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산 1-1[번지](/topic/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제당. 2009년 12월 7일에 ‘부산광역시 민속자료 6호’로 지정되었다. 마고당에는 장산 일대 지역의 수호신인 상산마고할미, 천제당에는 천신(天神)․지신(地神)․산신(山神)을 각각 모시고 있다. 장산 중턱의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에 자리한 장산마고당과 천제당은 우리 고유 민속신앙 제당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산과 천제당이 하나의 권역 속에 형성되어 있는 민속신앙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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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황경숙 |
정의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산 1-1[번지](/topic/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제당. 2009년 12월 7일에 ‘부산광역시 민속자료 6호’로 지정되었다. 마고당에는 장산 일대 지역의 수호신인 상산마고할미, 천제당에는 천신(天神)․지신(地神)․산신(山神)을 각각 모시고 있다. 장산 중턱의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에 자리한 장산마고당과 천제당은 우리 고유 민속신앙 제당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산과 천제당이 하나의 권역 속에 형성되어 있는 민속신앙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정의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산 1-1[번지](/topic/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제당. 2009년 12월 7일에 ‘부산광역시 민속자료 6호’로 지정되었다. 마고당에는 장산 일대 지역의 수호신인 상산마고할미, 천제당에는 천신(天神)․지신(地神)․산신(山神)을 각각 모시고 있다. 장산 중턱의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에 자리한 장산마고당과 천제당은 우리 고유 민속신앙 제당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산과 천제당이 하나의 권역 속에 형성되어 있는 민속신앙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내용 | 마고당 본당 내부에는 제물을 진설하는 제단이 디귿(ㄷ) 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제단 위 벽면에는 ‘상산마고령상신위(上山麻姑靈上神位)’라 쓴 나무위패가 걸려 있다. 그 아래 제단 위에는 [정화수](/topic/정화수) 그릇 두 개, [촛대](/topic/촛대) 세 개, 쌀을 담은 제기 한 개, [향로](/topic/향로) 한 개 등이 놓여 있다. 현재 제의를 모실 때 사용하는 제구(祭具)는 마고당의 부속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2005년 이전에는 제구를 [마을](/topic/마을)에서 따로 보관하였다고 한다. 제의는 장산 일대의 운촌, 중동, 미포, 장지, 오산, 좌동 등 여섯 마을에서 윤번제로 매해 음력 1월 3일과 6월 3일 두 차례 제의를 베풀어 왔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이들 여섯 마을의 동장들이 회의를 거쳐 제의를 좌동에서 일임하도록 하여 이후로 좌동에서 제의를 모시고 있다. 좌동에서 제의를 전담하여 모시게 된 이후로 1996년까지는 좌동마을 주민을 대신해 폭포사의 주지스님이 망제 형식으로 제의를 대행해 왔다. 1995년 좌동 주민들이 장산마고당과 천제당의 전통 민속문화적 가치를 절감하고 보다 발전적인 계승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일환으로 ‘장산신당보존관리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1997년부터는 장산신당보존관리위원회(2010년 6월 10일 ‘장산향토문화보존사업회’로 개칭됨)에서 제의를 주관하여 모시고 있다. 마고당과 천제당 제의는 매해 음력 정월 3일과 6월 3일 두 차례에 행해진다. 정월에 행하는 제의는 전염병 예방과 각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데 목적을 둔다. 6월에 행하는 제의는 풍해, 충해, 병해 등 삼재를 막고 풍어와 풍농 등 기풍을 기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의의 절차는 원래 천제당제-마고당제-거릿대제(현 국민은행 신시[가지](/topic/가지) 지점에 있던 당산나무) 순이었으나 좌동에서 제의를 일임하여 모시면서부터는 천제당제-마고당제-산신단제 제석당제 순으로 변화하였다. 과거와 달리 거릿대제를 지내지 않는 이유는 해운대 지역의 개발 과정에서 거릿대[장군](/topic/장군)의 신체(身體)가 없어[지게](/topic/지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제석당제를 지내는 것은 제석당이 좌동의 당산이며, 좌동에서 제의를 일임하면서 좌동의 당산제가 마고당제로 흡수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좌동 당산인 제석당은 1993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사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장산의 산기슭으로 이전되었다. 