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딜방아뱅이

한국무속신앙사전
[마을](/topic/마을)의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고 일부 청년들이 합세하여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topic/디딜방아)를 [가지](/topic/가지)고 여러 목적의 뱅이를 하는 풍습. 디딜방아를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워 놓고여기에 월경혈이 묻은 여자 속곳을 걸어 놓고 팥죽도 뿌리고 풍장을 울리면서 부녀자들이 제사를 올린다. 돌림병을 막기 위한 뱅이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하며, 호남과영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초의 마을 액막이나 하지가 지난 뒤 기우제 목적으로도 디딜방아뱅이를 했다.
definition
[마을](/topic/마을)의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고 일부 청년들이 합세하여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topic/디딜방아)를 [가지](/topic/가지)고 여러 목적의 뱅이를 하는 풍습. 디딜방아를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워 놓고여기에 월경혈이 묻은 여자 속곳을 걸어 놓고 팥죽도 뿌리고 풍장을 울리면서 부녀자들이 제사를 올린다. 돌림병을 막기 위한 뱅이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하며, 호남과영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초의 마을 액막이나 하지가 지난 뒤 기우제 목적으로도 디딜방아뱅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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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영
정의[마을](/topic/마을)의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고 일부 청년들이 합세하여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topic/디딜방아)를 [가지](/topic/가지)고 여러 목적의 뱅이를 하는 풍습. 디딜방아를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워 놓고여기에 월경혈이 묻은 여자 속곳을 걸어 놓고 팥죽도 뿌리고 풍장을 울리면서 부녀자들이 제사를 올린다. 돌림병을 막기 위한 뱅이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하며, 호남과영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초의 마을 액막이나 하지가 지난 뒤 기우제 목적으로도 디딜방아뱅이를 했다.
정의[마을](/topic/마을)의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고 일부 청년들이 합세하여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topic/디딜방아)를 [가지](/topic/가지)고 여러 목적의 뱅이를 하는 풍습. 디딜방아를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워 놓고여기에 월경혈이 묻은 여자 속곳을 걸어 놓고 팥죽도 뿌리고 풍장을 울리면서 부녀자들이 제사를 올린다. 돌림병을 막기 위한 뱅이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하며, 호남과영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초의 마을 액막이나 하지가 지난 뒤 기우제 목적으로도 디딜방아뱅이를 했다.
내용천연두나 홍역 같은 돌림병이 발생하면 이를 막기 위하여 [마을](/topic/마을)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마을의 [디딜방아](/topic/디딜방아)를 한밤에 몰래 훔쳐 와서 뱅이를 하던 풍습이 있었다. 뱅이는 돌림병의 전염을 차단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이 액막이 의례는 대개 195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우선 부녀자들은 어느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 올 것인지 논의한다. 인근의 어느 마을에 크고 좋은 디딜방아가 있는지, 어느 마을의 것을 비교적 쉽게 훔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한다. 간혹 마을의 여러 일을 [단골](/topic/단골)처럼 보아 주는 무당이 있으면 그에게 무꾸리를 한다. 무당은 언제 어느 방위의 마을에서 훔쳐 와야 효험이 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다음에는 누가 훔치러 갈 것인지 결정한다. 대개는 기운이 센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일부 남정네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러 떠날 때 부녀자들은 하얀 소복을 갖추어 입고, 상여를 준비한 뒤 솥뚜껑을 머리에이고 숨을 죽이며 간다. 디딜방아는 한밤중에 몰래 훔쳐 오는데 어떤 때는그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서 싸우기도 하고, 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돌림병을 막기 위한 뱅이에 쓴다는 것을 그 마을 사람들도 알기 때문에 순순히 내주는 경우가많았다. 일단 디딜방아를 훔쳐서 그 마을을 무사히 빠져나오면 그 마을 사람들도 반환을 요구하지 못했다. 훔친 디딜방아를 상여 위에 놓고, 그 위에 흰 [광목](/topic/광목)천을 덮어서 마치주검을 모시는 듯이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는 것은 다른 마을의 죽은 여자를 [가지](/topic/가지)고 오는 것을 뜻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자기 마을로 돌아올 때에는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상여 소리와 함께 ‘아이고! 아이고!’ 곡하는 흉내를 내며 가지고 오기도 하며, ‘어흥! 어흥!’ 하며 호랑이 소리를 내며 오기도 했다. 그리고 돌림병의 종류에 따라 ‘홍역물리자! 