토](/topic/황토)를 퍼서 대강 한 걸음에 한 삽 분량을 까는 것이다. 당집 청소와 함께 마른 나무를 베어 당집 앞에 [장작](/topic/장작)을 쌓아 놓는다. 장작은 당제를 모시면서 불을 때기 위해서이다. 당제의 진행 과정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새벽 5시경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여서 굿물과 고깔, 의복 등을 새벽부터 부산하게 준비하여 마을회관 앞[마당](/topic/마당)에서 당굿을 치기 시작한다. 한참 마을회관 마당에서 굿물을 치다가 당주를 앞세우고 [길굿](/topic/길굿)을 하면서 당집으로 출발한다. 썰물이 되어 도보로 당집이 있는 [장도](/topic/장도)로 가며, 바닷길 중간에서 신명나게 풍물을 울리다가, 다시 [상쇠](/topic/상쇠)가 이끄는 대로 굿물을 치는 사람들은 갈지자로 들당산굿을 하고 당에 오른다. 당집에 도착하면 당주와 제물을 운반하는 사람 및 당제에 참여할 이장을 비롯한 몇 명만 당집 안으로 들어가 집사의 지시를 받으면서 진설을 한다. 제수는 주·과일·포에 몇가지 나물과 식혜, 생선과 떡·탕·메 등이다. 가운데 제사상은 좌우의 상에 비해 제수의 규모나 가짓수에서 다소 많다. 또 가운데 상에만 쇠머리를 진설한다. 이는 언제나 그렇게 해 왔다고 하며, 일제 말기의 어려웠던 때는 염소를 잡아 대신했다고 한다. 가운데 상은 주신인 [장보고](/topic/장보고)(張保皐, ?~846)와 송징(宋徵, 1564~1643), 왼쪽 상은 혜일대사, 오른쪽 상은 정년(鄭年)의 [제상](/topic/제상)이다. 그런데 승려인 혜일대사의 상에도 술과 고기를 올리는 것이 특이하다. 제례는 동쪽 바다에 동이 트는 시각에 맞추어 시작된다. 제차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설상(設床)-[분향](/topic/분향)(焚香)-강신배(降神盃)-독축(讀祝)-[초헌](/topic/초헌)(初獻)-[아헌](/topic/아헌)(亞獻)-[종헌](/topic/종헌)(終獻)-소지(燒紙)-[음복](/topic/음복)(飮福)-[헌식](/topic/헌식)(獻食)-[철상](/topic/철상)(撤床)의 순이다. 진설을 할 때까지 밖에서 쉬고 있던 굿패는 당제가 시작되면 당집 앞마당에 도열하여 상쇠의 지시에 따라 [당산굿](/topic/당산굿)을 하기 시작한다. [축문](/topic/축문)은 아래와 같다. 堂祭 祝文 維 歲次西紀○年干支正月十五日長佐里里民代表○○○敢昭告于 顯張淸海大使保皐之神位 顯宋大將軍徵之神位 威冠一代 靈存永世追慕 茲値上望 謹以淸酌 庶羞恭伸 奠獻 尙 饗 당제를 마치면서 [한지](/topic/한지)에 불을 붙여 공중에 띄우는 소지는 집사의 일이다. 여러 장의 [백지](/topic/백지)를 축원의 말과 함께 사른 후 공중에 띄운다. 백지가 불에 타면서 잘 올라야 좋다고 한다. 소지가 끝나면 음복 후 철상(상을 치움)한다. 철상을 하면서 각 상에서 음식을 조금씩 떼어 양푼에 담아 당집 옆 나무 그루터기 위에 백지를 깔고 그 위에 당주가 부려 놓는다. 헌식이 끝나면 당집 앞마당에 깐 짚 위에 식기를 줄줄이 늘어놓고 거기에 갖가지 음식을 차례로 담았다. 특히 현장에서 김밥을 말아 식기에 담는다. 이는 송 대[장군](/topic/장군)의 부하인 장졸들에게 [거리밥](/topic/거리밥)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수는 일정치 않지만 대개 굿물을 치는 사람들의 수에 맞춘다. 이 거리밥은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아침식사로 나누어 먹는다. 아침식사가 모두 끝나고 나면 모두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굿을 치는 사람들은 다시 열을 지어 날당산굿을 하기 시작한다. 일렬로 줄을 서서 당집 주위를 왼쪽으로 세 바퀴를 달음질쳐 돌고 나서 옆의 [보리](/topic/보리)밭에 둥글게 원을 그려 다시 풍물을 흥겹게 치다가 바닷가에 도착한다. 섬에 들어올 때는 걸어왔지만 나갈 때는 이미 만조가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을에서 실으러 올 배를 기다린다. 배가 도착하면 사람들은 마을에서 온 배에 나누어 타고 마을을 향해 굿물을 치면서 출발한다. 배가 부둣가에 가까워지면 온마을 사람들이 부둣가로 나와 구경을 한다. 마을에 도착한 굿패는 바닷가에 접해 있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먼저 우물굿을 한다. 그리고 당산나무가 서 있는 사장에 가서 또 사장굿을 한다. 사장굿이 끝나면 이제 끝으로 그간 출입이 금지되었던 당주집에 가서 굿물을 한판 신명나게 치는 것으로 당제를 마감한다. 당주집에서 놀면서 술과 음식을 충분히 먹은 후 다시 그 길로 각 가정을 돌면서 며칠간 매구를 치며 놀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당일에 그친다. 이 마을에서는 당제와 별도로 보름 밤에 갯제를 모신다. 장도로 들어가는 길에 온 마을 사람들이 각 가정에서 상 하나 차려 내와서 길게 늘어뜨려 놓고 개인별로 소원을 비는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마을에서 일괄적으로 상을 마련하며, 이장이 제를 주관한다. 