제당 안에는 ‘장산산왕대신신위(萇山山王大神神位)’라고 쓴 나무위패와 신석(神石)인 자연석이 [봉안](/topic/봉안)되어 있다. 제를 주관하는 [제관](/topic/제관)은 제의 열흘 전에 마을 주민 가운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부정이 없는 깨끗한 이를 선정하며, 선정된 제관은 제물을 운반할 이를 지명하여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이는 제의를 지내기 전후로 열흘동안 부정을 가리는 금기를 행한다. 제의에 진설하는 제물은 신격에 따라 각기 다르게 준비한다. 천제당에는 생쇠머리, 조리하지 않은 생선, 떡, 삼색과일, 제반, 술 등을 올린다. 마고당에는 육류와 어류를 일절 올리지 않고 떡, 메, 나물, 과일, 제반, 정화수를 진설한다. 산신단에는 쇠고기, 메, 나물, 정화수 등으로 간소하게 차린다.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topic/기제사)와 동일하지만 천제당․산신단․ 제석당에는 삼배를 올리며, 마고당에는 구배를 올린다. 제의를 마친 뒤에는 제석당에서 제관들이 [음복](/topic/음복)한 다음 당일 진시(辰時)를 경과한 뒤에 하산하여 마을 경로당에서 남은 제수음식으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음복한다. 구전하는 [영험담](/topic/영험담)으로는 운촌 마을에서 제를 주관하던 어느 해에 제물로 쇠머리를 올리지 않고 돼지머리를 올린 탓에 제관이 [신벌](/topic/신벌)을 받아 다시 제를 모셨다고 한다. 또 광복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 유월 제의 때 노인들의 모임인 갑계에서 제물로 쓸 송아지를 잡아 제를 올렸다. 이때 날이 더워 제관들이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벗어 신당 옆 바위 위에 얹어 놓자 갑자기 두루마기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라 양운폭포 아래 가마소에 떨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가 소에 빠진 두루마기를 건지기 위해 긴 막대기 두 개로 휘저었으나 끝내 두루마기를 찾지 못하였다. 소에 빠진 두루마기의 주인은 당시 자신의 처가 임신하였음에도 제에 참여하여 변을 당한 것이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소에 빠진 두루마기 주인은 병이 들어 죽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동래부동하면고문서 (해운대민속, 해운대구청, 서면문화사, 1996) 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장산의 역사와 전설 (김병섭, 도서출판국제, 2008)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주영택, 해운대지구향인회, 2010) | 내용 | 마고당 본당 내부에는 제물을 진설하는 제단이 디귿(ㄷ) 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제단 위 벽면에는 ‘상산마고령상신위(上山麻姑靈上神位)’라 쓴 나무위패가 걸려 있다. 그 아래 제단 위에는 [정화수](/topic/정화수) 그릇 두 개, [촛대](/topic/촛대) 세 개, 쌀을 담은 제기 한 개, [향로](/topic/향로) 한 개 등이 놓여 있다. 현재 제의를 모실 때 사용하는 제구(祭具)는 마고당의 부속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2005년 이전에는 제구를 [마을](/topic/마을)에서 따로 보관하였다고 한다. 제의는 장산 일대의 운촌, 중동, 미포, 장지, 오산, 좌동 등 여섯 마을에서 윤번제로 매해 음력 1월 3일과 6월 3일 두 차례 제의를 베풀어 왔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이들 여섯 마을의 동장들이 회의를 거쳐 제의를 좌동에서 일임하도록 하여 이후로 좌동에서 제의를 모시고 있다. 좌동에서 제의를 전담하여 모시게 된 이후로 1996년까지는 좌동마을 주민을 대신해 폭포사의 주지스님이 망제 형식으로 제의를 대행해 왔다. 1995년 좌동 주민들이 장산마고당과 천제당의 전통 민속문화적 가치를 절감하고 보다 발전적인 계승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일환으로 ‘장산신당보존관리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1997년부터는 장산신당보존관리위원회(2010년 6월 10일 ‘장산향토문화보존사업회’로 개칭됨)에서 제의를 주관하여 모시고 있다. 마고당과 천제당 제의는 매해 음력 정월 3일과 6월 3일 두 차례에 행해진다. 정월에 행하는 제의는 전염병 예방과 각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데 목적을 둔다. 6월에 행하는 제의는 풍해, 충해, 병해 등 삼재를 막고 풍어와 풍농 등 기풍을 기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의의 절차는 원래 천제당제-마고당제-거릿대제(현 국민은행 신시[가지](/topic/가지) 지점에 있던 당산나무) 순이었으나 좌동에서 제의를 일임하여 모시면서부터는 천제당제-마고당제-산신단제 제석당제 순으로 변화하였다. 과거와 달리 거릿대제를 지내지 않는 이유는 해운대 지역의 개발 과정에서 거릿대[장군](/topic/장군)의 신체(身體)가 없어[지게](/topic/지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제석당제를 지내는 것은 제석당이 좌동의 당산이며, 좌동에서 제의를 일임하면서 좌동의 당산제가 마고당제로 흡수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좌동 당산인 제석당은 1993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사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장산의 산기슭으로 이전되었다. 