홍역 물리자!’라고 외치면서 돌아오기도 했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마을 어귀나 마을 앞의 삼거리에 거꾸로 세워 놓은 다음 [금줄](/topic/금줄)을 두르고 [제상](/topic/제상)을 차려 제사를 모신다. 이때 풍물을 치며 마을 사람들은 한바탕 논다.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은 속곳을 벗거나 준비해 온 속곳을 디딜방아의 Y 자형으로 벌어진 곳에 걸기도 하고, 금줄 사이사이에 끼우기도 한다. 특히 월경혈이 묻은 속곳을 걸어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정성이 더욱 지극한 아낙네들은 자신의 속곳을 가지고 온 마을을 다니면서 다른 집 [대문](/topic/대문)의 나무 조각을 조금씩 떼어내기도 하고, 다른 집의 흙을 속곳에다 문지르고 다니면서 그 속곳을 디딜방아에 건다. 이런 속곳은 매우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팥죽 쑤어 속곳과 디딜방아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돌림병이 마을로 들어오다가도 디딜방아에 피 묻은 속곳을 보고 “이 마을은 더러워서 못쓰겠다”하고 도망을 간다고 여긴다. 디딜방아가 더러우면 돌림병은 물러나고, 깨끗하면 더 덤빈다는 말도 전해진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뱅이’를 끝내고 나서 돌려주기도 했다. 금방 찾아가면 그 마을의 액을 함께 가져간다 하여 보통 도둑 당한 마을에서는 몇 달 뒤에나 한 해를 걸러서야찾아가기도 했다. 또한 훔쳐 온 디딜방아는 자칫 잘못하면 부정을 탄다 하여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세워 둔 자리에서 썩어 없어[지게](/topic/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이처럼 외관상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들 의례에는 나름대로의 민속적 논리가 있다. 먼저 자기 마을에도 디딜방아가 있음에도 다른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가 뱅이에 효험이 있다는 생각이 주목된다. 미꾸라지 뱅이를 할 때에도 다른 마을의 미꾸라지가 더욱 영험하다고 한다. 개구리 뱅이나 닭 뱅이 등도 마찬가지다.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마을의것에 한층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다. 더욱이 훔쳐낸 것이기에 더욱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도 여긴다. 대개의 경우 디딜방아 도난으로 인하여 두 마을 사이에 큰 마찰은 빚어지지않는다. 그것은 이미 ‘허락된 도둑질’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을의 것은 다른 마을의 돌림병 뱅이를 위하여 역시 ‘허락된 도둑질’로 제공된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간혹 디딜방아를 가지러 가거나 훔쳐 올 때, [상복](/topic/상복)인 소복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소리를 낸다든지, 상여가 나가는것처럼 디딜방아를 옮기는 모습은 디딜방아 자체를 마치 시신처럼 간주하는 행위로 보인다. 이는 누군가의 장례를 치름으로써 더 이상의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심리일 수 있다. 디딜방아를 여성의 가랑이로 비유하는 듯한 의례 모습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디딜방아에서 발을 디디는 Y 자형 부분은 여성의 가랑이로 여겨진다. 여기에 더러운 여자 속곳을 씌우고 더욱이 팥죽을 뿌리는 것은 디딜방아를 생리 중의 여성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생리 중의 여성은 민속상 부정한 것이며, 이러한 부정을 마을 어귀에 설치함으로써 다른 액이나 질병이 들어올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강한 부정으로서 다른 부정을 막아낸다는 발상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디딜방아액막이는 마을이 예기치 않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마을 사람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디딜방아를 훔쳐 오고, 그것을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워 풍장을 치며 제사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돌림병의 재난을 재인식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막아 보려는 집단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하며 과시해 보이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돌림병을 막기 위한 의례를 거행했기에 자신의 마을에는 돌림병이 침입하지 못할 것 같은 안도감도 갖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예상되는 마을의 재난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난산으로 죽음의 위기에 선 임산부를 위하여, [우물](/topic/우물)의 돌멩이를 뒤집어 놓는다든지, 집안의 모든 [장롱](/topic/장롱) 문을 열어 놓는다든지, 쥐구멍을 뚫어 놓는다든지 하는 법석을 떠는 심리 상태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비상시에 임시로 벌어지는 디딜방아뱅이는 마을 사람들의 위기감을 완화하고, 마을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난관을 헤쳐 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곧 사태의 심각성을재인식하고, 함께 걱정을 나누며,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의지를 강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디딜방아뱅이는 돌림병 예방 목적으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해서도 했다. 