장좌리의 당제는 특히 역사적 인물을 모신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마을제사와 차이가 난다. 특히 마을과 관련이 깊은 인물들을 모시고 있으며, 필요하면 장보고의 예와 같이 추배(追拜)를 하여 모시기도 한다. 당집이 있는 장도는 장보고의 청해진 본거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발굴 조사 중에 있다. 또 이 마을의 풍물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지금도 당제에 대한 신심이 돈독하다. 예를 들면 당산굿을 할 때 머리에 쓸 고깔을 지금도 직접 종이와 물감을 사다가 마을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당제 덕분인지 마을민의 단합과 협동이 잘 된다고 한다. 조선조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은 송 대장군가라는 조선조 최고의 영웅서사시를 지었다. 이는 바로 이곳 당제에서 모시는 송징의 전설과 당제를 소재로 한 의고적 작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시 속에는, 歲時伏獵鳴村鼓 때를 맞춰 복날과 섣달에 마을에 북소리 울리고 翩翩落日野巫禱 뉘엿뉘엿 지는 해에 들가운데 무당의 굿소리 颯颯西風寒鴉舞 우[수수](/topic/수수) 하늬바람에 갈까마귀 춤을 춘다. 靈之來兮飄天雨 신령이 내리는지 하늘에선 빗방울 날리고 神之床兮瀝白酒 제상에 올려진 건 고작 막걸리 한 사발 嗟乎此豈淫祠類 오호라 이 어찌 음사류겠는가 甚矣諸生識之陋 심하도다 유생들의 고루함이여 剪紙招魂着自古 종이 잘라 혼부름은 예부터 있어온 일 往往下降叢林藪 때때로 수풀 속에 신이 내린다. 라는 대목이 있다. 이 내용으로 보면 여름에는 복날과 겨울에는 동짓날에 무당이 제상을 차려서 굿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유교식 방식에 의해 당제를 모시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무당이 당굿을 집전했다는 기억을 들을 수 없다. 장도의 당집은 섬 정상의 울창한 숲 속에 위치해 있다. 당집은 동향으로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다. 본래는 초가였으나 [기와](/topic/기와)로 [지붕](/topic/지붕)을 교체하고 크게 수리 한 당집이 있었다. 당시 [상량문](/topic/상량문)이 황기(皇紀) 2600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는 일제시대인 1940년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2년에 이를 철거하고 같은 장소에 새로 당집을 지었다. 본래 당집에는 주신으로 중앙에 송징 장군(宋徵將軍), 우측에 정년 장군(鄭年將軍), 좌측에 혜일대사(慧日大師)를 모시고 있었다. 그러나 1982년 이곳 당제가 남도문화제에 출연하면서 ‘청해진’이 있었던 연고로 인해 장보고를 추배하게 되었으며, 그후 계속해서 장보고까지 4위의 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당집 안 전면 벽에 장보고의 초상이 걸려 있다. 당집이 있는 장도는 해발 33m, 넓이 9만 9,000㎡(29,991평)의 조그만 섬이다. 이곳은 밀물시 만조가 되면 섬이 되고, 썰물이 되면 도보로 출입이 가능하다. 다른 한 곳의 당은 귀목나무가 서 있는 사장거리에 있지만 크게 중시되지 않고 있다. 앞에서 말한 당집에서 제향을 마치면 여기에 와서 사장굿을 한다. 전에는 이곳에 간단한 제사상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없다. 지금은 약화되었지만 이곳 원로들로부터 이 귀목나무를 당수(堂樹) 또는 당수나무라고 부르는 말을 들을 수 있다. | 참고문헌 | 완도 장좌리 당제 (나경수, 광주전남의 민속연구, 민속원, 1998)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 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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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洲衍文長箋散稿 | 經國大典 | 朝鮮王朝實錄 | 형설출판사 | 충청도 무가 | 김영진 | 1976 | 보성문화사 | 조선도교사 | 이능화, 이종은 역 | 1977 | 상해인민출판사 | 중국도교사 | 임계유 | 1990 | 민속원 | 도령부신연구 | 김영진 | 1992 | 한국샤머니즘학회 | 충청 지방의 미친굿 | 이필영 | 1999 | 충북의 민속문화 | 이창식 | 2001 | 국학자료원 | 계룡산 굿당 연구 | 구중회 |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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