제당 안에는 ‘장산산왕대신신위(萇山山王大神神位)’라고 쓴 나무위패와 신석(神石)인 자연석이 [봉안](/topic/봉안)되어 있다. 제를 주관하는 [제관](/topic/제관)은 제의 열흘 전에 마을 주민 가운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부정이 없는 깨끗한 이를 선정하며, 선정된 제관은 제물을 운반할 이를 지명하여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이는 제의를 지내기 전후로 열흘동안 부정을 가리는 금기를 행한다. 제의에 진설하는 제물은 신격에 따라 각기 다르게 준비한다. 천제당에는 생쇠머리, 조리하지 않은 생선, 떡, 삼색과일, 제반, 술 등을 올린다. 마고당에는 육류와 어류를 일절 올리지 않고 떡, 메, 나물, 과일, 제반, 정화수를 진설한다. 산신단에는 쇠고기, 메, 나물, 정화수 등으로 간소하게 차린다. 제의 방식은 일반 가정의 [기제사](/topic/기제사)와 동일하지만 천제당․산신단․ 제석당에는 삼배를 올리며, 마고당에는 구배를 올린다. 제의를 마친 뒤에는 제석당에서 제관들이 [음복](/topic/음복)한 다음 당일 진시(辰時)를 경과한 뒤에 하산하여 마을 경로당에서 남은 제수음식으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음복한다. 구전하는 [영험담](/topic/영험담)으로는 운촌 마을에서 제를 주관하던 어느 해에 제물로 쇠머리를 올리지 않고 돼지머리를 올린 탓에 제관이 [신벌](/topic/신벌)을 받아 다시 제를 모셨다고 한다. 또 광복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 유월 제의 때 노인들의 모임인 갑계에서 제물로 쓸 송아지를 잡아 제를 올렸다. 이때 날이 더워 제관들이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벗어 신당 옆 바위 위에 얹어 놓자 갑자기 두루마기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라 양운폭포 아래 가마소에 떨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가 소에 빠진 두루마기를 건지기 위해 긴 막대기 두 개로 휘저었으나 끝내 두루마기를 찾지 못하였다. 소에 빠진 두루마기의 주인은 당시 자신의 처가 임신하였음에도 제에 참여하여 변을 당한 것이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소에 빠진 두루마기 주인은 병이 들어 죽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동래부동하면고문서 (해운대민속, 해운대구청, 서면문화사, 1996) 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장산의 역사와 전설 (김병섭, 도서출판국제, 2008)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주영택, 해운대지구향인회, 2010) | 역사 | 현존하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동래부동하면고문서』 가운데 「동하대동중절장산신당중건록문」에 따르면 장산은 조선시대 중엽부터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육림․벌채하다가 서기 1741년 이래 동하면민이 장산에 기우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조선 중엽 이후부터 마고할미를 모신 제당을 세워 정월과 유월 두 차례에 제를 모시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장산 마고당은 조선 중엽에 건립되어 제의가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헌에는 현재의 제당이 1924년에 중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24년에 제당을 중건한 연유는 당시 당사가 노후에 비바람을 막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중건은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마고당 [현판](/topic/현판)의 낙관 ‘[중원](/topic/중원)갑자칠월중건(中元甲子七月日重建)’과 제당 안 [천장](/topic/천장)부의 [상량문](/topic/상량문) ‘중원갑자칠월육일미시[입주](/topic/입주)상량(中元甲子七月六日未時立柱上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52년 6월에 인근 군부대의 탄약고 야적장에서 폭발된 탄약의 파편 일부가 날아와 당사 [지붕](/topic/지붕)이 훼손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당사는 군부대의 관할지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훼손된 지붕을 보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의 꿈에 마고할미가 나타나 “내가 비를 맞고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느냐?”며 꾸짖었고, 그 일을 계기로 마고할미의 꿈을 꾼 마을 주민이 군부대 사령부에 간곡히 요청해 사비를 들여 지붕을 지금의 것으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천제당의 건립 시기에 대한 문헌자료와 구전자료는 달리 없다. 