전남 순천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액막이 디딜방아를 이웃 마을로 훔치러 간다. 디딜방아를 훔쳐서 이미 어깨에 메면 상대방 마을에서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부녀자들은 사물을 치고 디딜방아 노래를 부르면서 마을로 돌아온다. 부녀자들은 한데 모여 각자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도구[방아](/topic/방아)를 찧으면서 한바탕 논다. 밤이 깊어가면디딜방아를 거꾸로 하여 마을 어귀에 세워 놓는다. 여기서는 깨끗한 과부의 속곳을 걸어 놓는다. 부녀자들은 디딜방아 주변을 돌면서 [강강술래](/topic/강강술래)를 하고 외줄을 메고 논다. 나중에 외줄은 디딜방아에 감아 놓는다. 이렇게 하면 마을의 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가뭄이 극심할 때 디딜방아 기우제를 지냈다. 경남 합천 지역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참고문헌[디딜방아](/topic/디딜방아)액막이 (최덕원, 남도민속고, 삼성출판사, 1990)
[마을](/topic/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내용천연두나 홍역 같은 돌림병이 발생하면 이를 막기 위하여 [마을](/topic/마을)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마을의 [디딜방아](/topic/디딜방아)를 한밤에 몰래 훔쳐 와서 뱅이를 하던 풍습이 있었다. 뱅이는 돌림병의 전염을 차단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이 액막이 의례는 대개 195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우선 부녀자들은 어느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훔쳐 올 것인지 논의한다. 인근의 어느 마을에 크고 좋은 디딜방아가 있는지, 어느 마을의 것을 비교적 쉽게 훔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한다. 간혹 마을의 여러 일을 [단골](/topic/단골)처럼 보아 주는 무당이 있으면 그에게 무꾸리를 한다. 무당은 언제 어느 방위의 마을에서 훔쳐 와야 효험이 있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다음에는 누가 훔치러 갈 것인지 결정한다. 대개는 기운이 센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일부 남정네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러 떠날 때 부녀자들은 하얀 소복을 갖추어 입고, 상여를 준비한 뒤 솥뚜껑을 머리에이고 숨을 죽이며 간다. 디딜방아는 한밤중에 몰래 훔쳐 오는데 어떤 때는그 마을 사람들에게 들켜서 싸우기도 하고, 미수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돌림병을 막기 위한 뱅이에 쓴다는 것을 그 마을 사람들도 알기 때문에 순순히 내주는 경우가많았다. 일단 디딜방아를 훔쳐서 그 마을을 무사히 빠져나오면 그 마을 사람들도 반환을 요구하지 못했다. 훔친 디딜방아를 상여 위에 놓고, 그 위에 흰 [광목](/topic/광목)천을 덮어서 마치주검을 모시는 듯이 한다. 디딜방아를 훔치는 것은 다른 마을의 죽은 여자를 [가지](/topic/가지)고 오는 것을 뜻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자기 마을로 돌아올 때에는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상여 소리와 함께 ‘아이고! 아이고!’ 곡하는 흉내를 내며 가지고 오기도 하며, ‘어흥! 어흥!’ 하며 호랑이 소리를 내며 오기도 했다. 그리고 돌림병의 종류에 따라 ‘홍역물리자! 홍역 물리자!’라고 외치면서 돌아오기도 했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마을 어귀나 마을 앞의 삼거리에 거꾸로 세워 놓은 다음 [금줄](/topic/금줄)을 두르고 [제상](/topic/제상)을 차려 제사를 모신다. 이때 풍물을 치며 마을 사람들은 한바탕 논다. 여기저기서 아낙네들은 속곳을 벗거나 준비해 온 속곳을 디딜방아의 Y 자형으로 벌어진 곳에 걸기도 하고, 금줄 사이사이에 끼우기도 한다. 특히 월경혈이 묻은 속곳을 걸어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정성이 더욱 지극한 아낙네들은 자신의 속곳을 가지고 온 마을을 다니면서 다른 집 [대문](/topic/대문)의 나무 조각을 조금씩 떼어내기도 하고, 다른 집의 흙을 속곳에다 문지르고 다니면서 그 속곳을 디딜방아에 건다. 이런 속곳은 매우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팥죽 쑤어 속곳과 디딜방아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돌림병이 마을로 들어오다가도 디딜방아에 피 묻은 속곳을 보고 “이 마을은 더러워서 못쓰겠다”하고 도망을 간다고 여긴다. 디딜방아가 더러우면 돌림병은 물러나고, 깨끗하면 더 덤빈다는 말도 전해진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뱅이’를 끝내고 나서 돌려주기도 했다. 금방 찾아가면 그 마을의 액을 함께 가져간다 하여 보통 도둑 당한 마을에서는 몇 달 뒤에나 한 해를 걸러서야찾아가기도 했다. 또한 훔쳐 온 디딜방아는 자칫 잘못하면 부정을 탄다 하여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세워 둔 자리에서 썩어 없어[지게](/topic/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이처럼 외관상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들 의례에는 나름대로의 민속적 논리가 있다. 먼저 자기 마을에도 디딜방아가 있음에도 다른 마을에서 훔쳐 온 디딜방아가 뱅이에 효험이 있다는 생각이 주목된다. 미꾸라지 뱅이를 할 때에도 다른 마을의 미꾸라지가 더욱 영험하다고 한다. 개구리 뱅이나 닭 뱅이 등도 마찬가지다.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마을의것에 한층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다. 더욱이 훔쳐낸 것이기에 더욱 주술적 능력이 있다고도 여긴다. 대개의 경우 디딜방아 도난으로 인하여 두 마을 사이에 큰 마찰은 빚어지지않는다. 그것은 이미 ‘허락된 도둑질’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을의 것은 다른 마을의 돌림병 뱅이를 위하여 역시 ‘허락된 도둑질’로 제공된다.