그러나 마고당에 제를 올릴 때 천제당에서 먼저 제를 올리는 것이 오랜 관행인 것으로 보아 천제당의 건립 시기는 마고당사의 건립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해운대구에서 설치한 안내문에는 “천제단은 2천 3백년 전 장산국이 씨족끼리 형성된 마을공동체로서의 일체감과 수렵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자연숭배사상에서 천신과 산신에게 제천의식을 일 년에 두 번(1월과 6월)씩 올리던 곳이다”라고 쓰여 있으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역사 | 현존하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동래부동하면고문서』 가운데 「동하대동중절장산신당중건록문」에 따르면 장산은 조선시대 중엽부터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육림․벌채하다가 서기 1741년 이래 동하면민이 장산에 기우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조선 중엽 이후부터 마고할미를 모신 제당을 세워 정월과 유월 두 차례에 제를 모시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장산 마고당은 조선 중엽에 건립되어 제의가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문헌에는 현재의 제당이 1924년에 중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24년에 제당을 중건한 연유는 당시 당사가 노후에 비바람을 막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중건은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마고당 [현판](/topic/현판)의 낙관 ‘[중원](/topic/중원)갑자칠월중건(中元甲子七月日重建)’과 제당 안 [천장](/topic/천장)부의 [상량문](/topic/상량문) ‘중원갑자칠월육일미시[입주](/topic/입주)상량(中元甲子七月六日未時立柱上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52년 6월에 인근 군부대의 탄약고 야적장에서 폭발된 탄약의 파편 일부가 날아와 당사 [지붕](/topic/지붕)이 훼손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당사는 군부대의 관할지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훼손된 지붕을 보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을 주민의 꿈에 마고할미가 나타나 “내가 비를 맞고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느냐?”며 꾸짖었고, 그 일을 계기로 마고할미의 꿈을 꾼 마을 주민이 군부대 사령부에 간곡히 요청해 사비를 들여 지붕을 지금의 것으로 교체하였다고 한다. 천제당의 건립 시기에 대한 문헌자료와 구전자료는 달리 없다. 그러나 마고당에 제를 올릴 때 천제당에서 먼저 제를 올리는 것이 오랜 관행인 것으로 보아 천제당의 건립 시기는 마고당사의 건립 시기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해운대구에서 설치한 안내문에는 “천제단은 2천 3백년 전 장산국이 씨족끼리 형성된 마을공동체로서의 일체감과 수렵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자연숭배사상에서 천신과 산신에게 제천의식을 일 년에 두 번(1월과 6월)씩 올리던 곳이다”라고 쓰여 있으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 형태 | 장산마고당은 마고할미를 모시는 본당을 중심으로 산신을 모시는 산신단과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천제당은 돌로 만든 제당으로 마고당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마고당 일곽은 본당을 제외하면 모두 인근의 자연석을 쌓아 올린 [돌담](/topic/돌담)으로 둘러쳐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의 규모는 높이 2~4ⅿ, 길이 25ⅿ 가량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아서 사다리꼴 모양을 이루고 있다. [담장](/topic/담장) 왼쪽과 뒤에는 너덜겅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다. 붉은 시멘트 벽돌 건물인 본당은 앞면 201㎝, 옆면 199㎝ 규모다. 청[기와](/topic/기와)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 형태로 용[마루](/topic/마루) 오른쪽에 치두, 왼쪽에 치미로 장식되어 있다. 본당의 정면 창방 위에는 ‘상산마고당(上山麻姑堂)’이라 쓴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다. 창방 아래에는 [광창](/topic/광창)을 길게 내고, 가운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문양에 둘러싸인 태극 문양의 장식이 달려 있다. 본당 오른쪽 아래에는 돌로 만든 산신제단이 있다. 산신제단은 지상에서 48㎝ 높이에 앞면 50㎝, 옆면 57㎝, 두께 8㎝ 크기의 자연석을 올려 만든 것이다. 본당의 왼쪽 아래에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부속건물이 있다. 부속건물은 앞면 221㎝, 옆면 230㎝ 규모의 시멘트 건물이다. 벽돌을 쌓아 만든 벽면에 두 짝 [여닫이](/topic/여닫이)문을 설치한 정면을 제외한 왼쪽, 오른쪽, 뒤쪽은 주변 막돌과 시멘트 몰타르를 쌓아 벽체 겸 담장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기와는 맞배지붕 형태이다. 천제당은 마고당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100ⅿ 떨어진 장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천제당은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신선바위 뒤에 바위 제단을 한 단 더 높게 쌓은 형태이다. 제물을 진설하는 제단은 앞면 50㎝, 옆면 75㎝, 두께 8㎝ 규모의 직사각형 형태인 화강암 반석이다. 천제당은 제단 뒤편의 큰 바위로 벽체를 삼고 그 양쪽으로 자연석을 올려 쌓은 돌담이 감싸고 있는 형상으로 돌담 뒤로는 소나무가 무성하여 장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돌담의 규모는 길이 130㎝, 높이 90㎝, 폭 13㎝이다. 제단 뒤쪽의 바위에는 천제당에 모신 신격의 신체인 3기의 입석이 세워져 있다. 가운데 입석의 크기는 높이 90㎝, 밑변 20㎝, 폭 15㎝이다. 왼쪽의 입석은 높이 61㎝, 밑변 20㎝, 폭 15㎝ 크기이다. 오른쪽의 입석은 높이 48㎝, 밑변 20㎝, 폭 17㎝이다. 이들 입석은 천신․지신․산신(山神)을 상징한다고도 하며,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천제단 하단 길 아래에는 사방 1ⅿ 안팎 규모의 너덜겅 아래로 흘러 내려오는 석간수가 고이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로 [정화수](/topic/정화수)를 올리고 제의 때 제물을 장만한다. | 형태 | 장산마고당은 마고할미를 모시는 본당을 중심으로 산신을 모시는 산신단과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천제당은 돌로 만든 제당으로 마고당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마고당 일곽은 본당을 제외하면 모두 인근의 자연석을 쌓아 올린 [돌담](/topic/돌담)으로 둘러쳐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의 규모는 높이 2~4ⅿ, 길이 25ⅿ 가량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아서 사다리꼴 모양을 이루고 있다. [담장](/topic/담장) 왼쪽과 뒤에는 너덜겅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잡목이 우거져 있다. 붉은 시멘트 벽돌 건물인 본당은 앞면 201㎝, 옆면 199㎝ 규모다. 청[기와](/topic/기와)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 형태로 용[마루](/topic/마루) 오른쪽에 치두, 왼쪽에 치미로 장식되어 있다. 본당의 정면 창방 위에는 ‘상산마고당(上山麻姑堂)’이라 쓴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다. 창방 아래에는 [광창](/topic/광창)을 길게 내고, 가운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문양에 둘러싸인 태극 문양의 장식이 달려 있다. 본당 오른쪽 아래에는 돌로 만든 산신제단이 있다. 산신제단은 지상에서 48㎝ 높이에 앞면 50㎝, 옆면 57㎝, 두께 8㎝ 크기의 자연석을 올려 만든 것이다. 본당의 왼쪽 아래에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부속건물이 있다. 부속건물은 앞면 221㎝, 옆면 230㎝ 규모의 시멘트 건물이다. 벽돌을 쌓아 만든 벽면에 두 짝 [여닫이](/topic/여닫이)문을 설치한 정면을 제외한 왼쪽, 오른쪽, 뒤쪽은 주변 막돌과 시멘트 몰타르를 쌓아 벽체 겸 담장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기와는 맞배지붕 형태이다. 천제당은 마고당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약 100ⅿ 떨어진 장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천제당은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신선바위 뒤에 바위 제단을 한 단 더 높게 쌓은 형태이다. 제물을 진설하는 제단은 앞면 50㎝, 옆면 75㎝, 두께 8㎝ 규모의 직사각형 형태인 화강암 반석이다. 천제당은 제단 뒤편의 큰 바위로 벽체를 삼고 그 양쪽으로 자연석을 올려 쌓은 돌담이 감싸고 있는 형상으로 돌담 뒤로는 소나무가 무성하여 장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돌담의 규모는 길이 130㎝, 높이 90㎝, 폭 13㎝이다. 제단 뒤쪽의 바위에는 천제당에 모신 신격의 신체인 3기의 입석이 세워져 있다. 가운데 입석의 크기는 높이 90㎝, 밑변 20㎝, 폭 15㎝이다. 왼쪽의 입석은 높이 61㎝, 밑변 20㎝, 폭 15㎝ 크기이다. 오른쪽의 입석은 높이 48㎝, 밑변 20㎝, 폭 17㎝이다. 이들 입석은 천신․지신․산신(山神)을 상징한다고도 하며,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천제단 하단 길 아래에는 사방 1ⅿ 안팎 규모의 너덜겅 아래로 흘러 내려오는 석간수가 고이는 샘물이 있다. 이 샘물로 [정화수](/topic/정화수)를 올리고 제의 때 제물을 장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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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속신 고찰 | 양종승 | 1996 | 도서출판 창솔 | 한국민속문화대사전 상 | 김용덕 |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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