훔쳐 온 디딜방아는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간혹 디딜방아를 가지러 가거나 훔쳐 올 때, [상복](/topic/상복)인 소복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소리를 낸다든지, 상여가 나가는것처럼 디딜방아를 옮기는 모습은 디딜방아 자체를 마치 시신처럼 간주하는 행위로 보인다. 이는 누군가의 장례를 치름으로써 더 이상의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심리일 수 있다. 디딜방아를 여성의 가랑이로 비유하는 듯한 의례 모습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디딜방아에서 발을 디디는 Y 자형 부분은 여성의 가랑이로 여겨진다. 여기에 더러운 여자 속곳을 씌우고 더욱이 팥죽을 뿌리는 것은 디딜방아를 생리 중의 여성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생리 중의 여성은 민속상 부정한 것이며, 이러한 부정을 마을 어귀에 설치함으로써 다른 액이나 질병이 들어올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강한 부정으로서 다른 부정을 막아낸다는 발상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디딜방아액막이는 마을이 예기치 않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마을 사람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디딜방아를 훔쳐 오고, 그것을 마을 어귀에 거꾸로 세워 풍장을 치며 제사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돌림병의 재난을 재인식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막아 보려는 집단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하며 과시해 보이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울려 돌림병을 막기 위한 의례를 거행했기에 자신의 마을에는 돌림병이 침입하지 못할 것 같은 안도감도 갖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예상되는 마을의 재난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난산으로 죽음의 위기에 선 임산부를 위하여, [우물](/topic/우물)의 돌멩이를 뒤집어 놓는다든지, 집안의 모든 [장롱](/topic/장롱) 문을 열어 놓는다든지, 쥐구멍을 뚫어 놓는다든지 하는 법석을 떠는 심리 상태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비상시에 임시로 벌어지는 디딜방아뱅이는 마을 사람들의 위기감을 완화하고, 마을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난관을 헤쳐 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곧 사태의 심각성을재인식하고, 함께 걱정을 나누며,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의지를 강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디딜방아뱅이는 돌림병 예방 목적으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해서도 했다. 전남 순천 지역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액막이 디딜방아를 이웃 마을로 훔치러 간다. 디딜방아를 훔쳐서 이미 어깨에 메면 상대방 마을에서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부녀자들은 사물을 치고 디딜방아 노래를 부르면서 마을로 돌아온다. 부녀자들은 한데 모여 각자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도구[방아](/topic/방아)를 찧으면서 한바탕 논다. 밤이 깊어가면디딜방아를 거꾸로 하여 마을 어귀에 세워 놓는다. 여기서는 깨끗한 과부의 속곳을 걸어 놓는다. 부녀자들은 디딜방아 주변을 돌면서 [강강술래](/topic/강강술래)를 하고 외줄을 메고 논다. 나중에 외줄은 디딜방아에 감아 놓는다. 이렇게 하면 마을의 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가뭄이 극심할 때 디딜방아 기우제를 지냈다. 경남 합천 지역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참고문헌[디딜방아](/topic/디딜방아)액막이 (최덕원, 남도민속고, 삼성출판사, 1990)
[마을](/topic/마을)신앙의 사회사 (이필영, 웅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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